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떡볶이가 그에게 한이 맺힌 음식인지는 몰랐다. ⓒ정현석

독립 이후 유익한 점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사람과의 만남이 자유로워진 데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가족과 함께 살 때 누군가를 만나려면 늘 밖으로 나가야 한다. 비장애인에게 외출은 집 근처에서 대충교통을 타고 나가 원하는 곳에서 볼 일을 보고 들어오는 것인데 비해 비장애인의 외출은 장애인 콜택시를 요청해야 하고, 이동에 불편함이 없는 장소에서 만나야 하며, 건물 안에 화장실이 있는지도 살펴야 하기에 외출 한번 하고 나면 적어도 반나절이 소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에 비해 누군가의 집에서 만나게 되면 장애인 콜택시가 얼마나 빨리 올지만 걱정하면 되기에 초대하는 쪽도 기다리는 사람도 부담이 덜하다. 때로는 가족들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마음을 열기도 하고 상대방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독립한 지인 중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배달음식을 시켰다. 평일과 주말은 물론이고, 배달료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심야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주거급여로 받는 비용과 직장에서 일하고 받는 급여로 늘 빠듯하다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시켜 먹는 메뉴는 순대와 떡볶이 그리고 튀김이나 햄버거였다. 간혹 그의 집에 놀러갈 때 빈손으로 가기가 망설여져 “뭐 사 갖고 갈까?”라고 물으면 항상 특정 브랜드의 메뉴를 말하곤 했고, 나중에는 “떡볶이 먹고 싶다고? 그럼 00 떡볶이에서 사온다”라고 음식 종류만 확인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런 음식들을 좋아하다 보다”라는 정도로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궁금증이 생겼다. 독립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관리비와 월세, 그리고 휴지 수건 및 세탁에 필요한 각종 소모품들만 구입하더라도 수중에 남는 돈이 많지 않은데,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 먹어서 부담은 없을까 아니면 무슨 사연이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늦은 밤 그와 술잔을 기울이면서 “배달음식값이 쌓여서 카드값으로 나가면 아깝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돈? 물론 아깝지. 근데 시설에서 그렇게 먹고 싶었던 거 이제라도 마음껏 먹는다고 생각하면 (아깝다는) 그런 생각 안 들더라고. 이 음식들은 나한테 그냥 음식은 아니야.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 없이 내가 먹고 싶은 걸 원하는 시간에 눈치 안 보고 먹을 수 있으니 이것도 나에게는 좋은 점 중 하나야. 돈은 좀 아끼면 되는 거고, 이것도 좀 줄여봐야지 이젠 내가 다시 시설로 돌아가지 않는 한 언제든 먹을 수 있으니까. 본인도 (나왔을 때) 나처럼 눈치 보느라 못 먹다가 나중에 먹은 음식 있을거 아니야. 나도 처음에는 시설에 살 때 버릇이 나와서 뭐 하나 주문할 때도 허락받고 주문해야 하나 고민 좀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래전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나눴던 대화들이 생각났다. 경로당에 자주 갔던 외할머니는 우리집에 오셔서 요리를 할 때면 늘 큼직하게 고기를 썰어 놓았었다. 때로는 고기 조각이 커서 제대로 씹지도 못했을 때 “ 왜 이렇게 크게 썰었냐” 고 외할머니에게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똑같았다.

“경로당에서는 사람이 많으니까 국 같은걸 끓여도 얄팍한 고기 두세 점 넣고 끝이야 우리 외손자 외손녀 있을 때 고기 좀 배부르게 먹어보려고 했지.”

많은 인원에 얄팍한 고기 몇 점, 경로당에서만 해당 되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리 시설에서 특식으로 피자나 떡볶이 치킨 등을 먹을 수 있다고 해도 배부르게 먹는 것이 아닌 그저 맛만 보는 수준이었을 것이고 그것들만 해도 수십 가지의 브랜드가 있는데, 시설에서 생활하는 인원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제품을 먹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갑자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에게 걱정을 빙자한 훈계를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2000년대 후반, 당시에 사귀던 여자친구과 함께 어떤 시설에 갔다가 누군가가 피자를 시켜주면 담당 선생님에게 혼난다며 거부하는 생활인들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의 그 느낌을 “그들은 왜 탈시설화를 원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에이블뉴스에 올렸던 적이 있는데, 그로부터 10년 이상이 지난 후에도 먹고 싶은 것 하나도 편하게 즐길 수 없는 시설의 상활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했다.

독립 후 배달음식을 자주 먹느라 돈은 별로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그에게 있어 꼭 나쁜 선택은 아닐 것 같았다. 어느 매장이 맛있고, 서비스를 많이 주는지와 같은 기본적인 내용에서부터 배달앱을 사용하고 결재하는 방법과 쿠폰 이용하는 팁까지 시설에서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고 알 필요도 없었던 내용을 자동으로 배우게 되었으니 말이다.

음식을 시켜 먹으며 자신이 원하는 매장에서 본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는 방법을 알았다면 음식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스스로의 의견을 갖고 선택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질 것이다. 물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본인의 몫이겠지만, 독립생활을 하고 있는 많은 장애인들이 그렇듯 그 역시 그러한 과정을 통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 좀 더 익숙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렇게 배달음식을 사이에 둔 만남은 적어도 한 가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시설에서 누군가에 의해 지시받는 삶은 장애인에게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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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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