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마음을 건네며 들어서는 그녀. ⓒ최선영

"너무 늦었죠... 죄송해요."

미안한 마음을 담은 그녀의 미소가 먼저 문을 들어섭니다.

손에 익숙지 않은 시어머니의 주방은 살림이 어설픈 그녀에게는 여전히 낯설게 느껴집니다.

평소에 잘 하지 않는 많은 양의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다친 곳을 수술한 형님이 이번에 오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명절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잘 몰라서 구경꾼으로 명절을 보내고 그다음에 찾아온 명절에는 입덧이 심해서 냄새를 피해 방안에 누워있었고 다음 몇 년은 태어난 아기를 보느라 또 주방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어머니께도 형님께도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제수 씨 편하게 계세요. 제가 흑기사 해드릴게요."

그 마음을 아셨는지 그때마다 그녀의 빈자리를 지켜주었던 분은 아주버님입니다.

"고맙습니다... 내년부터는 제가 할게요..."

아이가 자라고 그녀는 주방에 합류해 함께 명절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어설픈 탓에 부담이 되었지만 어머니와 형님 그늘에서 큰 어려움 없이 명절을 보냈습니다.

형님이 안 계신 명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에 무거운 걸음으로 갔던 그 작은 두려움은 감사로 끝이 났습니다.

형님의 빈자리를 아주버님이 채워주었습니다. 요리에 재능이 많으신 아주버님은 어쩌면 형님보다 더 전을 잘 부치는 듯했습니다. 아주버님은 여러 사람 몫을 혼자 척척해내는 살림꾼입니다.

생선을 굽고 있는 아주버님. ⓒ최선영

아주버님은 이른 아침부터 음식을 했습니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마지막 생선을 굽고 있었습니다.

미안한 그녀가 설거지라도 하려는데

"제수 씨 들어가서 좀 쉬세요."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쉬라는 말에 죄송한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하던 손이 마저 하는 게 빨라요. 들어가서 커피 한잔하시고 어머니 저녁상만 봐주세요."

"그래, 들어와서 커피 마셔."

눈치도 없는 그녀의 남편은 그렇게 또 그녀를 불렀습니다.

서성이는 그녀의 등을 떠밀어 방에 앉히는 아주버님...

아주버님 깊은 속마음에는 조금은 다른 제수 씨에 대한 배려가 있습니다.

그녀가 아닌 다른 제수 씨였어도 그렇게 해주실 분이지만...

늘 조금 더 마음을 쓰시는 아주버님으로 인해 명절 음식을 왜 이렇게 많이 꼭 해야 하는지...

그녀는 불평할 수가 없습니다.

칭찬해주시는 시어머니. ⓒ최선영

어머니는 꼭 명절 새벽에 나물과 탕국을 합니다.

아주버님도 형님도 없는 새벽에 만나는 주방,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구경만 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민망할까 봐 어머니는 그녀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셨습니다.

이것저것 시켜보던 어머니는 무 채 써는 것을 보시고 합격점을 주었습니다.

채칼 따위는 필요 없을 정도로 무 채썰기는 어머니보다 그녀가 더 잘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무나물을 볼 때마다 칭찬했습니다. 크고 작은 냄비를 나르는 것도 늘 어머니의 몫입니다.

어머니는 조금 다른 며느리를 다르지 않게 봐주시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맡기셨습니다.

어머니의 깊은 속마음에도 조금 다른 며느리에 대한 배려가 있습니다.

그녀가 아닌 형님에게도 그렇게 해주시지만...

늘 조금 더 마음을 쓰시는 어머니로 인해 명절 나물과 국은 왜 꼭 당일 새벽에 해야 하는지...

그녀는 불평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를 안고 달달한 미소를 보내는 형님. ⓒ최선영

동서가 들어오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했을 형님.

그 형님은 동서가 들어오고 오히려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조금은 다른 동서로 인해 늘 하던 대로 일은 해야 했고 태어난 동서의 아기까지 안아주어야 했습니다.

처음 몇 년간은 손도 까딱하지 않고 해놓은 음식을 잘도 먹는 모습이 어쩌면 곱지만은 않았을 텐데 쓴 마음 없이 늘 달달한 미소를 보내며 그녀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습니다.

"동서 피곤할 텐데 누워있어. 내가 나가볼게."

부지런히 움직이시는 어머니, 그래서 잠시도 앉아있기 민망한 상황에 얼굴이라도 내밀려고 하면 그렇게 다시 앉히고 얼른 나가는 형님... 조금은 다른 동서에 대한 배려입니다.

다른 동서였어도 그렇게 했을 형님이지만... 늘 조금 더 마음 써주는 형님으로 인해 어머니의 부지런함에 늘 움직여야 하는 힘듦을 그녀는 불평할 수가 없습니다.

조금은 무겁게 시작된 명절을 이렇게 감사로 끝을 맺는 그녀는 가족들의 배려와 따스한 정으로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로 달려가는 힘을 얻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나 하나의 울타리 안에 함께 살아갑니다. 그 삶 속에 장애인이라는 다른 이름을 안고 사는 며느리와 그의 가족들은 서로 다름을 받아들고 배려라는 따스함 속에 다르지 않은 일상을 만들어 갑니다.

장애인으로 살기 힘든 나라에서 장애인이기 때문에 만나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나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라는 마음으로 장애인에 대한 편견 없는 가족을 만나 아름다운 일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그녀가 누리는 배려를 모든 일상에서 모든 장애인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하는 세상이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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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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