국내 유일의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씨. ⓒ노컷뉴스

‘영혼까지 흔들 만큼 짜릿하고 영롱한 소리’라는 극찬과 함께 ‘한국의 투츠 틸레망’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국내 유일의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 씨. 그는 생후 보름 만에, 열병으로 빛을 잃은 ‘시각장애인’이다.

어린 시절, 장구채를 손에 쥐고 신명 나는 장단을 만들어 낸 그는 여러 대회에서 많은 상을 받으며 재능을 인정받지만, 앞을 보지 못하면 온전한 사물놀이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른 길을 모색한다.

[BestNocut_R]장애를 뛰어 넘는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한 그는 우연히 라디오 방송을 통해 재즈 하모니카 연주를 듣고 평생 하모니카를 통해 호흡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렇게 시작된 혼자만의 치열한 연습…, 입술이 찢어지고 혀가 상해도 아랑곳 않던 열정…, 음반이 망가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던 음악적 근성… 결국 그는 국내 대표적인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로 우뚝 선다.

‘하모니카 입에 물면 내 가슴엔 별이 뜬다’고 노래하는 실력파 음악인 전제덕 씨를 4월 11일 CBS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나보았다.

◇ 음악 속에 묻어나는 원초적 질주본능

▶ 지난 3월 31일에 성남 아트센터에서 공연을 하셨어요?

14일과 31일 릴레이 공연이라고 해서 두 곳에서 공연을 했어요. 14일은 화이트데이라 ‘연인들을 위한 공연’이란 제목을 붙여서 공연을 했고, 31일은 아트센터에서 월마다 하는 기획공연으로 참여했어요.

▶ 전제덕 씨도 오빠부대가 있나요?

없는 것 같아요. 저를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은 몇 명 있는 것 같지만요. (웃음)

▶ 작년 12월 7일에 두 번째 음반이 나왔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어떤 것 같나요?

2집에는 재즈적인 요소들이 많이 녹아있어요. 팝이긴 하지만 재즈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고 펑키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 있어서 1집의 멜로디 컬한 음악들이 귀에 익어서 그러신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세요. 1집은 기쁠 땐 기쁜 것 같고, 슬플 때는 슬픈 것 같은데 2집은 쉴 새 없이 달려가서 끝까지 올라가는 것 같다고, 중간에 세우기도 해야 하는데 듣기에 어렵다고들 하시더라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음악 하는 입장에서 괜찮은데...

▶ 왜 쉴 새 없이 달려가셨어요?

달리고 싶은 욕구가 있었나 봐요. (웃음)

▶ 음악이 좀 더 깊어졌다는 이야기들도 있어요.

소리나 음악이 1집에 비해 성숙해졌다고 하는데 처음 시작은 누구나 마찬가지로 긴장하고 좋게 말하면 때 묻지 않았는데 2집은 아무래도 좀 여유가 생기다 보니... (웃음)

▶ 곡을 직접 쓰시기도 하시죠?

몇 곡은 썼고, 프로듀서가 쓴 곡도 있고 그렇습니다.

▶ 2집 앨범을 내시면서 스스로의 약속을 담고 있는 타이틀이라고 했다고 들었어요.

‘What is Cool Change’라고 해서 지금 음반시장이 불황이고 특히 연주 음악 시장의 경우는 더 힘들지만 우리가 음악을 왜 하느냐를 생각 안 할 수 없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꾸준히 변하는 것이 미래를 생각했을 때 분명히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앞으로의 음악을 꾸준히 변화시키겠다는 약속을 담고 싶었어요.

◇ 하모니카의 선율만큼이나 다양한 인생살이

▶ 우리나라에 재즈하모니카 연주자가 몇 분이나 계신가요?

제가 알고 있는 분은 없어요. 그 이야기는 음반을 하는 분이 없다는 얘긴데 후배들의 경우에는 재즈클럽 같은 곳에서 자기들 나름대로 공연을 하면서 열심히 하고 있고 장래가 촉망되는 친구들도 많이 나오고 있어요.

