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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당당하게

지체장애 1급 윤정희 씨의 삶-①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5-02-17 15:19:45
‘높으디 높은 산마루
낡은 고목(古木)에 못 박힌 듯 기대어
내 홀로 긴 밤을
무엇을 간구하며 울어 왔는가.

아아 이 아침
시들은 핏줄의 굽이굽이로
사늘한 가슴의 한복판까지
은은히 울려오는 종소리.

이제 눈감아도 오히려
꽃다운 하늘이거니
내 영혼의 촛불로
어둠 속에 나래 떨던 샛별아 숨으라.

환히 트이는 이마 위
떠오르는 햇살은
시월상달의 꿈과 같고나.

메마른 입술에 피가 돌아
오래 잊었던 피리의
가락을 더듬노니

새들 즐거이 구름 끝에 노래 부르고
사슴과 토끼는
한 포기 향기로운 싸릿순을 사양하라.

여기 높으디 높은 산마루
맑은 바람 속에 옷자락을 날리며
내 홀로 서서
무엇을 기다리며 노래하는가.’


이 시는 조지훈 시인의 ‘산상의 노래’이다. 홀로 밤새 울었던 어두운 과거의 밤이 지나고 새들 즐거이 노래하고 사슴과 토끼가 즐거이 뛰노는 아침을 맞이하며 기다린 그 무엇은 해방의 감격이었다.


윤정희 씨.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윤정희 씨. ⓒ이복남
윤정희 씨는 지체 1급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체장애 1급으로 살아가기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윤정희 씨는 신체적 장애보다 더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모성애는 강하지만, 자식이 ‘불구’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어머니는 장애인이 되면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었던 세상의 모든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산상의 노래’처럼 어두운 밤이 지나고 밝은 아침을 맞이했지만 윤정희 씨는 성장하는 동안은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윤정희(1963년생) 씨는 부산 초장동에서 2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무렵 아버지는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기에 밥은 먹고 살만했다. 언니 오빠들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부모님뿐만 아니라 형제에게서도 살뜰한 보살핌을 받았다.

아버지 고향은 시골이어서 그의 집 근처는 고향에서 도시로 새 삶을 찾아 나온 친인척들이 모여 살았다. 그 많은 친척들에게 그는 공주님으로 대접 받았다. 그는 방글방글 웃고 자박자박 걸어 다니며 뭇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어른이 되어서 다른 장애인들과 만났을 때 어릴 때 걸은 기억이 있는가 없는가는 좀 차이가 있더라고요.”

스스로의 힘으로 걸어 다니면서 세상을 탐구해봤고, 세상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다는 느낌은 무의식 속에 자기애와 자신감으로 남아있음을 느낀단다.

행복이 계속되던 어느 날 세살의 작은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이를 업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의사는 감기라며 해열제를 주사했다. 열은 곧 내렸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난 아이는, 몇 걸음 못 걷고 픽 쓰러졌다.

나중에는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했다.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척추에 침입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때 세상이 무너져 내려앉는 것 같더라고 회상했다. 어머니의 그때 절망감은 그를 키우는 내내 마음의 저변에 강물처럼 흘렀다.

일하는 윤정희 씨.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일하는 윤정희 씨. ⓒ이복남
어머니는 하루아침에 쓰러진 아이를, 한 번에 벌떡 일으켜 세워줄 방도를 찾아 백방으로 노력했다. 병원을 찾고 한의원을 찾고 교회도 가고 절에도 갔고 유명하다는 도사를 만나기도 했다.

두더지를 고아먹이기도 하고, 산부인과에서 태반까지 구해 먹였다. 오히려 상체는 비대해지고 마비가 된 하체는 관절의 근육이 수축되어 기형이 심해졌다. 그런 과정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심장이 바싹 바싹 타들어갔다.

‘이런 집에는 아무 걱정이 없을 줄 알았는데....’ 부모님의 지인들이 그의 집에 왔을 때 그를 보며 늘 하는 말이었다. 그 사람들의 측은지심이자 일종의 안도감이기도 했을 것이다.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이런 집에도 이런 엄청난 우환이 있다니…….

“돈은 없어도, 아이만 건강했으면 아무 걱정이 없겠어요. 내 다리라도 떼어줘서 아이가 걸을 수 있다면......”

어머니는 늘 그렇게 대답했다. 그런 대화를 들으면 어린 그는 ‘어른들은 장애를 가지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큰 불행으로 여기는구나.’ 생각했다.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면 어른들이 생각을 바꾸겠지.’ 그는 어른들을 향해 웃을 수 있을 만큼 환히 웃어주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은 역효과였다.

어머니는 ‘니가 아직 인생을 몰라서 그렇게 웃고 있지, 성한 사람도 살기 힘든 세상인데, 이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이렇게 정신 못 차리고 있냐’고 그를 나무랐다. 곧 알게 될 차가운 현실에 딸이 느끼게 될 절망의 낙차를 줄이고 싶은 어머니의 심정이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지만, 아직 겪어보진 못한, 그러나 분명히 다가올 미래가 너무 너무 무서웠단다.

윤정희 씨의 이모저모.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윤정희 씨의 이모저모. ⓒ이복남
“엄마 말에 의하면 내 인생에서는 행복이 금지되어있다는 거잖아요? 나는 불행해지기 위해 자라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불행의 폭을 줄이는 것이지, 삶의 질 자체를 바꾼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죠. 그게 자기 암시가 되어서 진짜로 불행해져버리는 것을 어른들은 몰랐던 거예요. 우리 시대 엄마들은 워낙 시대가 척박하다보니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었겠지만, 지금도 장애아를 둔 젊은 엄마들의 감정이나 생각도 그대로란 게 참 속상해요.”

그는 성지초등학교를 입학했는데, 1학년은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그 당시 장애아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이 방문하는 제도가 있어서 선생님이 집으로 왔다. 2학년이 되어 학교에 나가기 시작했다. 식모언니가 그를 업고 매일 등교했다. 콩나물시루처럼 아이들로 꽉 찬 교실과 권위적인 선생님이 무서웠다고 그는 회상했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야뇨증이 생겼다. 어머니는 한약을 해먹이며, 밤에 오줌 싸는 일을 고쳐보려고 했지만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혼자서는 한 발짝도 못 움직이는 어린 그가 군사훈련같이 획일화된 70년대 교육제도 속에서 극도의 불안을 느낀 데서 오는 증상임을 어머니는 헤아리지 못했다.

장애아이기 때문에 놀림을 받아서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걸까? 단호히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아이들의 호기심어린 눈길에 당황하고 심란한 적은 있었지만, 노골적인 놀림을 받은 적은 없어요. 언니가 하루 종일 교실에서 저랑 같이 있는데, 누가 감히 놀리겠어요? 언니에게 맞아죽을라고.”

언니는 선생 심부름도 많이 해주고 방과 후 교실청소도 깨끗이 해주어서 선생으로는 좋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학교에서 배우는 걸 진심으로 좋아해서 글짓기도 잘 했고, 노래도 잘 했다. 그림도 잘 그렸고, 만들기도 잘했는데, 특히 쉬는 시간이면 공책 뒷장에 쓱쓱 그려내는 순정만화의 주인공에 아이들은 감탄하며 그를 빙 둘러싸서 지켜보기도 했었다. <2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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