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사실은 티모시 쿡(Timothy Cook)의 추모식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그의 오랜 친구 중 한명은 “나에게 그는 전혀 장애인으로 보이지 않았다.”라고 진심 어린 찬사를 보냈다.

또 다른 친구는 “그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장애가 없었다”라고

했다. 바로 이런 기념사가 38살에 버스에 휠체어 리프트를 장착하게 하는 대중교통 체계를 도입하게 하는 등 장애인의 권리를 위한 중요한 소송을 승리로 이끈 장애인 변호사에게 비장애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칭찬인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서 이런 피상적인 찬사에 당혹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런 말은 마치 흑인들에게 “당신은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덜 까맣소”라고 말하는 것과 같고, 유태인에게 “나는 당신을 결코 유태인이라 생각해 본적이 없소.”라고 말하는 것 같이 잘못됐고, 여성에게 “당신은 전혀 여성처럼 행동하지 않는구려.”라며 아첨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다.

추모식이 열리는 이 교회에서는 장애인들의 현실과 비장애인들의 사고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충돌의 일종이다. 그러나 쿡과 같은 장애인 인권운동가의 좋은 친구들조차 이러한 충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찬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처럼 그들의 진실한 말들은 미국인들이 장애인들에게 일상적으로 늘어놓는 가장 큰 칭찬들이었다. 역시 공평하게 말하자면 그 말을 한 친구들이 쿡을 알기 시작한 약15년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이런 찬사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부분 장애인들은 이제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장애인들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아인식의 혁명적 발전의 결과 그들은(때로는 가족과 함께) 더 이상 그들의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를 부끄러움의 근원이나 타인의 모범이 되기 위하여 극복하여야만 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오늘날 그들은 장애를 가진 것이 별문제가 없고 심지어 좋을 수도 있다고 떳떳이 말한다.

어려서 소아마비에 걸린 쿡은 무거운 교정 신발을 신고 힘겹게 걸었다. 그러나 그는 장애에 자부심을 가지면서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고 모든 사람들은 사회로의 완전 참여라는 공통적 욕망을 갖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장애인들의 세계는 결코 빠르게 바뀌지 않았다. 기술의 급속한 발전, 새로운 시민적 권리의 보호, “주류”학급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장애인 세대, 새로운 집단의식, 그리고 정치적 활동 등은 더 많은 장애인들이 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일자리와 일상적인 참여를 갈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편견, 부족한 사회 경험, 그리고 시대에 뒤진 사회복지체계는 독립을 위한 시도의 싹을 잘라버렸다. 그 결과 장애인들의 새로운 열망은 비장애 미국인들에 의해 알려지지 않거나 잘못 알려졌다.

이 책은 많은 장애인들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에게도 장애인들의 세계와 자아의식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 책은 소위 장애인 권익운동인 “장애에 대해 더 이상 연민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으며 장애인들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 미신, 공포, 그리고 고정관념이라는 장애인들의 새로운 사고”의 성장에 주목하고 있다.

장애의 유형은 수백 가지다. 선천성장애도 있으나 대부분은 후천적으로 발생한다. 근이완증, 세포섬유질화, 몇몇 종류의 시각과 청각 손상처럼 진행성도 있다. 경련처럼 돌발적인 것도 있다. 복합경화증은 돌발적이면서도 진행성이다.

사지절단과 같은 장애는 고정적이다. 암이나 마비증상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간질이나 당뇨 같은 장애는 “잠복성”이다. 장애인법은 장애는 아니지만 편견이나 차별을 유발하는 비만이나 말더듬 같은 유사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각각의 장애는 그 정도가 다르다. 보청기는 대부분의 청각장애인들과 난청자들에게 소리를 확대시켜 줄 수 있으나 다른 장애인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어떤 자폐장애인들은 시설에서 일생을 보내지만 다른 장애인들은 명문대학을 졸업하거나 자기가 하고 있는 직업에서 최고가 되기도 한다.

한 때 의학이 치료법을 개발하여 장애를 퇴치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의사들은 평균수명을 사람들의 늘려 장애인 인구를 폭발적으로 늘릴 뿐이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하반신 불구 부상을 입은 병사 중 단지 400명만이 생존했고, 그들 중 90%는 집으로 돌아가지 전에 사망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때는 2000명의 하반신 불구자가 생존했고, 그들 중 85%는 1960년대 후반까지 살았다.

항생제와 새로운 의학 발전으로 생존 기회가 증가하였다. 1950년대만 하더라도 척추손상 환자들은 호흡기, 방광 등으로 초기에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그러나 의사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했으며 이제 사지마비 환자들도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다.

아울러 2차 세계대전 이후 화학요법의 발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암을 치유했다. 인슐린은 당뇨병 환자들의 생명을 연장했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월남전의 헬리콥터 후송 부대를 모델로 만든 병원의 외상센터는 교통사고나 다른 외상으로 머리에 중상을 입은 환자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 머리에 중상을 입은 환자의 90%가 사망했지만 오늘날에는 90%가 살아난다.

또한 40주가 아닌 23-4주만에 태어난 미숙아도 이제 살아난다. 1989년 세계에서 가장 작은 9.9온스 아기가 시카고에서 의사들에 의해 생존했다. 1980년대 초 초저중량 아기들이 생존하는 것은 드물었다. 지금은 1파운드 2온스에서 1파운드 10온스 정도의 미숙아 중 거의 50%가 생존하고 대다수는 몇몇 신경조직에 장애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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