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피날레 전 출연자들이 ‘비상’을 열창하고 있다.ⓒ에이블뉴스

우리는 살아가며 전혀 예기치 않은 일들을 겪고, 한 순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위기를 마주한다. 지하철 안 무심한 얼굴들 속 멍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음창작뮤지컬 ‘비상’ 오프닝은 이 일상으로부터 출발한다. 아픔은 특별한 사람이 아닌,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비상’은 최고의 무용수를 꿈꾸던 ‘가희’, 특공대 출신의 ‘병걸’, 태어나 열병으로 소아마비 장애인이 된 ‘강일’의 실제 삶을 재구성했다.

영혼의 바람을 따라 무용수를 꿈꾸던 ‘가희’가 23살이 되던 해 사고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으로, 훈련 후유증으로 갑자기 시력을 잃은 병걸의 절망, 가는 곳마다 입학을 거부당했던 강일의 고통을 표현했다.

(위)전신마비가 된 가희의 절망 모습 (아래)특전사 훈련 중 두 눈이 실명된 병걸의 아픔.ⓒ에이블뉴스

특히 ‘숨 멎는 약을 구하려 해도 약국에 갈 수 없다’는 가희의 좌절, ‘제 눈을 뽑아가세요’라는 병걸의 절규, ‘전염병은 아니죠?’라며 소아마비 강일을 거부하는 학교 측에 아무말도 못한 채 ‘공부도 지지리 못하는 학교니까 가지 말자’며 발길을 돌리는 강일 어머니의 아픔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물 짓게 한다.

하지만 3명의 주인공들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절대 포기 하지 않는다.

‘가희’는 무대의 발레복 대신 붓을 잡은 손을 붕대로 칭칭 감은 채 드넓은 캔버스 안에서 자유로이 춤을 춘다. ‘장애인이 아닌 심장 뛰게 하는 여자’라는 가슴 벅찬 청혼을 받으며 사랑에도 골인한다.

찢기고 줄기가 말라 비틀어졌던 ‘병걸’은 어린 딸과 노모의 모성애로 어둠을 뚫는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고 나서야 시각이 아닌 청각, 촉각, 후각을 열며 시인 등단에 성공한다.

“도장이나 파세요”란 조롱을 받았던 ‘강일’은 “소아마비는 그저 감기에 걸린 것 뿐”이라며 당당히 바이올리니스트로, 소외된 사람들의 희망의 음악가로 꿈을 이룬다.

뇌병변장애인 1급 배우 이윤정씨가 휠체어에 내려와 ‘비상’ 움직임을 하고 있다. 주위를 배우들이 에워싸며 표현하는 모습.ⓒ에이블뉴스

특히 인상 깊은 점은 피날레에 등장하는 뇌병변장애인 1급 배우 이윤정 씨의 움직임 이다.

배우를 꿈꾸는 이 씨가 전동휠체어에서 내려와 춤추는 장면은 부러진 가지 옆 새로이 피어난 장애예술가들의 ‘비상’을 완벽히 표현했다.

이후 무대 위 실제 주인공 김형희 화가, 손병걸 시인, 이강일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부르는 ‘비상’은 알을 깨고 진정 비상한 장애예술가들의 모습을 통해 용기와 끈기, 그리고 희망찬 찬가를 전한다.

‘비상’은 특별한 장애인들의 ‘장애 극복’ 스토리가 아니다. 피폐한 채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인생에 대해 다시 따뜻한 시선을 던질 수 있는, 비장애인에게 더욱 추천해주고 싶은 공연이다.

‘비상’ 오프닝 지하철 안 무심한 얼굴들 속 멍들지 않은 사람은 없음을 표현한 장면.ⓒ에이블뉴스

“나 비록 부러지며 절며 아플지라도 세상 가장 눈부시고 귀한 사람은 나야

나 비록 넘어지며 울며 꺾일지라도 일어나 춤추며 몸부림치며 비상할거야”

‘비상’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주관하고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가 주최/제작했다. 연출은 중앙대 정호붕 교수, 작가 사하라지드 사성구 대표, 안무 중앙대 김봉순 겸임교수 등이 맡았다. 러닝타임은 총 100분이다.

배우진은 임일주, 홍미경, 이윤정, 강대유, 유창호 등 장애인 배우들과 함께 방채린, 백민규, 이현석, 박은주 등 비장애인 배우들이 함께했다. 특히 무대 한쪽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석’을 설치, 실시간 자막도 송출한다.

연출을 맡은 정호붕 교수는 “특별한 연출 기법보다는 무대위에서 배우들이 합심해 비상의 힘을 모아 극복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뒀다”며 “처음에는 욕심도 내고 조급증도 있었지만 빨리 달린다고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100km를 달리는 것보다 30km로 천천히 달리는 에너지를 맘껏 느껴달라”고 말했다.

‘강일’역을 맡은 배우 임일주는 “장애인들이 다가가기 쉬운 분야가 문화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벽은 존재한다. 이번 뮤지컬이 장애와 비장애의 벽을 허물었으면 좋겠다”며 “무대할 때는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감동과 동정 보다는 실력으로 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뮤지컬 ‘비상’은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 29일 오후 7시 30분, 30일 오후 3시, 7시30분 총 3회에 걸쳐 공연한다. 특히 홍보대사를 맡은 배우 황정민은 30일 저녁 공연에 함께할 예정이다,

입장료는 전석 2만원이며, 장애인과 동반 1인은 50% 할인이 가능하다. 또 마지막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 50% 할인 등 다양한 할인혜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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