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말,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엘리베이터(승강기) 교체 공사 일정'에 대한 공고문이 게시됐다.

그 전에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를 하기 위해 입주민의 투표를 거치고, 엘리베이터 디자인에 대한 설문조사가 이루어 졌기 때문에, 공사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12층에 살고 있는 나는 공사를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막연하게 고민하고 있었지만, 막상 공사 일정이 정해지고 나니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현실로 다가왔다.

그래서 먼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고, 나는 출근도 해야 하고, 병원도 가야 하고, 장보러 갈 수도 있고, 아이들 픽업을 하거나 아이들 병원도 데려가야 하는 등 불편을 겪는데,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관리사무소에서는 아예 딱 잘라서 말을 했다. 아파트 입주민 중에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분들을 비롯해 모두가 불편을 겪는 상황이다. 그러니 불편을 모두 감수해야 하는 것이고, 특별히 당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여태까지 그런 사례도 없었고, 알아서 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고 씨도 안먹히게 말을 했다. 나도 그렇게 냉정하게 딱 잘라 말하는데 아는 게 없으니 더 할 말이 없어서 그때는 더 알아보고 전화하겠다며 끊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 일정'에 대한 공고문(사진 왼쪽)과 일정표(오른쪽). ⓒ박혜정

그 뒤 제주 여행을 다녀와서 여러 정보를 찾던 중 불과 1~2개월 전 KBS 뉴스 기사를 봤다. 나와 똑같은 휠체어 장애인이고, 16층에 사는 김해에 사는 분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넣어서 헌법 제 10조 행복권에 해당하는 이동권과 11조에 해당하는 평등권을 침해 했고, 장애인 차별 금지법도 위반했다는 판결을 내리고 아파트 관리소에 손해배상을 지급할 것을 권고했다는 기사였다.

똑같은 선례가 있으니 나는 희망적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인권위의 권고 사항은 법적인 효력도 없으니 만약 무시한다면 방법이 없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조바심만 났다.

그래도 그 기사를 보고 관리사무소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나 같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겪는 불편과는 차원이 다르게 이동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건데, 무슨 대책이 없느냐고 물으니, 역시 똑같은 대답을 했다.

하지만 나는 세상이 바뀌었다며 KBS 기사 얘기를 하며 법적으로 어쩌고 저쩌고 말을 하니, 관리소장의 태도가 약간 달라졌다. ‘그 기사를 보내 달라, 입주민 대표 회의가 2월에 열리는데 안건에 올려서 상의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기사 내용을 메일로 보내줬고, 답변이 온 것은 관리소는 입주민 대표가 동의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시행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입주민 대표 회의 결과를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관리사무소의 약간 우호적인 답변을 들었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2월 초에는 설 명절이 있고, 차일피일 미루는 느낌이 들었다. 미루고 미루면 뭐 어떻게 해볼 도리 없이 제풀에 그만두겠지라는 그 의중이 느껴진달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법적으로 어떻게 할 방법이 있을지 조금의 지푸라기라도 건질 생각으로 무료 법률상담을 찾아서 신청했다. 무료 법률상담이니 변호사가 아주 모든 성의를 다해 상담을 해준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도 '공사중지가처분 신청'이라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공사 전에 가처분이 나야 하는 것이라 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들이 전혀 나에 대한 이동권을 보장해주지 않는 증거도 모아야 했고, 그런 것들로 신청을 해서 최대한 공사 전에 만약 나오면 관리사무소는 나와 협상을 하기 위해 안달이 될 것은 분명하다. 물론 이것저것 다 맞아 떨어졌을 때 얘기지만.

난 사실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부산장애인권익옹호기관, 부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전화를 해서 상담을 받았다. 내가 몰라서 계속 장애인 인권 쪽만 찾았는데, 부산장애인권익옹호 기관에 나와 통화했던 분이 '국가인권위원회 부산사무소'를 전화해보라고 했다. 사실 국가인권위원회 대표 번호도 전화를 하고 별다른 소득이 없었던 차라 부산 사무소에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혹시나 약간 포기할 때 한번 더 하면, 뭔가 일이 풀릴 때가 있다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인권위 부산 사무소에 전화를 오늘 낮에 했다. 부산사무소 상담가는 11월 사건을 알고 있었고, 내가 김해에 실제 사건을 담당했던 사람이나 장애인 당사자와 통화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개인정보라 안된다고 했다. 요즘 세상 당연한 거다! 그래서 내 연락처를 남겼다~ 전화해주시면 고맙고, 아니어도 괜찮다고~

​우어~ 5분 만에 055 경남 지역 번호로 전화가 오길래 받았더니, 세상에! 그 사건의 장애인 당사자를 도와 실제로 진정서를 넣고 처리했던 분이 전화가 온 거다~! 나의 상황을 듣더니 자기가 돕겠다고 흔쾌히 말을 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입주자 대표를 만나러 같이 가주겠다고 했고, 한달 동안 내가 있을 만한 곳도 알아보겠다고 했다. 우아~ 이렇게 고맙고 든든한 지원군 빽을 얻을 줄이야~~~!

​역시 내 좌우명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뜻, 노력이 있으면 언젠가는 길이 열린다는 진리가 통하는 느낌이다. ㅋㅋㅋ 내가 너무 섣불리 해결이 된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어떻게든 나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생각이다.

나 또한 김해 그 상담가님과 장애인분이 선례를 남겨서 내가 해볼 용기가 생겼듯, 되든 안되든 나도 해보고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는 선례를 남겨서 조금이라도 우리 휠 장애인들이 불편을 덜 겪는 세상이 되길 희망하기 때문이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조금 노력해서 조금이라도 바뀌길 바랄 뿐이다.

※좀 더 해결책을 가지고 글을 써야지 했는데, 최근에 똑같은 일을 겪는 분들이 있는 것 같고, 나도 다른 분들의 힘을 얻고자 오늘까지의 글을 씁니다. 파이팅 하게 힘을 보태주시고, 혹시 같은 일을 겪는 분들이 있다면 같이 힘을 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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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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