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아티스트 고홍석. ⓒ고홍석

어린 시절 고무풍선을 갖고 놀았던 기억은 누구나 갖고 있다. 놀이공원에 가면 으레 풍선을 손에 들고 즐겁게 뛰어놀던 추억도 선명하다.

어른이 되어서도 풍선은 기념일이나 축하해야 할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렇듯 풍선은 인간의 날고 싶은 욕망을 채워 주며 즐거움, 기쁨과 연결돼 다가온다.

이 풍선을 재료 삼아 또 다른 작품을 창조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을 벌룬 아티스트라 고도 하고 풍선 안에 공기를 넣어 작업을 하기 때문에 ‘공기 조각가’라고도 한다.

그런데 시각 장애를 갖고 벌룬 아티스트로 20년 넘게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고홍석이다.

풍선으로 풍선처럼 날아오른 사나이

인생에서 우연인 듯 필연처럼 느껴지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그에게는 풍선과의 만남이 그랬다. 10대에 베체트씨병 진단을 받았다. 모든 신경에 염증이 생겨 견딜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다가 통증이 사라지면 시신경이 손상되어 시각장애가 생기는 무서운 병이다.

시각장애 증상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나타났는데 그럭저럭 졸업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졸업 후에는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고 20대를 무기력하게 보냈다.

가장 왕성한 청년기를 무의미하게 보내며 의기소침해 있을 무렵, 신문에 딸려 온 전단지에서 백화점 문화센터 풍선아트 특강 프로그램을 보았다. 어렸을 때 풍선을 갖고 놀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무작정 문화센터를 찾아갔다.

강습 시간에 강사가 보여 준 풍선 전문잡지 속의 풍선아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세계였다. 그것이 그가 풍선아트라는 세계에 들어오게 된 계기였고, 이후 더 알고 싶은 욕구와 만들고 싶은 열정이 점점 커졌다. 그래서 열심히 풍선아트 관련 책도 사서 보고, 풍선을 사다가 집에서 연습을 수없이 해 보았다.

시각장애 1급 진단은 받았지만 예전에 또렷이 보았던 경험과 아직 어렴풋하게 보이는 시력이 남아 있기에 해 보니 가능하였다. 1998년에 전문가과정 교육을 수료한 후 현장을 경험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니면서 사람들이 풍선아트를 많이 접하고 그 가치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생겼다.

그 무렵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가 많이 생겼고 그는 풍선아트 대중화를 목표로 ‘풍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풍사모’ 카페를 개설했다. 동호회 회원이 1만 명이 넘을 만큼 매우 활성화됐고 회원들과 함께 오프라인에서 작품 전시회도 수차례 개최했다.

그 당시 풍선아트와 관련한 기본적인 내용의 책이 없던 터라 고홍석은 풍선 이론서의 필요성을 느끼고 「고홍석의 매직벌룬 노하우」(2004) 라는 책을 냈다.

이후 벌룬아트는 직업으로 이어졌고 그는 사업체를 운영하며 강의, 서적 출판, 행사 등을 통해 활동을 확장해 갔다. 특히 2014년 출간한 책 「Heart Love is」에서는 벌룬 아티스트에게 스스로 작품을 디자인하고 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경험을 소개한 책이라 비전공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이 책은 현재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일본에서 판매 중이다. 같은 해 태국 벌룬 회사에서 주최한 벌룬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네트워크가 형성됐고 2015년 대만 풍선 전시회에 작품 의뢰를 받으면서 해외에서 인지도를 높이게 되었다.

지난해 미국 LA에서 전시회를 할 때는 관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제작부터 해체 단계까지 관객들과 함께 진행하였다. 해체도 하나의 퍼포먼스였다. 관객들은 마치 파티를 하듯 즐거워하였다. 관객들이 행복하게 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할 때 고홍석은 풍선 아티스트로 큰 보람을 느꼈다.

풍선아트 작품1. ⓒ고홍석

공기 조각가

풍선은 둥근 형태의 라운드 풍선과 직선 형태의 요술풍선으로 구분된다. 주로 원과 직선의 조합으로 작품 전체의 형태가 만들어지는데 작품의 선을 표현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티로폼, 일회용 용기 뚜껑, 용기, 스틱 등 다양한 소재가 사용되기도 한다.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따라 부재료를 선택하기도 하는데, 공기뿐만 아니라 물, 헬륨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는 주로 공기를 사용한다. 그가 볼 수 없는 것처럼 다른 누군가도 볼 수 없는 공기가 풍선에 들어오는 순간 손의 감각으로 공기를 느껴 본다.

그의 시력은 계속 악화되고 있지만 완전히 시력을 잃는다 해도 공기 조각가는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어떤 형상을 만들 때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말로 설명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그려 가며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볼 수 있는 이들에게는 쉬운 작업이겠지만 그에게는 추상화를 그리는 것과 같은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 사물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무형의 형상을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에 모든 작업이 도전이다.

