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매탄고등학교 체육교사 한정원(48세·지체4급)씨가 골프를 하면서 겪은 일화를 말하고 있는 모습. ⓒ에이블뉴스

지난 2013년 여름 교사연수는 한정원(48세·지체4급·수원 매탄고 교사)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중앙선을 침범해 들어온 차량은 그가 탄 버스와 강하게 충돌했고 왼쪽 다리를 가져갔다.

그는 병원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 구급차에서 심장이 활동을 멈추는 쇼크가 두 번이나 온 것이다. 상황이 좋지 않다 판단한 의사는 서울 소재의 대학병원이 아닌 가까운 아주대학교 병원으로 그를 옮겼다. 사고를 당한지 3시간 30분 만이었다.

최초 담당 의사는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그에게 다리를 절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왼쪽 다리뼈는 산산조각 났지만 엄지발가락의 동맥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 과정에서 왼쪽 다리 환부에 침투한 세균들이 패혈증이 불러왔고 상황은 안 좋아졌다.

“중환자실에서 환상을 봤습니다. 몸집이 큰 예수님과 한쪽 다리가 없는 아이의 뒷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더군요. 너에게 새로운 신발을 주겠다고요. 그 환상을 보고 제 다리가 절단될 것이라는 걸 예감했죠.”

이상하게도 환상을 본 후 그의 몸에는 패혈증이 급속도로 퍼졌다. 병원에서는 긴급하게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잡았다. 환상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의사의 말은 없었다.

수술에 앞서 그는 주치의에게 본인의 직업을 체육교사로 소개하고 운동장에서 뛸 수 있게만 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절단 부위를 두고 각자 다른 의견을 보였다. 주치의는 근육이 살아있으니 무릎까지는 살려보자고 했고 다른 의사들은 무릎 위를 절단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무릎 밑 7센티를 절단했다.

그는 다른 중도장애인보다 비교적 빠르게 장애를 받아들였다. 사회에 빠르게 복귀하겠다는 간절함이 있었고, 절망한다고 해서 절단된 다리가 돌아온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

“저는 제 상황을 직시하고 판단 했어요. 다리를 잃어버린 것에 좌절하기보다는 제 몸이 어떤 상황인지 판단을 한거죠. 그리고 저는 (현실적으로) 안되는 것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별명도 돌격 앞으로예요. 아마 이런 성격 때문에 장애를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던 것 같아요.”

한정원씨가 스윙을 하는 모습. ⓒ한정원

1년 2개월의 병원생활을 마친 그가 방문한 곳은 휠체어테니스 경기장이었다. 휠체어테니스에 재미를 붙인 그는 입문한 지 8개월 만에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절단된 다리 부위가 말썽을 부렸다. 휠체어테니스를 하면서 절단 부위의 끝(환부)에 피가 몰려 붓기가 생기더니 결국에는 환부가 벌어진 것이다. 그의 장애특성과 맞지 않는 운동이다보니 몸에 무리가 갔고 결국 그만둬야했다.

휠체어테니스를 그만두자 경기가맹단체 관계자들이 연락을 취해왔다. 그를 영입하기 위해 러브콜을 보낸 곳은 장애인육상연맹, 사이클연맹 등이었다.

2015년 6월에는 장애인조정 국가대표로 뽑혀 한달 간 훈련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나 말썽을 일으킨 것은 왼쪽 다리였다. 당시 그는 리우여름패럴림픽대회 출전권 확보를 두고 맹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훈련을 하던 중 다리 끝에서 힘줄이 튀어나온 것이다.

특히 평창동계패럴림픽의 바이애슬론 종목 상비군으로 활약을 하기도 했다. 석달 간 평창 알펜시아에서 훈련을 받았기도 했다.

“조정은 단체종목이에요. 4명이 한 팀을 이뤄야 하죠. 제가 본인 몫을 못 하면 피해는 다른 선수들에게 돌아가요. 저는 감독님께 다른 선수를 뽑을 것을 말하고 국가대표에서 나오게 됐습니다.”

