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 전파상황을 보여주는 지도. ⓒ네이버 블로그

중세시대 이탈리아 항구도시 제노아에 도착한 배에 있는 선원들과 여행객들은 괴질에 걸렸다. 제노아시 당국은 이들을 치료하지 않으며 괴질 확산을 막아보려 했다.

하지만 해상무역을 통해 괴질은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흑사병은 괴질이라는 깃발을 치켜든 채 4년 만에 유럽 인구의 1/3 정도인 2500만 명을 몰살시켰다. 주검들로 거리 곳곳은 넘쳐났고,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지 않은 당시라 흑사병 공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당시 유럽인 대부분은 괴질을 인간 죄의 대가인 신의 벌이라 여겼다. 그래서 속죄를 해야 흑사병이라는 재앙을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속죄’라는 단어가 의미하듯, 죗값을 치를 ‘부정한 존재’의 희생이 필요했다.

이와 관련해 유대인은 예수를 못 박은 사람들의 후손이자 신을 모독하는 집단으로 여겨졌다. 신 모독으로 인류가 흑사병이라는 죗값을 치른다고 여겼던 거다. 섹스가 직업이라 신을 모독한 ‘매춘부’. 이교도이자 병을 퍼뜨린다고 믿어진 ‘집시’도 유대인과 처지가 비슷했다.

나병 또한 당시 역겨운 형태의 섹스와 결부되어 있고 나병의 흉측한 외관은 부정함에 대한 도덕적 처벌이라 여겼다. 이로 인해 흑사병이 창궐할 당시 나병환자, 유대인, 집시, 매춘부들은 혐오대상이자 희생양이 되었다. 인간 사회 공동체에서 격리되었음은 물론이다.

요즘에는 과학, 의학의 발전으로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전염병이 발병하고 뉴스에 등장하면 이로 인한 두려움은 여전하다.

그리고 흑사병 사례에서 보듯 대규모 전염병은 제어가 안 되면 인구감소는 물론 공동체 해체로 이어진다. 잘못하면 공동체 배제를 겪는 집단도 생길 수 있어 나라에서 전염병 확산을 최대한 막으려고 하는 거다.

2020년 1월 30일 오전 12시 기준 국내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생 현황.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실

최근 중국 우한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보도가 전 세계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강한 면역력일 때는 문제 없지만, 면역력이 약할 때 유전자가 같은 세포를 만나면 세포에 붙은 채 유전자 분열을 일으켜 그때부터 무서운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번 바이러스는 심상치 않은 것 같다. 바이러스 전문가들 사이엔 4년 전 메르스 때보다 확산속도가 빠르다는 잠정 결론을 내놓았고 2월 2일 현재 바이러스 감염 환자는 26개국, 총 14,380명에 사망자 수는 304명이다. 대규모 전염병의 여지가 충분하며 비상상황인 것이다.

이에 러시아는 중국과의 국경을 폐쇄했고, 미국과 싱가포르, 호주 등지에서는 중국 전역에서 오는 외국인 차단 대책을 내놓는가 하면 일본, 말레이시아의 경우엔 후베이성 체류 외국인 입국을 불허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메리칸항공, 콴타스, KLM 등의 세계 유수 항공사들도 중국행 항공편 잠정중단 결정을 내리는 등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예방행동수칙 홍보포스터. ⓒ질병관리본부

국내만 해도 2월 2일 기준으로 바이러스 확진자가 총 15명일 정도로 발병속도가 4년 전 메르스 발병 때보다 빠르다. 이에 정부는 국내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확진 환자 14일 격리대책, 마스크 공수 등 대책 마련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런데 국내 바이러스 유행으로 인해 중국 교포, 중국인들을 혐오하는 보도들이 있었다. 대림동 차이나타운을 찾아가 중국 교포를 비위생적이고 위험에 둔감한 이들로 보도하는가 하면, 약국에 줄 선 중국인들이 마스크를 하루 수백 개씩 싹쓸이한다고 보도한 적도 있었다.

중국 교포나 중국인들에게 전염병 낙인을 찍으며 혐오하는 정서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보도, 소문들을 접하면 정말 우려스럽다. 흑사병이 창궐할 당시 유대인, 집시, 매춘부, 나병환자들을 희생양 삼아 살해함은 물론 공동체에서 격리한 행위와 뭐가 다른가?

전국장애인차별연대의 장애인차별혐오비하발언 퇴치 서명운동 웹자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에이블뉴스 DB

요즘 정치인의 장애 혐오·비하 발언도 코로나바이러스만큼이나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장애에 대해 부정적인 정서가 많은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생각은 부정적 장애관점으로 무섭게 복제되기 쉽고 그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폭풍적으로 늘어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장애 혐오·비하 정서가 흑사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본다.

최근 이해찬 의원의 “선천적 장애인은 후천적 장애인보다 의지가 약하다!”는 장애 비하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선천적 장애인은 존엄성 지닌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뉘앙스이다. 선천적 장애인을 지역사회에서 배제·분리하거나 고립되게 만들 수도 있고, 심한 경우엔 이들을 시설에 감금시켜 이들의 인권 침해에 대한 정당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는 발언이다.

4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을 두고 경찰은 조현병이라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로 결론 냈다. 언론에서는 ‘묻지마 범죄’라는 기사 제목으로 정신장애인을 예비범죄자로 낙인찍는 내용을 자주 내보냈다. 정신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재한 사람들에겐 기사 내용이 장애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고, 더군다나 제목이 자극적이기까지 해 기사에 끌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정신장애인을 지역사회에서 배제·분리해 정신병원에 감금하거나 사회에 격리시키자는 사람들의 생각은 바이러스보다 더 빠른 속도로 무섭게 복제된다.

이게 결국은 정신장애인들이 정신병원에 감금되거나 사회에서 고립되어 살아가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거다. 지금 중국인, 중국 교포들을 낙인찍어 지역사회에서 분리하려는 것과 뭐가 다른가?

직장 내 장애인식개선교육 수강자 모습 포스터. ⓒ한국교육컨설팅개발원

강한 면역력으로 면역세포가 바이러스를 잡아먹듯 장애 혐오·비하를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게 하려면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장애이해교육이 필요하다.

현재 원격교육 및 장애 극복 내용으로 진행하는 교육을 지양하고, 장애인 당사자와의 대면교육, 사회적 장벽과 차별 관련 내용 등을 담은 인권교육 중심의 장애이해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또한 장애 혐오·비하 표현에 관해 이런 표현을 억제하는 강력한 법적 제재수단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차별의 악의성을 4가지 충족해야 하는 엄격한 조건을 완화해 장애 혐오·비하 표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도입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과 장애 혐오·비하 이슈를 우리 사회에서 지혜롭고 과감하게 잘 해결했으면 한다.

특히 식물국회라는 오명 속에 신뢰가 많이 추락했고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20대 국회에서 이번 이슈부터라도 책임감 있게 나서며 노력해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란다. 21대 국회부터는 국민의 신뢰를 차근차근 쌓아가는 국회로 거듭났으면.

그나저나 나도 이번 바이러스 걸리지 않게 몸 건강 잘 챙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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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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