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입학이 좌절된 후 어머니나 우리 식구들은 저를 위로하기에 바빴고 그 충격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식구들이, 특히 어머니가 더 걱정이 되었고 정말 죄송했습니다.

이것이 제 일이기에 어느 정도 견딜 수는 있었지만 우리 식구들은 제가 혹시 어떻게 되지는 않나 해서 안절부절 못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가족 서로를 위해 마음 아파하며 서로를 쓰다듬어 주고 하는 것이 바로

가족들 간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일이 제가 다니던 중학교 선생님들의 귀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선생님들께서도 안타까우셨는지 도움을 자청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등학교에 진학 할 수 있도록 성심성의를 다해 도와 줘 지금의 모교가 된 정주고등학교에 진학 할 수 있었습니다.

일의 성사 여부를 떠나 선생님들이 학교의 바쁜 업무에도 불구하고 도와주시는 것을 보고 이것이 제자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번 거절당한 이후에 있었던 일이라 선생님들께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렵게 들어간 고등학교가 남녀공학이라는 점이 매우 신경 쓰였습니다. 그리고 그 때가 한참 사춘기 때라 저도 모르게 이성에 대해 신경이 쓰였던 것 같습니다.

다른 때는 또래의 여학생을 접할 기회가 없는데 사람들이 많은 길을 걷다가 또래의 여학생이 내 시야에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몸이 경직됐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랑 같이 걷다 가끔 제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셨죠. 바로 이런 경우였답니다.

이러한 제가 남녀공학인 학교를 다니려 하니 보통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또 하나의 추억은 처음으로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갔다는 것입니다. 소풍과 마찬가지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는 소풍이나 학교 수련회 등 학교에서 하는 모든 행사를 참여하다 보니 선생님들이나 학생들도 내가 수학여행을 가는 것에 대해 당연하다는 듯 여겼습니다. 무사히 2박3일간의 제주도 수학여행을 다녀왔고 고3때에도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서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때까진 동생인 완이가 수업시간에 필기한 것으로 공부할 수 있었는데 대학에 가면 대신 필기해줄 사람이 있다고 보장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수업시간에 강의를 녹음해서 저녁에 그것을 컴퓨터로 정리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컴퓨터를 잘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됐고 중2때 특별활동시간에 전산부에서 활동한 경험을 봐서 그렇게 큰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1년이라는 짧은 시간밖에 다루어 보지 않아 연습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컴퓨터와 휴대용 워드 프로세서를 사달라고 했습니다. 집에서는 연습용으로 컴퓨터를, 학교에서는 실전을 대비해서 워드 프로세서로 열심히 연습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사 달라고 했을 때 무리다 싶어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부모님께 죄송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하길 잘 했다고 봅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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