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도 약속하고, 거의 모든 정당도 공약으로 약속한 장애연금을 장애인의 뜻을 반영해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는 전재희 복지부 장관. ⓒ에이블뉴스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보건복지가족위원회도 13일 전체회의를 열어 내년도 보건복지예산안에 대한 심의에 돌입했습니다. 물론 장애인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이슈를 바로 장애연금 예산의 증액입니다.

박은수 의원을 비롯해 장애인 당사자 국회의원들은 장애연금 예산 증액을 한 목소리로 촉구했는데요.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앵무새처럼 '장애연금은 도입하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장애연금 예산 증액에 대해 더 이상 논의할 뜻이 없다고 입장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전재희 장관의 황당 궤변 '부처간 신의'

"장애인연금 복지부 당초 예산인 6,480억만이라도 보건복지가족위원회에서 증액 결의한다면 장관께서 예결위에서 책임지고 이 예산을 책임져 주실 수 있겠느냐?"(박은수 의원)

"책임질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린다. 처음 올린 예산안이 부처간 협의를 통해 결정된 것인데 제가 다시 증액을 요구한다는 것은 정부 부처간 신의상 어려운 일 아니겠느냐. 도와달라."(전재희 장관)

참으로 이상한 궤변입니다. 부처간 신의가 장애인들의 생존권보다 우선한다는 논리도 이상하지만, 부처간 협의를 통해 결정된 예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논리도 이상합니다.

전 장관의 답변대로라면 국회에서 왜 예산 심의를 해야하는 것일까요? 장애연금 예산뿐만 아니라 모든 예산은 부처간 협의를 거쳐서 정부안으로 확정돼 국회로 제출되는 것입니다. 전 장관의 논리를 따르면 부처간 협의를 통해서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증액도, 감액도 더 이상 필요없는 것입니다.

다른 이슈에 대해서도 똑같은 답변을 하는지 지켜봤더니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의원들의 지적에 동감을 하기도 하면서 "나도 열심히 노력했는데 안되더라"고 솔직한 심정을 피력하는 것입니다. 장애연금 이슈에 대해서도 "열심히 노력했는데 안 되더라. 의원님들이 도와달라"고 얘기하면 안되는 것일까요? 전 장관은 지금 자기모순에 빠져있습니다.

오늘 전 장관의 발언 중에 따져볼게 하나 있습니다. 전 장관은 "장애연금 도입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면서 "도입하는데 의의를 둔다"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앵무새처럼 말해왔던 "도입하는데 의의를 둔다"는 발언이 이제야 조금 맥락이 잡히는데요.

이 발언을 들으면서 장관으로서 배짱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약속을 했고, 공식석상에서도 수차례 언급을 한 사안인데다가 거의 모든 정당이 공약으로 약속한 사안인데 주무장관으로서 배짱있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장애연금 도입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하는 모습이 초라해 보였습니다.

전 장관은 장애연금에 대해 의지가 없다면, 장애연금 증액의 필요성만이라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어차피 예산은 국회내 심의를 거쳐 확정이 되는 것인데, 복지부 장관이 나서서 말 끝마다 "도입하는데 의의를 둔다"라고 말하는 것은 더 이상 장애연금을 증액할 필요가 없다고 앞장서서 막고있는 꼴입니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져야할 책임까지 지려고 하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복지부 장관은 복지부 장관의 위치에서 자신의 책임만 지면 됩니다.

정운찬 총리 "차 있다고 고소득이라고 보면 되느냐"

전 장관에 비해 정운찬 국무총리는 솔직한 답변으로 자기를 속이지는 않았습니다. 친박연대 정하균 의원이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올해 말로 폐지될 예정인 장애인차량 LPG연료 세금인상분 지원사업 문제를 끄집어냈는데요.

'차 없는 장애인은 저소득 장애인, 차 있는 장애인은 고소득 장애인으로 장애인간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LPG지원은 폐지하고 장애수당을 올리겠다.'

이는 바로 유시민 전 의원이 참여정부에서 복지부 장관을 맡았던 시절, LPG 사업의 단계적 폐지를 결정하는 핵심 논리입니다. 정 의원은 정 총리가 이 이슈를 이해하도록 차근차근 세세한 내용까지 소개했습니다.

