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과 한옥마을 전경. ⓒ정재은

500년 도읍지를 애환의 눈길로 지켜온 서울의 명산 남산자락에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현대화의 상징물처럼 높아만 가는 도시 빌딩숲속에 굳굳히 자연과 전통을 고수해 가는 남산과 남산 자락의 한옥마을은 우리에게 옛 삶의 전통과 보전 그리고 문화관광지로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었다.

남산1호터널을 지나며 남산자락을 통과할 때마다 우측에 보이는 옛 한옥의 군락(群落)들은 언제나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었다. 서울 도심(都心)의 상징물처럼 되어 버린 시가지의 고층빌딩들안에서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기대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한옥들의 군락은 남산자락이 감싸 앉듯 하여 자연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꽤 마음에 들었다.

한옥내부의 모습이 매우 소박하면서도 단아하다. ⓒ정재은

도시 속에 파묻혀 있고 중심부로 들어가는 길이라 찾아가는 길은 복잡하고 빡빡하지만 주변으로 가까이 갈수록 길안내가 잘되어 있다. 좁은 골목사이로 들어가면 작은 주차공간이 눈에 띤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조선시대의 지위체계를 반영하여 대표적인 5채의 한옥을 전시해 놓았는데 왕후의 집, 다시 말해 조선시대 최 상류층의 집 그리고 사대부집에서 일반서민의 집에 이르기까지 전통한옥 중 초가(草家)가 아닌 기와집을 옮겨 놓아 각각의 삶을 짐작케 하는 전통 생활문화의 장(場)으로 꾸며 놓았다.

마을 안에 들어갔을 때는 외관상 기대이상의 작은 규모라 다소 실망스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구석구석 돌아보면서는 비록 작지만 꽤 아기자기하고 체계적으로 꾸며놓았다는 느낌이 든다.

솔직히 다른 가옥들은 내 눈엔 다 비슷해 보여서 가옥에 대한 설명문을 보지 않고는 다 똑같은 한옥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첫 대문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는 보기에도 뭔가 틀리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한옥은 역시 왕실의 가옥답게 별궁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중요한 것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는 것인데 화려하지 않으면서 그들만의 품격이 있다는 것이 아마 우리나라 옛 건축의 미(美)가 아닐까 한다.

이밖에도 조선조 제27대 순종의 장인 해풍부원군 윤택영이 그의 딸 윤황후가 동궁계비에 책봉되어 창덕궁에 들어갈 때 지은 해풍부원군 윤택영댁 재실, 서울 팔대가중의 하나로 전해지는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 오위장 김춘영 가옥, 도편수 이승업 가옥 등이 있다.

순정효왕후 왕씨 친가 모습. ⓒ정재은

가옥뿐 아니라 내부 곳곳에 배치된 옛 가구와 생활용품들은 마치 옛 시대로 거슬러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선조들의 생활모습과 숨결을 느끼기에 좋으며 또한 전통공예 전시관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기능보유자들의 작품과 관광기념상품을 상설 전시 판매하고 있어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한옥마을 입구의 경사로 - 노약자를 위한 큰 배려가 엿보인다. ⓒ정재은

무엇보다도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감명 받은 것은 첫째, 한옥마을 입구에서부터 보여 지는 휠체어용 경사로다. 앞에 서면 한옥마을 전체의 경관을 변경시킬 만큼 대리석으로 지어진 견고한 경사로를 보며 이것이 우리나라의 진정한 장애인에 대한 배려이길 바랬다.

나의 반가운 기대는 계속되었는데 각각의 한옥으로 넘어가는 대문 사이, 문간사이도 경사로를 설치한 곳이 많아 우리 장애인들의 봄나들이 장소로 아주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옥의 문간이 높아서 일까? 경사로의 경사가 다소 심해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외국 손님이라도 방문했을 때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 우리만의 공간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들에게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건 가장 한국적인 것이다.

조선의 생활상을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이 작은 문화와 전통의 공간은 한국의 전통과 풍습을 알릴 수 있는 뜻 깊은 곳이기도 하지만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배려가 섬세한 기분 좋은 관광지이기에 난 이곳이 마냥 자랑스러웠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경기지사에 재직 중이다. 틈틈이 다녀오는 여행을 통해 공단 월간지인 장애인과 일터에 ‘함께 떠나는 여행’ 코너를 7년여 동안 연재해 왔다. 여행은 그 자체를 즐기는 아름답고 역동적인 심리활동이다. 여행을 통해서 아름답고 새로운 것들을 만난다는 설렘과 우리네 산하의 아름다움을 접하는 기쁨을 갖는다. 특히 자연은 심미적(審美的) 효과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정화시켜 주는 심미적(心美的) 혜택을 주고 있다. 덕분에 난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장애라는 것을 잠시 접고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받아온 자연의 많은 혜택과 우리네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함께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