작가 맘대로 공기의 모양이 변한다. 마치 마술사가 된 듯하다. 무형의 것을 유형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정말 매력적이다. 그래서 풍선을 소재로 선택했고 벌룬 아티스트에서 지금의 공기 조각가라는 타이틀을 사용하고 있다.

풍선아트 작품2. ⓒ고홍석

작업할 때 사용하는 전문가용 풍선은 모두 수입품으로 크기, 색상, 모양별로 모든 종류를 구비하면 꽤 많은 비용이 든다. 행사에 나가면 ‘풍선 하나만 주세요’라고 아주 쉽게 풍선을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거절하면 ‘그깟 풍선 얼마나 한다고…’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몇 개 풍선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대가 없이 너무 당연하게 요구하는 데 대한 거절이고, 풍선이 저렴하다는 인식을 심어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인식은 작업에서 느끼는 가장 큰 장벽이다.

풍선을 아이들의 놀잇감이나 파티의 장식품 정도로만 생각하고 작품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직 많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대할 때의 경솔함, 장애에 대해 갖는 편견 역시 이와 마찬가지라고 느낀다.

조금만 더 상대의 입장에서 인지하려고 노력한다면 마음의 작은 앙금이나 불필요한 갈등은 쉽게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풍선이라는 소재가 보존 기간이 짧다는 점은 작품 제작에 한계로 작용한다. 따라서 더욱 긴시간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기술적 방법을 연구 중에 있다. 현재 테스트 중인 작품은 1년이 지나도록 그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아직은 보완이 요구되는 단계이지만 한계점을 극복해 더욱 다양한 작품의 창작이 가능해지리라 생각한다.

풍선이라는 소재는 매우 섬세하고 감각적인 기술이 요구된다. 고무가 가지고 있는 신축성에는 그 안을 채울 수 있는 팽창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팽창한 만큼 터지기도 쉽다.

풍선아트는 작품 해체를 통해 비움이라는 균형의 미학을 만들어 간다. 고홍석은 바로 이 균형의 미학을 전파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풍선아트 작품3. ⓒ고홍석

고홍석

# 주요 경력

1998년 풍선아트 입문, 1999년 풍선아트 전문교육과정 이수 2000년 다음 카페‘ 풍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풍사모) 커뮤니티 개설 2004년 네오텍스 런칭 세미나 초청 강연, 2004년 (사)한국풍선협회 1급 세미나 초청 강연 2004년‘ 썸머 벌룬 캠프’ 개최, 2005년 KBAF(제4회 Korea Balloon Artists Festival) 진행 2005년 PARTY ART JAM 세미나 초청 강연, 2006년 제3회 퀄라텍스 국제 세미나(한국) 초청 강연 2007년 제4회 퀄라텍스 국제 세미나(한국) 초청 강연, 2007년 퀄라텍스 이벤트(태국) CBA강사 초청 강연 2008년 부산 풍선장식가협회 초청 강연, 세미나 및 작품전시, 2010년 새로이벤트 세미나 초청 강연 2011년 대만, 말레이시아 세미나 초청 강연, 2012년 말레이시아 SACC 신년장식 2016년 싱가포르 PA BSIG Workshop 초청 강연

# 수상, 공모

2001년 풍선사랑 한마음 대축제(매직풍선 부문) 동상, 2001년 제2회 KBAF(매직풍선 부문) 은상 2001년 제2회 KBAF(큰 구조물 부문) 동상, 2003년 제3회 KBAF(큰 구조물 부문) 인기상 2004년 KBPA Jam Festival(단체 부문) 은상, 2005년 제9회 Japan Balloon Artists Network(비원형 부문) 특별상(Emily's Balloon, 일본) 2016년 제3회 장애인창작아트페어 우수작가 선정, 2016년 제1회 뚝섬팝아트페스티벌 초대작가 선정

# 개인전

2015년‘ 포옹-안다 , 안기다’, 하늘연갤러리 2016년‘ 채움과 비움의 미학’, 291갤러리 2017년‘ AMERICAN VISIONARY ART MUSEUM’ 고홍석 展, American Visionary Art Museum(볼티모어, 미국) 2018년 2018평창동계올림픽 · 패럴림픽 성공기원‘ Passion Connected, Challenge!’, 갤러리 이음 2018년‘ A VISION IN BALLOONS’, Nucleus Art Gallery(LA, 미국) 2018년‘ 예술은 생각하지마’, 성수S팩토리,갤러리쿰

# 그룹전

2017년‘ 국제풍선전시’, Falling City Gallery(조호르바루, 말레이시아), 2016년‘ 국제풍선전시’, MIXC(Cheung du, 중국) 2015년‘ 氣球人歷險記’, 國立臺灣科學?育館(타이페이, 대만), 2014년‘ Suratthani Central Plaza 초대전’(수랏타니, 태국) 국내전 다수

# 저서

2006년「 고홍석의 magic balloon 노하우」 2007년「 아하 ! 풍선파티」 2014년「 Heart Love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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