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국회 앞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이름 없이 죽어간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추모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에이블뉴스

“죽음조차 본인의 의지로 선택하지 못하고 떠나간 발달장애인들과 국가의 무책임으로 발달장애인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했던 그 가족들의 삼가 명복을 빕니다.”

제21대 국회의 국정감사 첫날인 7일 오전 11시 국회 앞.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주최한 이름 없이 죽어간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추모하기 위한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애자녀를 부모들의 절박한 호소가 가슴을 저리게했다.

올해 코로나19 상황 속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3월 제주도에서 코로나19로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6월 광주광역시에서 코로나19로 돌봄 사업들이 중단·축소된 가운데 발달장애인과 그의 어머니가 유명을 달리했다.

8월에는 서울에서 발달장애인이 청소년 방과 후 활동지원서비스기관의 서비스 방치로 기관에서 추락사했고, 9월과 10월 서울에서 발달장애인이 가정에서 추락사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장애부모들은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죽음이 코로나19 재난에 의해 어쩔 수 없었던 천재가 아닌 방치한 정부의 인재라는 입장이다.

코로나19 이전에도 발달장애 자녀에 대한 지원은 가족에게 대부분의 책임이 전가돼 있었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아무런 고민도 없이 사실상 방치해 왔고 코로나19시기 아무런 대책없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회에서 발달장애인과 거리를 만드는 ‘배제’이고, 발달장애인에 대한 정책을 포기한 것으로 해석 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7일 국회 앞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강지향 강동지회장(왼쪽)과 서은석 회원(오른쪽)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전국의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은 더 이상 정부가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사지로 내모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면서 “정부와 정치권에서 발달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말로만 그치는 대책이 아닌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코로나19시기 긴급돌봄 지원을 위한 소규모 돌봄시스템 구축 ▲전국에 사회서비스원을 설치, 공적 돌봄지원체계 도입 ▲도전적 행동이 있는 발달장애인 지원을 위해 활동지원서비스 특례조항 신설 ▲발달장애인 위기가정에 대한 찾아가는 사례관리서비스 도입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종술 회장은 “코로나19 상황 속 발달장애인들은 더욱 힘들어하고 있다. 발달장애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외출을 못하고 있다”면서 “발달장애인은 생활루틴이 있는데 이것이 어긋나 삶이 완전히 망가졌다. 이 때문에 발달장애인들이 사망하는 사태들이 계속 발생하는 것이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어 “정부는 촘촘한 복지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실행이 안 되고 있다. 긴급 돌봄을 하고 있다고 데이터를 내놓지만 왜 이렇게 발달장애인들이 방치된 사건이 많은 것인가”라고 지적하며 “발달장애인의 활동보조시간은 대부분 하루 2~3시간 정도로 적다. 이제는 국가가 새로운 서비스를 내놔 활동보조시간을 확대 지원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7일 국회 앞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종술 회장. ⓒ에이블뉴스

또한 “정부는 발달장애인들이 어떻게 방치돼 있고 소외돼 있는지 알지 못해 체계적인 지원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면서 “말로만 하는 맞춤형 서비스가 아닌 전수조사를 실시해서 모든 발달장애인이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떤 환경에 놓여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발달장애인이 방치되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더 이상 우리가 이렇게 방치돼서 죽어갈 수 없다. 국회는 빠르게 응답 해주길 바라고 청와대는 긴급대책을 내놓아 발달장애인도 함께 코로나 19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 답변이 나오지 않을 경우 강력히 투쟁 할 것을 선언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신정선 동대문지회장은 “발달장애인 당사자는 혼자 자가 격리를 할 수 없어 가족들이 함께 자가 격리를 해야 돼 가족들 모두 갑갑한 상황이다. 자가 격리 대상이 아니더라도 마스크 착용 때문에 멀리 외출할 수도 없어 답답함을 많이 느끼고 있다”며, “발달장애인 자녀들의 욕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정부에서 대책을 마련해 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박지수 관악지회장은 “제 아이는 학령기 학생이지만 3년뒤면 성인이다. 최근 발달장애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것이 우리 아이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다”면서 “우리 발달장애인 가정의 돌봄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응답해줬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7일 국회 앞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추도사를 낭독하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종옥 서울지부장. ⓒ에이블뉴스

특히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종옥 서울지부장이 “코로나19로 떠나보낸 이들 앞에서”라는 제목으로 추도사를 할 때에는 주위가 숙연해졌다.

# “동반자살의 참담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만, 두 달 새 세 건의 추락사를 마주하는 발달장애인 가족의 심정은 새카만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깊은 슬픔으로 잠긴다. 그저 우연이길 간절히 바라지만, 연이은 비극을 접하며 우리는 이것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로 학교도, 복지관도, 센터도, 체육관도, 프로그램실도 문을 닫았다 열었다 하며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순례하듯이 돌던 동네의 가게들이며 공원이며 더 이상 자유롭게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이 속에서 장애를 가진 자녀의 고립된 삶을 돌보는 책임은 다시 고스란히 부모에게로, 가정으로 돌아와 버렸고, 우리는 이 속에서 참으로 오랜 기간 견디고 버텨오고 있다. 견딜 수 있는 것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 말고 다른 길이 없기에 견뎌온 것이다.

너희들을 위한 준비가 덜 되어있는 세상에 태어나게 한 미안함에, 사랑하는 내 아이가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게 하기 싫어서, 할 수 있는 것, 다닐 수 있는 곳을 맘껏 다니게 하고 싶어서 미친 듯이 너의 발 앞 거친 땅을 파고 고르며 살아왔지만, 여전히 너희들을 위한 세상 만들기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세상에서 너희는 여전히 너무 많은 것을 포기만 하다가 세상을 떠났구나.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익명의 거리를 오가다 길을 잃고, 허공으로 위태로운 발을 디딘다.

지난 코로나19의 잔인한 터널을 지나오면서, 우리는 고통의 끝이 끝내 죽음이었던 일을 다섯 번이나 겪었다.

우리 사회는 이 죽음에 책임이 없는가. 우리는 이 죽음에 책임이 없는가. 세상은 이 죽음에 책임이 없는가. 그대들이 선하게 살아왔던 이 세상, 그대들이 선량한 눈망울로 내려다보았던 이 세상에 우리는 묻는다. 그리고 외친다. 이토록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이 편히 숨쉬고 편히 다니고 편히 나이 들어갈 곳을 만들어달라고. 서둘러 만들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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