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봄이 왔어요.ⓒ김유리

꿈을 꾸는 아이

출생 때부터 모든 것이 또래들보다 뒤쳐졌던 나는 중학생 때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게다가 약간의 언어장애에 성격까지 외향적이지 못한 탓에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왕따’와 ‘은따’는 항상 내 차지였다. 친구들의 괴롭힘에 견디지 못한 나머지 급기야 어린 나이에 마음의 병을 앓기도 했다.

언어표현력이 미숙했던 탓에 부모님께조차 내 속마음을 마음껏 터놓지 못하고 꾹꾹 눌러 담았던 적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위로가 된 것이 바로 일기장과 책이었다. 도서관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에 대한 내용이 담긴 책을 발견하기라도 할 때면 눈물이 절로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펑펑 울면서 하루 동안 쌓였던 내 울분을 죄 없는 하얀 종이에 모조리 토해 냈다. 그렇게 글도 쓰고 도서관에도 열심히 다녔다.

그 노력 덕택인지 내 작문실력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작가란 꿈이 움트기 시작하던 때도 그 즈음이었다. 빨리 어른이 돼서 작가가 되고 싶었다. 유명해져서 나를 무시하고 괴롭혔던 친구들에게 보란 듯이 나타나고 싶었다.

그렇게 작가의 꿈을 키워나가던 중 포토샵이란 프로그램이 유행을 했다. 친구 한명이 포토샵으로 멋들어지게 꾸민 사진 한 장을 자랑했다. 난 너무 샘이 나서, 그 프로그램을 찾으러 사방팔방 돌아다녔다. 하지만 100만원이 넘는 그 프로그램을 달랑 만원 들고 가서 찾으려고 하니 찾을 수가 있나.

끙끙앓던 나는 며칠 후 시험버전 사용방법을 알아냈고, 버벅대는 컴퓨터 앞에 하루 종일 앉아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새로 얻은 컴퓨터로 포토샵과 나모웹에디터라는 홈페이지 만드는 프로그램을 깔고 하나하나씩 익혀나갔다. 부모님이 걱정하실 만큼 하루 종일 모니터와 씨름했다.

그러다가 웹디자이너라는 직업과 웹디자인기능사라는 자격증을 알게 되었고, 친구들이 교과서를 가지고 다닐 때 난 1년을 꼬박 교과서보다 두꺼운 자격증 필기시험 수험서를 가지고 다녔다. 내 꿈은 차츰 작가에서 웹디자이너로 옮겨가고 있었다.

세상에 도전장을 내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삼육재활센터 직업전문학교 웹비즈니스학과에 입학을 했다. 홈페이지 만드는 법만 배우는 줄 알았는데 OA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시험기간에는 같은 학과 언니, 오빠들과 밤늦게까지 남아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워드프로세서 2급 필기와 3급 실기를 취득했다. 학교생활에 적응이 되어갈 무렵 지인의 소개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약 3년의 기간 동안, 일하느라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 집에서도 컴퓨터와 싸웠고 웹디자인기능사 필기시험 합격 후 딱 2년 만에 실기시험에도 합격했다. 그 후 워드프로세서 2급을 거쳐 1급과 컴퓨터활용능력 2급 자격증도 손에 넣었다.

2009년에는 정말 운이 좋게도 수도권 지적장애인기능경진대회 데이터 종목에서 1위에 올라 전국대회와 선발전을 거쳐 서울에서 열린 ‘2011 국제 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 나가 3등을 하게 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때가 때마침 계약만료로 회사를 퇴사한 상태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컴퓨터 자판만 두드렸기 때문에 얻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OA자격증 중에서 난이도가 최고점에 달한다는 이유로 수험생들 사이에서 상공회의소의 자존심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 컴퓨터활용능력 1급, 오래전부터 여기에 도전장을 내밀어 보고 싶었다. 비장애인들도 많이 시도했다가 또 많이 포기하는 자격증이라는 말에 잔뜩 겁을 먹었다.

괜히 하겠다고 했나? 하는 두려움도 잠시, 공부란 머리보다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 뜻을 발판 삼아 정말 1년을 죽어라 매달렸다. 내 지독한 인내심에 두 손 두발 다 들었는지 실기만 무려 15번이나 낙방시키고 나서야 2015년 여름, 결국 그 자존심이 16번째에 꺾이고 말았고 난 통쾌한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찬란한 나의 30대를 꿈꾸며 마주한 자조모임

평생 잊지 못할 큰 대회를 치르고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 것도 잠시, 차츰 취업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좋은 직장을 소개받아 올해로 6년차의 장기근속자가 되었다. 지금은 업무능력 향상과 더불어 도전에 대한 성취감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어 어렵지만 전산회계 1급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2급부터 차근차근 공부하고 있다.

2015년 가을에는 우연한 계기로 ‘우리함께’ 라는 이름의 2030 장애여성 자조모임을 알게 되었다.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하긴 했으나 낯선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소외당하진 않을까?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지적장애인인 나를 편견 없이 잘 대해 주었고 2년째 빠짐없이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내 고민을 털어놓고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 주며 해결책을 공유해 나갔다.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고 없었다.

그 당시 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속상해하곤 했는데 1년이 지난 지금은 언제든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언니와 친구들이 있어 참 좋다.

몇 달 전부터는 언니들의 조언에 힘을 얻어 날마다 책 낭독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고 있다. 낭독하기 전까지는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책 내용도 훨씬 잘 들어오고 이와 더불어 내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놓는데 조금씩 자신감이 붙고 있는 듯하다.

자조모임이 아니었다면 내 성격상 입을 꾹 다물고 나를 꽁꽁 숨기고만 있었을 것 같다. ‘우리함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름 찬란했던 20대와는 다르게 30대의 시작은 그저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의 30대도 찬란하게 빛나길 바란다. 20대처럼 자꾸 도전하고 좌절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매서운 겨울이 지나고 또다시 봄이 왔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희망을 가득 품은 듯한 봄내음이 내 코끝을 자꾸만 자꾸만 자극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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