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박종태 객원기자. 장애인들의 문제라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에이블뉴스

오전 4시, 매일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분주히 지팡이를 짚고 떠나는 그는 어딘가 조금 수상쩍다. 상의와 하의, 그리고 구두, 카메라, 가방까지 모두 검정색이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한여름에도, 폭설이 내려도 항상 의상은 같다. “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라는 의문이 드는 그의 직업은 ‘기자’다. 타고난 글쟁이는 아니다. 장애인당사자로, 장애인들의 문제를 온 몸으로 부딪혀 개선하는 현장형에 가깝다. 그의 기사는 짧지만, 날카롭고 사람내가 묻어난다.

“현장에서 보지 않은 것은 기사로 써본 적이 없습니다. 현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장애인들의 문제라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에이블뉴스의 장애인권익지킴이 박종태 객원기자(58세, 지체2급)를 만났다.

“큰 일이 났습니다. 한국철도공사가 2층 KTX 고속열차를 만든다는데 장애인 편의가 어떻게 돼 있는지 알아봐야할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 잡은 공간에서도 박 기자는 취재 걱정부터 했다. 스케줄이 적힌 수첩은 빡빡했다. 당장 다음 주에는 강원도 원주지역의 주민센터 장애인 편의를 점검해야 한단다. 매일 매일 포털사이트를 통해 검색해 새로운 공공기관 개소, 사건 등을 물색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일상이다. 장애인들의 제보전화 하나도 허투루 흘리지 않는다. 펜을 든지 벌써 24년째, 에이블뉴스와 한솥밥을 먹은 지는 14년째다.

“저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안 좋고 도움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그분들은 ‘괜찮아지면 어려운 사람을 도왔으면 좋겠다’고 조언했죠. 그 것을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박 기자는 성도, 이름도 모른 채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서 성장했다. 목공일을 배우던 청소년 시절, 뺑소니 교통사고로 지체장애까지 입었다. 보호자 없는 병원생활로 영양실조, 결핵까지 걸렸다. 수도원과 요양원을 전전해온 박 기자는 1992년 경기도 안산에 거주지를 옮겼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장애인 관련 단체와는 끈이 전혀 없었다.

우연히 업무 차 방문했던 4층 건물의 안산시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모습에 숨겨놨던 그의 고발 본능이 기지개를 폈다. 즉각 개선을 요구했지만, 장애인식 조차 없었던 90년대 초반 한 장애인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주는 이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유력 일간지인 조선일보의 힘을 빌렸다. 독자투고란에 이를 고발했고, 안산시청이 1년 만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것. 언론의 힘은 크고 짜릿했다.

“개인적으로 투고 활동을 했지만, 장애인들 삶에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장애인계에 제대로 된 언론이 있다면 편의시설이 더욱 더 해결될 텐데 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평소 알고 지내던 백종환 대표가 에이블뉴스를 창간한다 하더군요. 저도 힘을 보태고 싶어서 응했습니다.”

부식된 점자블록을 취재하는 박종태 기자. 평소에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에이블뉴스

2002년 12월1일,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타이틀을 내걸고 창간한 에이블뉴스. 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미미했다. 취재를 갔지만 ‘에이블뉴스가 무슨 신문이냐’며 깔보며 무시당하기 일쑤. 박 기자가 편의시설을 지적해도 그 뿐이었다. 개선을 위해서는 강력한 무기가 필요했다.

포털사이트 제휴를 목표로 전 직원이 집중한 끝에 마침내 2007년 다음에 이어 2008년 1월부터 네이버에 에이블뉴스 기사가 올라갔다. “아, 저희 기사가 났더군요..” 기사에 대한 피드백이 오기 시작했다. 때로는 욕이 날아오기도 했지만, 개선점이 더 많았다. 2016년 11월, 이제는 보도 후 스스로 개선했다는 공공기관들의 연락이 온다.

“얼마 전에 9호선 화장실 앞 자판기가 점자블록 위에 있었습니다. 바로 보도하니 홍보팀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자판기를 옮겼다고 손수 사진을 찍어 보냈습니다. 에이블뉴스의 영향력이 커진 겁니다.”