특히 "전동휠체어 300만원이 넘는데, 전동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은 고소득 장애인이라고 보느냐", "전동휠체어가 없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전동휠체어처럼 장애인에게 자동차는 보장구다", "100만원도 안되는 중고차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들도 많다" 등의 발언으로 정 총리를 이해시켰습니다.

정 총리는 "어떻게 자동차가 있다고 고소득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정 의원님의 말씀처럼 100만원도 안되는 중고차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들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드디어 국무총리 입에서 자동차가 있는 장애인이 고소득 장애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너무도 뻔한 사실을 이해시키는데 수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정 총리는 총리실 공무원들이 답변을 써줬다는 사실도 시인을 했습니다. "동료들이 써준 답변은", "나의 답변은"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자신의 의견이 무엇인지 명확히 밝혔습니다. 물론 정 의원이 공무원들이 써준대로 얘기하지 말고, 총리님의 의견을 말해 달라고 몇 차례에 걸쳐 채근을 했지만요.

정운찬 국무총리는 차 있는 장애인은 고소득 장애인이라는 지난 참여정부의 LPG지원사업 폐지 논리가 틀렸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에이블뉴스

결론적으로 LPG 지원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예산 확보와 관련한 정 총리의 답변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무원들이 써준 답변이 아니라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한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 검토"라는 답변이 기존 총리들이 답변하던 "의원님의 의견을 존중해 검토하겠다"라는 답변과 그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정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LPG 지원사업 예산을 확보하는데 긍정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하니 한 번 믿어봐야할 것 같습니다.

LPG 예산 확보를 약속한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는 전국지체장애인대회에 참석해서 "여러분들께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항들이 있다는 것을 저희가 잘 알고 있다"며 "저도 동료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서 열심히 노력하며 조만간에 좋은 소식 전하도록 하겠다"고 재차 약속했습니다. 물론 콕 찍어서 'LPG'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점이 아쉬웠고 진행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밝혀주지 않은 점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조만간 좋은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다"라는 약속은 장애인들에게 힘이 됐습니다.

저신장 장애인을 농락한 미수다 제작진

이번 주 KBS 2TV의 미녀들의 수다가 큰 논란이 됐습니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loser)"라는 망언이 커다란 자막과 함께 방송을 탔는데요, 그 후폭풍을 참으로 매서웠습니다. 공분한 네티즌들은 '루저의 난', '루저대란', '루저 패러디'로 이번 발언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파고들었습니다.

결국 제작진은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올렸는데요. 음, 정확히 말하면 입장문이었습니다. "사과의 뜻을 전한다"라는 표현이 들어있기는 했지만 진정한 사과의 뜻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제목에서부터 '제작진의 입장'이라면서 오만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진의가 의심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대본 논란에 대한 입장 때문입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출연자의 의견을 듣고 정리해서 대본화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대본은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한 부분인데요. 결국 사태의 책임을 발언 당사자에게 돌리는 모습이 옹졸해보였습니다. 바로 이어서는 출연자가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면서 방금 전과는 다른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고, 동시에 새로운 화제를 끄집어내면서 논점을 흐리려했습니다. 이번 발언의 가장 큰 피해자인 저신장 장애인에 대한 사과도 전혀 포함돼 있지 않았습니다.

손석희 교수의 발언처럼 제작진이 문제의 발언을 왜 편집을 하지 않았는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문제의 발언을 왜 삭제하지 않았는지가 핵심입니다. 오히려 제작진은 큰 글씨로 자막을 넣어 발언을 더욱 잘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자막에서 루저라는 글씨는 영어로 커다랗게 표현을 했습니다. 아, 끝에 느낌표를 찍어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작진을 교체한다는 결정이 나왔지만, 교체를 하더라도 사과는 해야합니다. 사과문에는 장애인을 차별하고 비하하는 발언을 한 점에 대해서 사죄한다라는 표현이 포함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장애인의 맛없는 빵"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홈플러스그룹 이승한 회장의 사과문처럼 글의 제목도 명확히 사과문이라고 밝혀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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