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와 함께 ‘얼런좐’ 공연 중인 자오번산 ⓒ인민일보

중국배우 자오번산(赵本山)이 미국 6개 도시의 순회공연을 하던 중 100만 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휘말렸습니다.

자오번산은 중국 전통 희극인 ‘얼런좐(二人转)’으로 유명한 배우인데요. 음력설마다 방송되는 특집 방송에서 캐스팅 1순위에 꼽힐 만큼 인기 있는 국민배우입니다. 자오번산이 창단한 랴오닝민간예술단은 지난해 1,760회의 공연으로 4,200만위안(약 504억원)의 수입을 거둬들였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번 미국 공연은 3년 이상 야심차게 준비해온 것인데요. 미국 공연이 논란에 휘말린 이유가 심상치 않습니다. 공연 진행이나 입장권 판매와 관련된 몇 가지 잡음 외에 가장 중요한 것이 얼런좐의 내용 때문이라는 겁니다.

얼런좐은 200여 년 전 둥베이(東北) 지방에서 시작되어 농민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던 2인 재담극입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경극의 역사가 100년이라니 얼런좐은 그보다도 더 전통적인 민속예술입니다. 이것을 종합예술로 발전시킨 일등공신이 자오번산이죠.

선양(瀋陽)에 있는 얼런좐 전용극장에는 외국인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데요.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해도 악기 연주, 춤, 수건과 부채를 이용한 기예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자오번산도 그 점에 주목해 세계화의 첫 발을 디뎠을 텐데요.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마치고 감격에 찬 자오번산은 “관객의 절반은 화교가 아니라 현지 미국인이었습니다”라며 “중국의 젊은이들이 가사 내용을 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팝송을 좋아하는 것처럼 얼런좐도 외국인에게 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예술 장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는데 뜻밖에 발목을 잡힌 것입니다.

‘얼런좐’ 작품 중엔 장애인을 흉내 내는 것이 많다. ⓒ인민일보

그 이유가 자오번산으로선 수긍하기 어려운 것인 듯 합니다. 얼런좐의 내용이 약소계층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장애인에 대한 조롱 섞인 대화가 너무 많아서라는 것입니다.

자오번산의 작품 ‘십삼향(十三香)’, ‘유괴(卖拐)’, ‘관계 없어 몇 걸음 더 걸어봐’ 등은 모두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 작품들은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사랑 받으며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장애인을 존중하는 미국인의 정서에는 맞지 않았던 것이죠. 장애인을 흉내내거나 부정적인 면을 그리고 있는 것이 미국인들에게 거북하게 다가왔던 것입니다.

우리 식으로 설명하자면, 공옥진 여사의 ‘병신춤’이 떠오르는 대목인데요. 자오번산이 시각장애인 삼촌으로 인해, 공옥진이 청각장애인 동생과 걸인 친구들로 인해 장애인들에 대해 애정을 느끼고 그것을 예술로 표현해 나간 것도 닮은 데가 있습니다.

공옥진의 삶을 그린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장애인 걸인 청년이 돌아가고 난 뒤에 옥진은 방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그의 걸음걸이며 표정을 재현해 보았다. 눈물겨운 그의 처지에 자신을 맞춰 보자는 생각을 하면서 비틀어진 손으로 밥을 먹는 시늉을 하려고 힘을 쓰자 얼굴로 피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잠시만 팔다리를 비틀어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서럽고 기가 막힐꼬, 내가 그런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춤을 춰야 하는데…. 옥진은 그런 생각을 하자 자신의 신세가 그들과 다를 바 없이 외롭다는 것이 느껴져서 쿨쩍쿨쩍 울어 버렸다."

자오번산이나 공옥진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예술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것이라고 깎아내릴 수만은 없습니다. 장애인의 처지가 되기 위해 같은 몸짓, 같은 표정을 지었던 것이죠. 그를 통해 대중은 결코 알지 못했던 낯선 세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눈물짓고 웃습니다. 독특한 교감이 일어나게 되는 것인데요. 동양과 서양의 장애인을 대하는 시각의 차이랄까요. 그런 것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공옥진의 ‘병신춤’은 장애인에 대한 애정에서 탄생했다. ⓒ영광군문화관광

그런데 이렇게 쓰고 보니 왠지 서양의 시각이 장애인에 대해 우호적인 것이란 어감이 되네요. 뭐 꼭 그렇지만은 않은데 말이죠. 서양이라고 언제나 장애인에게 관대했던 것만은 아니거든요.

19세기 무렵, 신체 조건이 다른 사람들은 단지 그 외모 자체만으로 서커스단의 구경거리가 되곤 했습니다. 샴 쌍둥이, 수염이 난 여자, 거인과 난쟁이, 특이한 질병으로 얼굴 모양이 색다르게 생긴 사람들은 공포와 호기심 속에서 관객의 조롱거리가 되었던 것이죠. 그러고 보면 인권에 대한 의식이 깨어지기 전에는 서양이고 동양이고 가릴 것 없이 마찬가지였던가 봅니다. 장애인을 인간 존엄의 존재로 대하기보다는 낯설게 비틀어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집니다.

자오번산은 미국 공연이 성공하면 우리나라와 호주에서도 얼런좐을 공연할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각에도 그 동안 변화가 있었는데요. 공옥진 여사도 논란이 분분한 ‘병신춤’ 대신 ‘동물춤’을 즐겨 춘다고 하네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런좐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해집니다.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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