14년간 그가 보도한 기사는 총 2100여건. 2008년 대한민국 사법사상 최초 사법연수를 받게 된 시각장애인 최영씨를 위한 사법연수원 편의시설 개선, 세계의 랜드마크로 손색없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속 시각장애인 안전문제 지적, 삼성물산과의 협의 끝 이뤄낸 서울시청 신청사 장애인 편의시설 등 노력은 끝없이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KBS, MBC, 연합뉴스의 제보를 통해 안전을 위협받는 점자블록, 규격이 맞지 않은 음향신호기 등을 고발했고, 한걸음 더 나아가 명동성당 장애인 편의시설 인권위 진정 및 1인 시위, 제품안전이 이뤄지지 않은 스쿠루방식 수직형 리프트에 분노하며 이희범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을 고발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한국도로교통공사 국정감사에서는 박 기자가 단독 보도한 전국 고속도로에 설치된 졸음쉼터 속 장애인화장실 미설치 부분이 지적됐다. 그 외 수많은 보도를 하며 장애인계의 ‘암행어사’,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은 박 기자, 그가 가장 취재에 열을 올렸던 부분은 장애인 안전사고다.

“지난 2008년 4월 수원시 화서역에서 고정형 휠체어리프트를 사용하던 이모씨가 추락해 사망했어요. 추락사고 난 것을 아무도 몰랐죠. 기사 한 줄 나간 적 없으니깐요. 그런데 아들 되시는 분이 저에게 연락이 와서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현장에 가서 CCTV를 통해 당시 이 씨의 모습을 보니 참혹했습니다. ‘이 거다’ 싶었습니다.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단독보도입니다.”

박종태 기자의 단독보도로 모든 안산선 철도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화서역 추락사고 피해자 유족은 그에게 거듭 감사함을 표시했다.ⓒ에이블뉴스

사고 당시 CCTV에는 이 씨의 전동휠체어를 끄지 않은 채 건성으로 돕는 공익근무요원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추락사고가 나서야 그때서야 달려가는 모습에 같은 당사자로서, 기자로서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박 기자의 보도로 인해 장애인단체들도 ‘화서역 장애인 추락참사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기자회견을 갖는 등 재발방지 대책을 강력히 촉구했다.

그 결과 화서역을 비롯한 모든 안산선 철도에 엘리베이터 설치 약속을 받아냈다. 또한 유족 보상금 문제도 끝까지 요구한 끝에 5000만원의 보상금까지 얻어낸 것. 유족은 박 기자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천주교 수원교구 사회복지회에 3000만원을 기부했다.

“유가족인 아들이 저에게 ‘박 기자님으로 인해 아버님이 눈을 편하게 감았을 것’이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어요. 사고가 났을 때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서 찾다 찾다 저를 찾았다 했거든요. 판단이 옳았다고 하는 말에 저는 너무 감사했어요. 데모해도 해결해주지 않던 엘리베이터가 설치됐을 때 너무 뿌듯했습니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인 박 기자가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활동하며 받는 원고료는 1건당 2만원에 불과하다. 한 달 평균 20건이 넘는 기사를 쓰기 위해 자비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데 교통비 또한 만만치 않다. 일본의 보조공학기기 박람회 속 다양한 보조공학기기를 소개해주기 위해 2박3일간 체류하기도, 하루 동안 경상도와 전라도를 넘나들기도 한다.

58세의 적지 않은 나이, 중증장애인으로서 불편한 몸, “왜 그렇게까지 하십니까?”라는 질문은 수도 없이 많이 받았다. 즉각 “내가 해야 할 소임이고, 사명감입니다”라는 답변이 날아온다. 참, 못 말리는 열정이다.

음향신호기를 점검하는 박종태 기자.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질문에 "사명감"이라는 답변이 왔다.ⓒ에이블뉴스

에이블뉴스에 대한 애정 또한 만만치 않다. 객원기자인 그가 에이블뉴스를 방문하는 날은 매주 금요일, 절대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다. 검색을 통해 가장 ‘핫’한 간식거리를 두 손 가득 든 채다. “우리 가족들, 고생들 하잖아. 회사도 열악한데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지” 백종환 대표의 ‘엄마’라는 명칭이 아주 딱 들어맞는다.

“고아이면서 중증장애인 한 사람으로서 자립을 해서 이만큼 왔어요.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이 객원기자로 열심히 노력한 끝에 인간승리를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몸이 건강할 때까지 장애인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박 기자는 기자 생활 24년 만에 ‘2016 한국장애인인권상’ 인권실천부분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지원 없이 오로지 개인의 힘으로 이뤄낸 영광이지만 “아이고, 상은 참 쑥스러워”라며 소감조차 생략했다. 에이블뉴스는 ‘생명’과도 같은 존재라는 박 기자. 한 사람의 것이 아닌, 대한민국 장애인들의 신문사로 키우기 위해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장애인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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