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프 필즈 굿’ 포스터 ⓒ구글

아주 낯선 언어의 영화를 만났다. ‘라이프 필즈 굿’... 폴란드 영화인 이 영화는 우선 그 언어도 낯설지만 우리와 전혀 다른 소통방식을 가진 주인공의 그 색다른 언어가 폴란드어보다 더 낯설게 다가온다.

때로는 낯설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불편함과 거부감을 줄 수 있지만 이 영화가 주는 낯섦은 신선하고 흥미롭다.

낯선 언어의 주인공은 바로 마테우스. 마테우스는 뇌병변장애인이며 실존 인물이다. 영화에서 엔딩 타이틀로 기렸던 에바 피에타가 마테우스의 이야기를 ‘Jak moty(나비처럼)’란 제목의 다큐 영화로 제작해 그를 세상에 알렸으며 감독 마시에이 피에프르지카가 세상을 떠난 친구 에바 피에타를 기리며 그의 다큐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2014년 서울국제사랑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이 영화는 지난해 6월 개봉됐지만 소리소문 없이 내려졌고 현재 네이버 영화 정보란에 관객수 378명이라는 믿기지 않는 숫자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그렇게 묻히고 말아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작품이어서 숨은 보석을 꺼내 보이는 마음으로 이 영화 이야기를 적는다.

말 못 하는 어린 마테우스를 진단한 의사는 그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엉터리로 진단을 해 버린다. 그저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으니 특수시설에 보내버리라고 무책임한 조언까지 덧붙여서...

의사에게 일말의 희망이라도 듣고 싶던 마테우스의 엄마는 자기가 점심을 준비할 때 아이가 흥분하곤 한다며 아이의 가능성을 피력해 보지만 의사는 ‘밥그릇을 보면 개도 꼬리를 흔든다’며 엄마의 기대를 묵살해 버린다. 마테우스는 그렇게 ‘식물인간’ 선고를 받는다.

인간이라는 경계 밖으로 내몰린 마테우스에게 모든 순간은 저항이고 투쟁이다. 왜냐하면 어떻게든 경계 안으로 들어서야 하니까, 어떻게든 식물인간이 아님을 증명해내야 하니까...

누구도 그가 생각하고 말하는 ‘인간’임을 인정해 주지 않는 세상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해낼 기회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어쩌면 그 밀도만큼 어둡고 무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시종일관 담담한 어조와 유머를 잃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차마 웃을 수 없는 장면에서조차 관객에게 웃음이 빵 터지는 당황스러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영화 속 어린 마테우스와 아버지 ⓒ차미경

“그래 됐다, 맘에 안 든다 싶을 때는 책상을 이렇게 쾅! 치는 거야.”

그의 아버지가 어린 마테우스에게 맨처음 가르쳐 준 의사표현은 ‘Yes!’가 아니라 ‘No!’였다.

인간다운 품위란 어쩌면 자기다움을 잃도록 강요하는 모든 것에 대해 과감히 저항할 수 있을 때 지켜질 수 있는 것 아닐까. 순응이 아니라 거부, 복종이 아니라 저항으로 진정한 자신을 지키는 법을 마테우스는 아버지에게서 배운다.

주어진 대로 순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버지가 가르쳐 준 대로 마테우스는 온몸으로 부딪쳐 세상을 두드리며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애쓴다.

드디어 그에게 때가 왔다. 자신을 증명할 기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회는 그가 가장 혹독한 시간을 견디고 있을 그 때, 마치 사냥감을 기다리는 맹수처럼 기다림에 가장 맹렬해져 있을 그 때 마침내 기회가 왔다.

가족이 더이상 그를 돌볼 수 없게 되자 그는 결국 시설에 맡겨지게 되는데 그곳에서 고통에 딸려온 사은품처럼 숨어 있던 새로운 기회를 만난다. 바로 그만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통이 어려운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의사전달방법을 연구하던 졸라 부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그녀를 통해 마테우스는 글씨가 아닌 특별한 상징체계를 통한 소통방법을 배우게 된다.

의미가 부여된 어떤 기호를 보여주면 그것을 눈 깜빡임으로 선택하고 선택된 그 기호들을 글자처럼 읽는 것이다. 장 도미니끄 보비가 그의 책 ‘잠수정과 나비’를 쓴 방식이나 루게릭 장애를 가진 박승일 선수가 의사소통하는 방식과도 비슷한데 마테우스가 사용하는 상징체계는 글씨가 아닌 독특한 기호들로 돼 있다. 아마 글씨를 모르는 사람에게 더 유리한 방식일 것이다.