일본 장애인오픈 골프대회에 출전한 한정원씨가 샷을 하고 있다. 이 대회에서 한정원씨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에이블뉴스

국가대표팀을 나온 그는 곧바로 수술을 받았다. 주치의가 어떻게 몸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운동을 했냐고 물기도 했다고. 그런 그에게 주치의가 추천한 운동은 골프였다.

골프를 하겠다고 하자 남편이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남편이 원래 골프를 즐겼고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이기 때문이었다. 골프를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지인은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배워도 될 것 같다며 프로선수 한명을 소개시켜줬다. 흥미를 붙인 그의 실력은 나날히 늘었다. 2016년 일본에서 개최된 장애인오픈 골프대회 여자부에 출전해 2등을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여성 비장애인아마추어 골퍼 3000여명이 출전한 가운데 열린 SBS골프 장타대회에 9위에 들기도 했다. 올해는 이 대회에 참가해 반드시 1등을 하고.

골프장에서 장애인 차별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는 유럽과 미국의 절단장애인골프대회에서 장애인골퍼들이 반바지를 입고 의지(의족)은 노출한 채 경기를 하는 사진보고 충격을 받았다.

반바지를 입고 골프를 하는 지인이나 사진을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반바지를 입고 골프 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2016년 4월 이를 실행했다. 하지만 외국과 한국은 장애를 받아들이는 인식의 수준이 굉장히 차이가 났다.

“반바지를 입고가니 골프장 매니저가 저를 불렀습니다. 제게 의지(의족)이 보기 혐오스럽다고 하더군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있으니 바지를 갈아입고 오라고 했습니다. 함께 골프를 치는 장애인 골퍼들도 바지를 갈아입으라 하더군요. 당사자부터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게 문제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호주절단장애인골프대회 여자부문에서 우승을 한 한정원씨(사진 우측). ⓒ한정원

그는 최근 호주절단장애인골프대회에서 여자부 최강자임을 증명하기도 했다. 대회의 존재를 알게된 것은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창동계패럴림픽 성화봉송주자인 그는 한 기자회견에 참석했는데 오토복코리아의 한 관계자가 호주대회를 알려주고 출전을 권유한 것이다.

대회 2개월을 앞두고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했다. 웨이트를 통해 왼쪽 다리의 근육량을 높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골프는 특성상 스윙과정에서 왼쪽다리에 많은 체중을 싣게 되기 때문이다. 웨이트에 집중한 결과 인치가 늘어나 새로운 소켓을 제작해야만 했다.

훈련은 하루평균 8시간씩 꾸준히 했다. 대부분의 연습은 실내연습장(스크린골프장)에서 이뤄졌다. 해외에 나가서 정규코스를 라운딩하고 싶었지만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접어야 했다.

대회를 앞두고 라운딩을 했지만 하필 당일 눈이 많이 와서 9홀 까지 밖에 돌지 못하고 발걸음을 옴겨야 했다. 더군다나 대회신청부터 항공권 구매, 대회비 송금, 숙소 예약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이 다 했다.

“대회를 실질적으로 준비한 기간은 2개월 정도예요. 대부분 실내연습장에서 연습을 하고 정규코스도 제대로 못돌았죠. 대회 결과는 좋았지만요. 아쉬운 건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는거예요. 장애인골프협회가 있지만 파크골프로 운영되다보니 도움받기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다 했죠.”

한정원씨가 호주절단장애인 골프대회에서 퍼팅을 하고 있는 모습. ⓒ한정원

호주대회에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미국에서 열리는 제3회 월드챔피언십 장애인골프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노리고 있다. 이 대회는 전세계 28개국 장애인골퍼들이 출전하는 큰 규모의 대회다.

나아가 2024년에 개최예정인 파리여름패럴림픽대회에 골프종목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 반드시 나가 메달을 목에걸고 싶다는 포부을 밝히기도 했다. 장애인골프 종목에서 메달리스트가 나오게 되면 저변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파리여름패럴림픽의 종목으로 골프가 확정된건 아니예요. 유럽과 미국에 장애인골프 인구가 많은 만큼 패럴림픽 정식 종목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메달을 획득하면 장애인 골프에 대한 저변이 확대될 것 같아요. 저는 저변을 확대하는 씨앗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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