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트를 보면서 수화로 찬불가를 부르는 농아 불자들.

일요일 아침. 새벽잠을 설치고 집을 나섰다. 서면에서 심여회 회원 이영우씨의 차를 타고 금정산으로 향했다. 범어사 입구에서 내원암에서 내려오는 봉고차를 기다렸다. 9시 20분. 지하철에서 내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9시 40분. 봉고차의 뒤를 따라 범어사로 향했다. 범어사 일주문을 지나서도 꼬불꼬불 산길을 한참이나 올라갔다.

내원암 주차장에 내리니 산속의 아침이라 싸늘했다. 고개를 들고 사방을 둘러보니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금정산 정상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계곡에는 얼음이 꽁꽁 얼었고 등산객들이 드문드문 산을 오르고 있었다.

추위에 덜덜 떨며 내원암 법당으로 들어서니 스님이 불공을 하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일반 신도자리고 왼쪽이 농아들 자리라고 했다. 왼쪽 뒷자리에 앉았다. 스님이 염불을 하는데 오른쪽의 신도들은 책을 보면서 염불을 따라하고 있었다.

왼쪽 앞에는 염불을 적은 차트가 놓여있고 한사람이 차트에 쓰여진 염불을 긴 막대기로 짚어가고 있었다. 법당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은 먼저 불전함에 보시를 하고 자리를 잡고 삼배를 하고는 차트의 막대기 끝을 눈으로 쫓았다. 시간이 지나자 왼쪽 자리는 꽉 찼다.

스님의 긴 염불이 끝나자 모두가 일제히 일어섰는데 한사람이 앞으로 나가서 노래를 시작했다. 수화노래였고 농아불자들은 그 노래를 함께 했다.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불자라면 누구나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할 '네 가지 큰 서원'을 담은 노래이다. 욕심을 버리고 남을 도우며, 마음속의 번뇌를 다 끊고 자신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며, 법문을 공부하여 불국정토를 이루겠다는 사홍서원이다.

노래하는 모습이 너무나 진지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왠지 코끝이 찡해지면서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이어서 스님의 설법이 시작되었다.

"며칠 있으면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입니다. 우리는 조상을 잘 모셔야 합니다. 조상을 잘 모신다는 것은 부모님을 잘 모신다는 것인데 살아있는 부모님을 물론이고 돌아가신 부모님도 잘 모셔야 합니다. 내가 부모님을 잘 모시는 모범을 보여야 자식들도 내게 잘하게 됩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스님의 설법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니 제사상을 떡 높게, 과일 많이 차릴 생각하지 말고 나물 한 그릇이라도 정성껏 모시기 바랍니다."

스님은 설법을 끝내고 설이라고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면서 선물상자를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선물을 받아들고 공양간에서 점심공양을 하고 다시 모였다. 다음 법회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특히 올해 삼재가 무슨 띠냐에서 제각기 띠를 얘기하느라고 한참이나 소란스러웠다. 올해 갑신년의 삼재(三災)는 인 오 술(寅,午,戌) 범띠, 말띠, 개띠이다.

1월 셋째 일요일인 18일이었다. 범어사 내원암에서 일요법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몇 달을 별러서 찾아갔던 것이다.

부산불교교육대학에서는 1년에 두 차례씩 포교사 과정 교육을 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1997년 포교사 과정에 수화교육 시간이 배정되었다. 1998년 3월 10일 부산불교교육대학 불교수화반 1, 2기 수료자들 몇 명이 농아포교를 하기로 뜻을 모아 심여회를 창립을 하였던 것이다.

심여회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은 송춘관씨는 명륜동 자비정사에서 농아법회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서너 명의 농아들이 참여하였는데 그들에게 불교교리를 가르치고 1년에 두 차례 수련회도 개최하는 등 농아포교를 위해서 노력하는 한편 포교사들을 대상으로 불교수화반도 1년에 두 차례씩 개설하고 있다.

그러다가 1999년 송춘관 회장은 뜻한바 있어 출가를 하였고, 뒤를 이어 불교수화반 1기 수료생인 김해순(64)씨가 회장을 맡았고, 회원 이영우씨가 홈페이지 '두손모아'를 개설하여 농아복지와 불교포교를 하고 있다.

그런데 2003년 5월 출가하였던 송춘관 회장이 스님(법명 도원)이 되어 범어사 내원암으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작년 7월부터 일요법회는 내원암에서 도원스님이 직접 주관하고 있다.

불교수화반 수강생은 많은데 수화반을 수료하고 농아불자들을 위해 심여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아 회원은 겨우 30여명이다. 그러나 그 중에는 수화통역사가 되어 장애인복지로 진로를 바꾼 사람들도 있다.

심여회에서는 3월 14일 농아돕기 기금마련을 위한 일일찻집을 준비 중인데 이날 발표할 수화공연을 위해 법회를 마친 농아자녀들이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었다.

농아불자회는 이혜자 회장이 맡고 있으며 회원은 50여명이다. 농아법회는 매월 첫째 셋째 일요일 오전 10시 범어사 내원암에서 개최한다. 지하철 1호선 범어사 역에 내리면 내원암의 봉고차가 기다린다. 법회는 차트와 수화로 진행하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심여회. 부산농아불자회, 두손모아 http://www.doosonmoa.com

▲수화로 설법하는 도원스님.

▲수화로 노래하는 농아불자와 왼쪽 뒷편의 일반 신도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