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4일 오전 9시 30분에 한길 강당을 출발! 10시 50분 경에 꽃동네 애덕의 집에 도착했다. 총 15명이 참가해 앰프와 음료, 다과를 나르고 처음 오신 분들을 모시고 꽃동네의 여러 곳을 안내했다.

그냥 꽃동네의 삶을 보기만 해도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줄 느끼게 되는 방문에는 오늘도 여지없이 말이 나왔다. 곰두리 회원이신 통 키타 가수 이원엽씨의 노래로 시작된 오늘의 어울림은 여지없이 흥겨운 분위기로 이어져 보람 있는 행사로 마무리됐다.

꽃동네의 발단은 이렇다. 현재의 꽃동네에서 약 6Km 떨어진 곳에 금왕이라는 마을에 사는 최규동이라는 분은 그 마을에서 만석꾼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부모님의 듬뿍한 사랑을 받고 살다가 결혼을 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일제 징용에 끌려가 실컷 얻어맞고 정신분열과 다리를 저는 상황에 이르렀다.

크게 쓸모가 없어진 일본군들은 최규동씨를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실려 보냈다. 하지만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최규동씨는 고향을 어렵게 찾아가게 되었으나 사랑하는 외동아들을 전쟁터로 보낸 부모님과 식구들은 오간 데 없이 풍지박산이나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최규동씨는 걸인생활을 했고 얻는 것만 할 줄 아는 다른 거지들과는 달리 얻은 찬밥을 병들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다른 걸인들에게 먹이고 난 뒤 자기가 먹었다.

또한 길거리의 유리조각이나 휴지 등을 주워 어린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를 했고 아이들의 돌팔매나 욕설에도 항상 웃음으로 대했다고 한다.

우연히 이 모습을 본 오웅진 신부가 주머니 돈을 털어 벽돌을 사서 움막을 짓고 다리 밑에 있는 거지들의 터전을 옮기고 보살피기 시작했다. 또한 미사시간에 설교와 기도로 주위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소문을 들은 부랑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후원자와 땅을 기부하는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현재는 음성에 약 3,000여명이, 가평에는 약 1,500여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LA에도 수도자들이 파견되어 사랑을 꽃피우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정부의 지원도 받고 70만명이 넘는 회원들의 성금으로 많이 성장한 꽃동네가 더 어려운 시설이나 사람들에게 받은 것을 돌려주는 참된 사랑을 베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 시설만의 발전에는 신경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또한 입소하기에 너무나 까다로운 조건과 비대함에 따른 획일적인 정책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로 한길이 꽃동네를 거의 매월 한번씩 봉사를 시작한 것은 약 9년 전이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연합봉사단 사업의 일환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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