마테우스의 기호들 ⓒ차미경

이 영화는 챕터마다 소제목이 있는데 그 소제목들은 바로 이런 마테우스의 기호들로 표기돼 있다. 글씨가 아니라 마치 수수께끼처럼, 고대의 상형문자처럼 기호화된 마테우스만의 언어체계.

자신만의 의사소통방식을 갖게 된 마테우스가 맨처음으로 사람들에게 건넨 말은 바로 “나는 식물인간이 아니에요!” 였다. 그가 세상을 향해 수없이 온몸으로 던지던 말,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그 말,

나는 식물인간이 아니에요!!!

함부로 식물인간 취급당하고 모든 순간 존재를 부정당하고 무시당하는 상황은 그 자체로 마테우스에겐 지옥과 다름없는 삶이었을 것이다.

시설에서의 삶은 그에게 더더욱 가혹했는데 스프를 떠먹이다 숟가락이 이에 부딛혀 입술에 상처가 나자 시설은 그의 앞니를 생으로 뽑아 버린다. 안전과 보호라는 명목으로 치러진 조치였다.

그런 혹독한 삶을 살아낸 그에게 그 누구도 Life is good이라고 말할 수 없다. Life is good은 개념화된 명제에 불과하다. 객관적 상황만 있을 뿐 주체가 없고 수동적이다.

그러나 Life feels good은 어떤가. 삶을 좋다고 느끼는 주체를 전제한 말이다. 주관적이고 능동적이며 적극적이다. Life is good이 아니라 Life feels good이라고 바꿔 말하는 의지적인 주체의 적극적 저항이 담겨 있다.

-영화의 원제는 ‘Chce się żyć’(나는 살고 싶다) 이지만 나는 원제보다 ‘Life feels good’이란 의역이 훨씬 이 영화의 주제를 잘 표현해냈다고 생각한다.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내주라는 성경 말씀이 있다. 이 말은 어쩌면 양쪽 뺨을 다 내주는 비굴한 순응이 아니라 두 뺨을 다 내놓고도 무너지지 않는 자존감, 가장 강력한 저항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라. 오른쪽 뺨을 때리는데 왼쪽 뺨도 들이미는 사람을 대체 무슨 수로 굴복시킬 수 있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혹독한 삶 앞에서 Life feels good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대체 어떤 불행과 고통으로 좌절시킬 수 있단 말인가.

영화의 엔딩 장면의 마테우스 ⓒ차미경

영화는 별을 바라보던 마테우스가 화면 밖 관객을 향해 두 눈을 깜빡이는 마지막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그가 전하는 마지막 독백은 ‘내일도 좋은 날이 될 것이다’ 였다.

어떤 내일이 닥치더라도 좋은 날이 될 거라고 선언하는 주체적인 인간 앞에 생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Life feels good!

이토록 아름다운 저항이라니, 이토록 강인한 삶의 주인이라니...

마테우스는 결코 장애를 극복하지 않았다. 역경을 넘어 고난을 넘어 운운하며 삶의 대단한 주인인 척 하지도 않는다. 무언가를 특별히 잘하는 사람도 아니며 범접할 수 없는 뛰어난 대인의 품성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가슴 크기로 여자들의 점수를 매기던 미숙한 소년 시절도 있었고 자신도 장애 당사자이면서 다른 지적장애인들을 무시하고 무례하기도 했던 평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한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이 영화의 미덕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삶을 우월한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비하하거나 혹은 대단한 것처럼 과대 포장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자신이 거기 '있음'을 증명해낸 한 인간의 저항기를 담담하고 유머있게 보여주었다는 것.

실제 마테우스와 데이비드 가드너의 모습 ⓒ차미경

엔딩 타이틀이 오를 때 실제 주인공 마테우스와 그 역을 맡은 데이비드 가드너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 연기를 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만큼 데이비드 가드너의 연기는 실로 놀라웠다.

그런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 한 인간의 생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저항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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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미경 칼럼리스트 ㅅ.ㅅ.ㄱ. 한 광고는 이것을 쓱~ 이라 읽었다. 재밌는 말이다. 소유욕과 구매욕의 강렬함이 이 단어 하나로 선명하게 읽힌다. 나는 내 ‘들여다보기’ 욕구를 담는데 이 단어를 활용하겠다. 고개를 쓰윽 내밀고 뭔가 호기심어리게 들여다보긴 하지만, 깊이 파고들진 않는 아주 사소하고 가벼운 동작, 쓱... TV, 영화, 연극, 책 등 다양한 매체가 나의 ‘쓱’ 대상이 될 것이다. 그동안 쭈욱 방송원고를 써오며 가져 왔던 그 호기심과 경험들을 가지고... (ㅅ.ㅅ.ㄱ. 낱말 퍼즐은 읽는 분들의 몫으로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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