▶ 최초라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또 유일한 만큼 외롭기도 하잖아요.

텍스트가 되는 것이 거의가 외국음반이었고 좋게 생각하면 저 혼자라 제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기댈 때가 없다고 생각하면 많이 외롭고 음반이 마무리될 때쯤엔 내가 뭔가를 만들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지만 많이 힘들기도 하죠.

▶ 이제는 뒤에 오는 후배들을 위해서도 뭔가 역할을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음반을 몇 장 더 내서 대중적으로 좀 더 알려지면 후배들에게 뭔가 해보고 싶은 동기를 주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 하모니카를 언제부터 시작하셨어요?

십 년 좀 넘었어요. 그전에는 문방구에서 파는 걸로 동요 부는 수준이었고, 2004년에 1집으로 활동을 했으니까 정식 데뷔는 3년 된 거네요.

▶ 지금 하모니카를 몇 개나 가지고 계세요?

전문으로 연주하는 사람들의 하모니카는 고장이 잘 나요. 피아노처럼 줄만 바꾸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서 음 하나하나에 리드가 붙어있어서 하나가 고장 나도 쓰기가 참 힘들어요. 고쳐도 오래 못 가기 때문에 저도 망가뜨린 게 꽤 많이 있죠.

▶ 전제덕 씨처럼 입술이 부르트도록 연습하는 사람들은 하모니카를 사면 평균 얼마나 사용하나요?

한 달 이상 쓸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물론 방법은 있어요. 하모니카를 한 번에 여러 개를 사서 돌아가면서 쓰면 여러 달 쓸 수는 있겠죠. 저도 요즘은 공연이나 연습을 할 때 그 방법을 쓰곤 합니다. (웃음)

▶ 하모니카도 가격이 천차만별이죠?

싼 것은 4~5만원 에서부터 비싼 것은 5~7백만 원 합니다. 아무래도 비싼 것은 비싼 값을 해주어야겠죠. (웃음)

▶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고가의 하모니카는 얼마인가요? (웃음)

가장 비싼 건 50만 원짜리가 있고, 공연이나 녹음할 때 평균적으로 20만 원대를 씁니다. 500만 원짜리는 보기는 봤지만 살 수가 없으니까 함부로 불수는 없었죠. 하모니카는 클래식을 많이 하거든요. 재즈도 많이 하지만 500만 원짜리는 클래식 전용이라 재즈하는 하모니카와는 좀 다르죠.

▶ 예를 들어 가수들이 기타 치며 노래하다 하모니카를 불기도 하는데 그런 하모니카와 전제덕 씨가 부는 하모니카는 다른 종류인가요?

다르죠. 일단 크기가 작고, 저는 반음을 연주할 수 있는 하모니카라서 옆에 버튼이 있어요. 평상시에 하모니카는 C장조인데 버튼을 누르면 C#장조가 되는 거죠. 그래서 피아노의 검은 건반처럼 되는 건데요, 일반적으로 기타 치면서 부는 하모니카는 반음을 낼 수가 없어서 키대로 가지고 다니면서 따로따로 연주를 해야 돼요. 하지만 저는 12키를 한 번에 다 연주할 수 있는 거죠.

◇ 백인백색(百人百色) 재즈의 매력

▶ 나이든 세대들은 하모니카에 대한 향수가 다 있어요. 하모니카를 가르쳐주신 특별한 선생님이 계셨었나요?

그 당시에 저는 사물놀이라는 음악을 하고 있었는데 앉아서만 하기 때문에 한 시간이 넘어가면 레퍼토리가 떨어져요. 보통 두 시간 동안 공연을 하면 똑같은 것을 계속 치게 되니까 관중들이 지루해해서 어떤 즐거움을 줄까 고민을 하다가 단원들이 양악을 배웠어요.

