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이 일하는 곳에는 점자와 보도블록 그리고 음성지원 기기가 있어야 한다. 청각장애인이 있는 곳에는 문자나 수화 지원이 있어야 한다. 발달장애인의 직장에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

멀쩡한 형광등의 미세한 깜빡임 때문에 하루 종일 시각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발달장애 사원이 있다는 것을 회사는 알까? 작업장에서 껴야하는 장갑이 손등을 가시로 파고드는 것처럼 아파서 벗을 수밖에 없는 촉각적 고통을 알까? 동료의 고함소리나 특정한 기계음이 마치 분필로 칠판을 긁는 것처럼 청각적으로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까? ‘조금만 더 하라.’는 지시가 지적장애인에게는 쉬운 언어이지만, 자폐인에게는 ‘12시 30분까지 5장을 완성하라.’는 말보다 더 어렵고 혼란스럽다는 것을 직장상사는 알까?

근래 우리 사회에서는 발달장애인도 직업을 가지고 자립하도록 지원해야한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장애인 의무고용부담금을 법으로 정하고, 장애인 고용 회사의 물품 구입 시 연계 혜택을 주는 등 제도적으로도 강화되고 있으며, 발달장애인을 위한 직업재활시설이나 훈련센터 등을 증설하고 취업률을 높이도록 장려하고 있다.

최근 서울발달장애인훈련센터가 개소하여 기존 기업들과 협력 연계방식으로 취업을 위한 실질적인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많은 발달장애 당사자와 가족들, 관련인들의 기대를 모았다. 특히 도서관 사서나 우편물 및 의류 분류, 바리스타, 제과제빵, 외식 서비스직과 도시농업까지 기존의 취업현황 조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업종을 설계해놓은 훈련과정은 매우 고무적이다.

연계 기업 중 퇴사율이 0%에 육박하는 우수 사회적 기업인 베어베터는 발달장애인에 특화된 업무분장과 수습기간 및 근무시간의 효율적 배치로 직원의 업무만족도와 기업의 생산성 두 가지를 모두 성취하는 경영방식을 보여주었다.

비장애인 한 명이 감당할 업무를 구체적으로 쪼개서 서너명의 직원에게 분업화하고, 지하철노선도를 외우는 특성을 이용해서 배달업무를 개발하고, 사회적 인지와 업무태도의 향상을 위해 스티커 상벌규칙을 마련하는 등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맞춤시스템을 개발한 방식은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선구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설명서를 보며 로봇조립과 프로그래밍을 하는 아들. ⓒ김석주

반면에 이직과 퇴사율이 높고, 직원의 만족도나 기업의 생산성이 낮은 국내 수많은 발달장애인 고용현장의 모습은 어떠할까?

그곳들에서는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의 특성을 개별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지적장애인은 대화나 감정은 잘 통하나 작업기능이나 완성도가 떨어지고, 자폐성장애인은 의사소통과 감정조절이 어렵고 특정작업만 집중하는 고집이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글을 모르는 지적장애인은 색깔이나 크기 구분을 통해 작업을 지시하면 쉽게 수용하고, 같은 업무 반복과 칭찬 강화법으로 능률을 올릴 수 있다. 자폐성장애인은 언어적 지시보다는 정확한 기호와 수치 등 문자나 시각적 설명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정밀도와 규칙성을 요하는 작업을 대체로 잘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언어적 소통이 어려운 경우엔 터치스크린이나 아이패드 등 그림이나 사진 모형으로 지시 전달이나 서비스 메뉴 등을 선택케 할 수 있으며, 업무 일과도 시간표와 작업그림 등 스케줄 도식화로 안내하면 쉽게 소통할 수 있다.

발달장애인의 고용과 자립에 필요한 건, 동정이나 사랑이 아니다. 쉽고 편하게 노는 것만을 원하지도 않는다. 이 세상 어느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자신의 능력껏 성장하고 타인에게서 인정과 존중을 받기 원한다. 기업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인당 월급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면서까지 발달장애인을 고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능력을 비하하거나 무시해서가 아니라 단지 장애특성을 파악하기 어려운 난제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발달장애의 특성을 파악하고 개별적 지원 및 환경 개선을 설계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고, 장애인을 고용하는 모든 기업마다 배포하기를 요청한다.

장애인고용공단과 장애인개발원, 그리고 직업재활시설협회 등에서 지금까지 작업장의 양적인 수나 취업률을 높이는 데에 주력해왔다면 이제는 직원들의 이직과 퇴사율, 그리고 성과 저조의 이유 등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직원과 기업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발달장애 인식 매뉴얼을 개발해주기 바란다. 매뉴얼 안에 아래와 같은 문구들은 필히 들어가야 할 것이다.

‘발달장애인도 성인이다. 모든 직원 서로 간에 존댓말을 사용하라.’

‘발달장애인의 감각적 과민함을 보완하라. - LED조명 설치 및 조도 조절, 기계음이나 소음 등 차단 공간 마련, 유니폼이나 장갑 등 섬유 선택 가능 등’

‘지적장애인에게는 쉬운 언어를, 자폐성장애인에게는 정확 간결한 언어를 사용하라. - 비유적 표현이나 억압적인 뉘앙스는 혼란과 불안을 유발한다.’

‘보완대체의사소통기구를 구비하고 업무 전달과 서비스 응대 시 활용한다.’

‘발달장애인 고용 회사마다 담당관리자를 배치하여 업무효율을 분석하고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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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주 칼럼니스트 청년이 된 자폐성장애 아들과 비장애 딸을 둔 엄마이고, 음악치료사이자 부모활동가로서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을 만나고 있다. 현장의 문제와 정책제안,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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