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식물인 실새삼의 꽃은 작고 앙증맞은 종모양의 통꽃입니다. ⓒ김남숙

통꽃식물목 > 메꽃과 > 실새삼입니다.

7~8월에 한창 꽃을 피우고 9월에 결실을 하는 실새삼은 기생식물로 기주식물에서 양분을 흡수하여 살아갑니다. 종자는 강정 및 강장제로 사용합니다. 끊으면 곧 끊어져 버리고, 시들해져서 더는 살아남을 것 같지 않은 저 실낱같은 덩굴에 핀 작고 앙증맞은 꽃이 또 열매를 맺고 이듬해 흙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웁니다.

뿌리가 있다니, 요리조리 뿌리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기주를 만난 후에는 뿌리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 있다' 는 속담이 있습니다.

환삼덩굴이 울타리든, 둔덕이든 많은 식물을 뒤덮고 기세를 떨칠 즈음 실새삼이 환삼덩굴을 뒤덮습니다. 그리고 기주식물 보다 먼저 꽃을 피우고 서둘러 열매를 맺습니다. 기생하면서 살아남기 위한 실새삼의 전략을 엿볼 수 있습니다.

50Cm 이상 뻗어가는 줄기는 털이 없으며 비늘 같은 잎이 드문드문 마주 납니다. 식물들은 종에 따라 나름대로 뻗어가는 일정한 방향이 있습니다. 실새삼은 왼쪽으로 감으면서 뻗어갑니다.

가지의 끝에 총상화서로 덩어리처럼 달리는 백색 꽃은 꽃자루가 짧고 다섯 개의 꽃받침이 있습니다. 넓은 타원형이며, 약간 육질이고, 꽃부리가 다섯 갈래로 갈라진 종모양의 통꽃입니다.

이듬해 자신이 남긴 종자들이 또 싹을 틔우고 생을 이어갈 수 있게 하려면 기주식물 또한 살아남을 수 있게 배려해야겠지요? 그러니 실새삼의 줄기는 마치 실과 같은 가느다란 줄기입니다. 드문드문 비늘처럼 달린 잎 또한 있는지 없는지 눈에 잘 띄지도 않습니다. 기생식물로서 살아가는 최소한의 갖춤이란 저런 것일까 싶습니다.

식물의 세계도 들여다보면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혼자서는 스스로의 몸을 가눌 수 없어 늘 기대야만 하는 식물이 있으며 땅으로만 기어서 자라는 식물이 있으며, 가시가 달린 식물, 껍질이 두꺼운 식물, 껍질이 얇은 식물, 키가 큰 식물과 작은 식물, 여러해살이식물과 한해살이 식물, 또한 천년이상을 살아가는 식물 등 다양합니다.

우리의 현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인간의 군상들이 식물의 세계에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식물의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윤리에 어긋난다고, 종교관이 서로 다르다고 내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 지구위의 실새삼 같은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존재하는 다양한 것, 그들 나름의 가치인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악이라는 것이 없어야 한다고 악을 내치면 선이 또 그 악의 자리를 대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요? 우리의 뿌리는 어디에서 찾을까요? 분명하게 존재하는, 그러나 끊어진 듯 보이지 않는 우리의 시작을 생각해 봅니다.

실새삼을 들여다 보는 아이 ⓒ김남숙

끊으면 곧 끊어져버리는 연한 줄기가 실 같습니다. ⓒ김남숙

실새삼 ⓒ김남숙

[리플합시다]국제장애인권리협약의 비준을 촉구합니다

김남숙은 환경교육연구지원센터와 동아문화센터에서 생태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서울시청 숲속여행 홈페이지에 숲 강좌를 연재하고 있다. 기자(記者)로 활동하며 인터뷰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숲에 있는 나무와 풀과 새 그리고 곤충들과 인터뷰 한다. 그리고 그들 자연의 삶의 모습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한다. 숲의 일상을 통해 인간의 삶의 모습과 추구해야 할 방향을 찾는 김남숙은 숲해설가이며 시인(詩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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