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찬 영 전주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이동에 대한 욕구와 권리가 충족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인간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생활이 가능해진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한다 해도 인간은 기본적으로 신체를 이동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동권은 그야말로 자연권에 해당되며,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유형으로 볼 때에 자유권에 속한다. 인간이 이동하는 데 있어서 정치적, 사회적 제약을 당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자유권의 침해이며, 자유로운 이동을 불가능케 한다면 그것은 형법상 감금죄에 해당된다.

그런데 국가가 자유권을 보장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국가권력이 개인의 이동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보장되는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야간 통행금지도 없어졌고, 특수한 장소에 대한 출입제한을 제외한다면 우리는 이동권을 누리는 데 거의 부족함이 없다. 국가도 이에 대해 간섭하거나 제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해서는 생각을 달리 해야 한다. 이것은 자유권이라기보다 사회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국가의 적극적인 작위(作爲)의무가 이행되어야 충족될 수 있는 권리라는 뜻이다.

자유권은 국가의 부작위(不作爲)만 있으면 보장되지만, 사회권은 국가가 예산을 투입해 실물을 제공해야 보장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헌법상 보장되는 교육받을 권리(헌법 제31조), 근로의 권리(헌법 제32조 내지 제33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헌법 제34조), 환경권 및 주거권(헌법 제35조) 같은 사회권들은 국가가 법적 장치와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고 예산을 투입해야 보장되는 것이다.

장애인의 이동권 역시 마찬가지다. 비장애인들의 이동권은 자유권이므로 국가가 이동을 방해하지 않으면 보장되지만, 장애인의 이동권은 국가의 입법과 예산이 있어야 보장될 수 있는 사회권으로서 속성을 갖는다.

현재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에서 장애인 등의 접근권을 규정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이동권을 명시해 규정하지는 않고 있다. 시설물에의 접근권이나 정보에의 접근권에 더하여 이동권은 접근권을 구성하는 중요한 권리다.

현대사회에서 이동에 대한 욕구와 권리를 충족하는 것은 교통수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버스, 기차, 지하철, 비행기 등 대중교통은 개인들의 이동권에 봉사하는 도구들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 버스와 비행기는 민간 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현실이며, 기차와 지하철은 국·공영기업이 운영하고 있다.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수단도 국가의 통제하에 운영된다면 이동권에 대한 국가의 의무이행이 더욱 가능하겠지만 적어도 기차와 지하철에 대해서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장치와 조치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연이은 지하철 리프트 사고를 보아도 그렇고, 서울 지하철 366개 역사 중에서 그나마 리프트를 설치한 곳이 21%인 78곳에 지나지 않고 휠체어 리프트조차 설치하지 않은 곳이 168곳이나 된다고 한다. 이런 편의시설들도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심지어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등 문제가 심각한데, 정상적으로 가동되어도 이용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이동하는 인구가 너무 과밀하여 장애인이 안전하게 편의시설을 이용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지방 중소도시에는 공공적인 지하철이 없고 주로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버스와 택시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지방자치단체는 도로 구조물 개선과 아울러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이것은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국가기관의 최소한의 의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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