저는 하모니카를 하려고 했지만 자료를 얻을 수 없어서 포기했는데 라디오에서 느닷없이 재즈하모니카 연주가의 발라드 음악이 나오는데 말할 수 없이 풍성한 사운드를 내더라고요.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서 아쉬운데, 투츠 틸레망(Toots thielemans)이라는 세계적인 재즈 연주가의 곡을 듣고 음반을 사려고 했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구하기가 힘들었어요.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클래식, 재즈, 팝... 동호회도 많지만 그때는 없었고, 어렵게 음반을 구해서 모델로 삼은 거죠.

▶ 투츠 틸레망(Toots thielemans)이 선생님이 되신 거네요. 얼마나 들으셨어요?

지금도 계속 듣고 있는데 워낙 재즈 하시는 분들은 음반이 많아요. 그분이 86세이고 하모니카 하신지가 60년이 됐는데 그동안의 음반이 40~50장 되거든요. 구할 수 있는 음반은 다 구해서 듣는데 배우는 게 끝이 없더라고요. 멜로디만 분다고 음악이 되는 게 아니라 각종 재즈 특유의 바리에이션이라든지 하모니카 테크닉 같은 것들을 지금도 꾸준히 학습을 하는 거죠.

▶ 얼마쯤 지나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감이 오셨어요.

처음에 발라드를 들으면서 1년 하면 되겠지 싶어서 독학으로 시작을 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니까 어렵고 현란한 기교들이 나와서 누구에게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 혼자 고민을 많이 했죠. 음반을 하나하나 들으면서 박자를 되감기 시켜서 ‘음악을 머릿속에 넣고 외우면 나중에 몸이 반응을 하겠지’ 생각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음악의 3요소인 화성, 멜로디, 리듬이 들리더라고요.

멜로디만 단순하게 들리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 우리가 재즈를 할 때는 주로 드럼, 피아노, 베이스를 트리오라고 하고 거기에 솔리스트가 들어가서 넷이서 연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멜로디는 솔리스트가 하고 나머지는 리듬을 치는데 그것이 다 들리더라는 얘기죠. 그러면서 재즈의 깊은 매력에 감동이 되었어요. 똑같이 ‘학교종이’를 해도 연주자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연주되는 것이 재즈의 매력이거든요.

▶ 우리는 십 년 들어도 잘 모를 것 같은데 음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몇 살 때부터 그런 음들이 들리셨어요?

예전에 사물놀이를 배울 때 한 장단을 듣고 따라 치는 훈련으로 청음훈련을 했거든요. 이미 어렸을 때부터 그런 훈련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 사물놀이와 서양음악은 전혀 다르지 않아요?

다르죠. 하지만 들어서 익혀야 되는 것은 음악에 대한 폼이 달라서 그렇지 똑같은 것 같아요. 사물놀이도 그 시끄러운 속에서 장구가락 찾아내기가 정말 어렵거든요. 그것을 계속 쫓아가다 보면 북은 어떻게 치나, 꽹과리는 어떻게 치나 그것이 다 들려요. 마찬가지로 양악도 계속 반복해서 쫓아가다 보니까 화음이 들리고 리듬이 들리고 그런 거죠.

▶ 앞을 못 보기 때문에 청력이 더 발달되지는 않을까 싶기도 해요.

저는 그렇게 해야만 했지만 사실 저보다 훌륭한 청음 실력자들이 많아요.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청음의 훈련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 시력은 언제 잃으신 건가요?

저는 모르는데 저희 어머님께서 얘기하시길 제가 보름 만에 열병을 얻었는데 지금의 홍역이라고 해요. 열이 40도 올랐는데 생각 없이 놔두었다가 나중에 뇌의 시신경이 파괴되어서 의사가 수술이 안 된다고 어쩔 수 없이 실명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그랬데요.

▶ 형제는 어떻게 되고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하네요.

