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칼로스. ⓒ샘

토스티의 ‘아이디알레’를 마치고 시각 장애인 칼로스 알베르토는 천천히 몸을 관중석으로 돌렸다.

“다음에 부를 곡은 (토스티의)‘마레치아레’입니다. 이곡은 집 안에 있는 연인을 향해 창밖에서 부르는 연가입니다.” 말을 마치고 피아노 건반을 향해 앉는다.

낮고 정중한 음성에 청중이 매료된다. 1부 피아노 독주회에 이어진 2부 성악 무대 역시 무겁고 장중한 무대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반주를 하기 위해 피아노 앞에 몸을 가다듬던 그가 무언가 할 말이 더 있는 듯 청중을 향해 몸을 돌리고 말했다.

“창밖에 모기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조용히 내 뱉은 조용한 유머 한 마디는 수백의 청중이 모인 관중석을 폭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전혀 예상 밖이다. 1시간이 훨씬 넘는 동안 난이도 높은 피아노 연주와 눈물이 흐를 정도의 애절한 곡들로 열창을 이어가며 청중으로 하여금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할 정도로 장엄한 분위기에 휩싸이게 한 상태에서 던진 한 마디는 사람들을 순식간에 묘한 카타르시스의 세계로 이끌어 들였다.

그의 노래가 이어졌다. 폭소로 진정됐던 분위기가 다시 감동의 분위기로 업되는 데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신들린 듯한 열정, 거기서 터져 나오는 다이나믹한 음성, 과연 칼로스였다.

초겨울로 들어서는 쌉쌀한 날씨가 기분 좋게 전신을 긴장하게 하는 지난 2010년 11월의 마지막 주말 저녁, 버지니아 북부에 위치한 토머스 제퍼슨 극장에서는 시각 장애인 칼로스 알베르토 아이베이의 피아노 독주회와 성악의 밤 행사가 열렸다.

메디칼 미션 오브 머시 유에스에이(Medical Mission of Mercy USA)가 주최했다. 회원들은 오디토리엄 입구에서 티켓 판매와 동시에 시디와 크리스마스 장식품들을 판매하며 자선 모금 활동을 하고 있었다.

오디토리엄 입구를 들어서자 남자 중학생 두 명이 순서지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무대 뒤에는 빨간색 커튼이 쳐져 있었고 칠이 벗겨진 고풍스런 피아노가 넓지 않은 무대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더 자세한 취재를 위해 미관상 좋지 않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무대 가까이 자리해 노트와 카메라를 준비하고 주인공을 기다렸다.

주최 측에서 간단히 행사의 취지를 알리고 칼로스를 호명했다. 커튼을 열고 어머니의 팔을 잡은 칼로스가 무대 중앙에 놓인 피아노 앞으로 다가 왔다. 자식을 피아노에 앉힌 노구의 어머니는 사랑 가득 담긴 표정을 짧게 아들에게 보이고는 무대 뒤로 사라졌다.

우리에 귀에 익지 않은 파필론 작품 넘버 2와 카네이발 작품 7번등이 이어졌다. 곡의 진행이 높낮이가 심하고 평범한 음의 흐름이 아니어서 피아노에 조예가 깊지 않은 청중들이 집중하기에 다소 힘든 점도 없지 않았지만 난이도 높은 곡을 무난히 소화해 내는 그의 빠른 손놀림은 현란한 느낌마저 들게했다. 주의 깊게 그의 손을 살펴보았다.

섬섬 옥수, 그의 손은 그랬다. 31세된 남자의 투박한 손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남성적인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장한 것 같은 하얀 피부를 가진 손, 그 손에 의해 환상적인 피아노 연주는 계속됐다.

가을 밤에 어울리는 낭만주의적인 곡들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지 않은 음악에 점점 깊이 빠져들어 깊은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신비한 힘을 그는 지니고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관중을 향해 인사하고 있는 칼로스. ⓒ샘

* 샘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전 미상원 장애인국 인턴을 지냈다. 현재 TEC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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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지체장애인으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사회학과를 졸업, 미국 탐 하킨 상원의원 장애국 인턴을 역임했다. 또한 서울장애인체육회 워싱턴 통신원, 서울복지재단 워싱턴 통신원,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출간한 수필집 ‘사랑, 그 빛나는 조각들’은 1992년 올해의 우수도서로 선정됐으며, 2009년에는 워싱턴 문학 수필부문 가작에 당선됐다. 각종 미국 장애인 소식을 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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