남동생이 하나 있고 제가 장남이에요. 아버님은 노래를 잘하셨는데 박자를 잘 못 맞추셨어요. 멜로디는 잘하시는데 나중에 박자가 별로 안 맞으시고 어머니는 타고난 음치에 음악에는 전혀 문외한이셨어요. 아버님은 제가 5~6살 때 옛날가요, 트롯, ‘오동잎 한잎 두잎’ 이런 것을 가르쳐주셨어요. 술 한 잔 드시고 동네 분들에게 노래를 시키면 제가 하는 거예요. (웃음)

요즘에도 가족모임을 할 때 아버님이 꼭 하시고 싶어 하는 것이 노래방 가는 거예요. 춤추고 노래하자고 하셔서 가끔 가족이 노래방에 가기도 하는데 두세 시간 계속 하세요. 요즘 발라드를 부르면 지루하다고 옛 노래 부르시고 신이나면 탬버린 치면서 시간이 정신없이 가죠. (웃음)

▶ 노래 잘하신다는 소리 들었어요. 한 곡 듣고 싶네요.

공연 때 신이 나면 다른 퍼포먼스는 못하고 노래를 하는데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시더라고요. 쑥스러워서 노래는 그렇고 1집 중에서 김광진 씨 원곡을 리메이크한 ‘편지’ 들려드릴게요.

▶ 하모니카에서 저런 소리가 난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요. 피아노는 누가 연주하셨나요?

밴드도 같이하고, 피아노 듀오로 항상 같이해주시는 재즈피아니스트 민경인 씨에요.

▶ 학교생활은 어떠셨나요? 어머니가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제 눈뜨게 하려고 정말 많은 것을 하셨어요. 눈을 뜨게 할수 있다 하는 말이 나오면 다 해보셨다고 그래요. 학교는 시각장애인 학교에 다녔는데 저희들 나름대로의 생활방식이 있어요. 공에 방울을 넣어서 축구를 하거나 야구는 핸드볼 공을 땅으로 굴려서 소리를 듣고 치는 거죠.

뛰어노는 것이 좋아서 우리가 개발한 농구를 많이 했는데 비닐봉지에 공을 넣어서 골대를 향해서 던지는 연습을 하고 골을 넣으면 소리가 나요. 그 맛에 골대 기둥에 부딪치든 말든 신나서 했죠. 옆에 보이는 친구들을 데려와서 같이 하면서 방향을 맞추었고요.

▶ 기숙사 생활을 하셨어요?

나름대로 즐겁게 생활했어요. 선배들이 이것저것 가르쳐주고, 취미생활이 많지는 않아서 주로 음악을 했는데 여름에 방안에 있기가 그래서 학교에 있는 기타를 다 가지고 나와서 누구랄 것도 없이 한 사람이 치면 다 같이 두세 시간을 치고 그랬어요.

◇ 소리로 통하는 그들만의 리그

▶ 초등학교 때부터 밴드부 활동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밴드도 하고 중학교부터는 사물놀이를 하면서 중3 때부터 무대에도 섰어요. 밴드부에서 북이나 드럼, 심벌즈 같은 타악기를 치면서 리듬에 관한 감을 익혔는데 선생님이 제가 드럼을 잘 치니까 졸업생 충원차원에서 부르셨어요. 처음에는 악보 보는데도 한참 걸리고 맞추는데 힘들었었죠.

▶ 사물놀이는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밴드부가 해체되면서 뭔가를 하긴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국사 선생님 부전공이 대금이라 사물놀이를 따로 하실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특별활동 시간에 애들이 굿거리장단 하는 것을 들으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굿거리장단에 매료되어서 그다음 해에 사물놀이를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김덕수 사물놀이라는 테이프를 선생님이 주셔서 신명나는 가락에 취해 방과 후 밤 12시까지 연습을 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혼나기도 하고 그랬어요.

▶ 어머님은 뭐라고 하셨어요?

집안이 살기 어려우니까 이런저런 관심을 보일 여력이 없으셨어요. 아버님이 외국에 공사현장에 가시고 안 계셔서 혼자 동생 키우시면서 계셨는데 엄마 입장에서는 제가 뭐든 한다고 하면 고마운 거였죠.

▶ ‘세계 사물놀이 대회’ 대상도 타셨죠?

3년을 열심히 해서 김덕수 선생님을 만났어요. ‘사물놀이 겨루기 한마당’ 1회를 할 때 오셔서 정신없이 연주를 했는데 따로 부르시더니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을 텐데 잘한다고 공연도 시켜주고 하시겠다고 하셨어요. 원래는 사물놀이 상은 앉아서 하는 것과 서서하는 것을 같이 합산해서 점수를 매겨 상을 주는데 저희는 앉아서만 했기 때문에 상은 기대도 안 했어요.

우리도 이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데 김덕수 선생님이 ‘앉은 반 특별상’을 따로 만드셔서 시상을 해주셨어요. 그 이후부터는 앉은 반, 선 반 나누지 말고 음악적으로 가장 잘한 팀에게 주자고 제도가 달라졌고 몇 년 후에 저희가 나가서 대상까지 받게 되었죠.

▶ 그 이후에 김덕수 사물놀이패에 들어가신 건가요?

그때는 학생이라 들어가지는 못하고 난장 극장에서 한두 시간 공연을 만들어주셔서 공연을 하다가 졸업하고 인천에서 사물놀이를 2~3년 꾸준히 하다가 김덕수 사물놀이 팀에 들어갔어요. 많은 친구들이 직업이 한정적이라 고민을 하는데 20대 때는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고 싶었어요.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자는 사명감은 둘째 치고 음악이 하고 싶었고 일반사물놀이뿐만 아니라 무속 연구도 하고 무대에 올리고 싶었는데 김덕수 선생님이 불러주셔서 그쪽으로 갔지요. 친구들은 주로 안마를 많이 하고 있어요.

◇ 가장 보고 싶은 것은 나의 얼굴, 맺힌 것을 날려 보낼 쾌속질주의 꿈

▶ 하루에 연습을 얼마나 하세요?

처음에는 재미가 있으니까 7~8시간씩 했어요. 저는 사물놀이를 하면서도 쉬는 시간에 심심한 게 싫어서 뭐라도 만져야 되요. 입술이 상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재미가 있으니까 하죠.

▶ 돈은 좀 버셨어요?

사물놀이 할 때보다는 나아요. (웃음)

▶ 결혼은 왜 안 하셨어요?

여자 친구도 없고 사실은 음악 하는 사람들이, 제 주위에도 그렇고 결혼 안 한 분들이 많아요. 연애는 해봤는데 어찌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웃음)

▶ 좋아하는 여성상은요?

분위기가 활기찬 친구들이 좋아요. 제가 일단 힘들었는데 만나서 서로 힘들어하면 기운이 빠지잖아요. 첫 말이 우울하게 나오는 것보다는 생기가 있는 게 좋죠.

▶ 예를 들어 만약 눈을 뜨게 된다면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제 얼굴을 봐야겠죠. 만져서 보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이 틀릴 테니, 가장 먼저 제 얼굴을 거울로 보고 싶어요. 다음으로는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은데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쾌속질주를 해보고 싶어요. 내 속에 많이 맺혀있는 것들을 시속 150㎞로 달려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어요.

▶ 음악활동 안 할 때는 주로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요?

주로 책을 읽어요. 요즘에는 바빠서 잘 못 읽었는데 추리소설과 역사소설을 많이 봐요. 기분전환에는 최고인 것 같아요. 사색을 하는 책은 오히려 머리가 무거워지는 것 같고 역사소설 속에는 교훈도 있고 그 안에 사랑, 미움, 질투, 전쟁, 정치 다 있으니까요.

(표준FM 98.1MHz)는 월~토 오후 4시 5분에 방송된다.

정리(CBS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이상원)/에이블뉴스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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