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6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427편 접수됐다. 이중 최유리씨의 ‘우리 집에 DJ가 산다’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20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20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열여덟 번째는 가작 수상작인 박영빈 씨의 ‘내 친구,J’이다.

내 친구, J

박영빈

2016년 3월 3일 첫 고등학교 수업 날이었다. 3월이지만 꽃샘추위의 쌀쌀한 바람이 교복 셔츠 안쪽까지 파고 들어왔다. 매서운 바람 때문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덕분에 팅팅 부운 눈은 금방 가라앉았고 잠도 절로 깼다. 운 좋게 중학교 동창 2명과 같은 반이 되어서 정말 기뻤다.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무척 기대가 됐다. 친구들과 나는 교탁 맨 앞줄 중앙에 자리를 잡고 1교시가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교실 앞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한곳으로 향했다. 순간 아이들의 수다소리가 멈추고 정적이 흘렀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우리 또래의 남학생이 도우미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과 함께 교실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서는 내 옆, 친구가 앉은 자리 쪽에 휠체어를 멈추더니 도우미 분께서 내 친구에게 ‘휠체어를 타고 있는 아이가 거동이 불편하니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해 달라.’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친구는 바로 뒷자리로 자리를 옮겼고, 휠체어를 탄 친구와 나는 단 1분 만에 짝이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이해는 했지만 어린 생각에 친한 친구와 짝이 되지 못한 것이 아쉬웠고, 새로운 짝과 한동안 같이 지내는 것이 마냥 어색하기만 했다.

동갑이지만 낯선 사람과 같이 있는 게 어색했던 나는 말 한마디 먼저 꺼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친구가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이름이 뭐냐고 묻는 그의 질문에 내 이름을 알려줬고 나도 똑같이 물었다. 그의 이름은 J(가명)였다. 조금의 정적이 흐른 후, 다시 J가 말을 꺼냈다. “나는 원래 문과 반이었는데 오늘 이과 반으로 전과한 거야.” “아, 그래? 왜?” 궁금한 내가 되물었다. “내가 의대를 가고 싶어서 전과한 거야.” 예상치 못한 그의 목표에 다소 놀랐다. 의대를 목표로 하다니 공부를 엄청 잘 하는 애구나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교복, 새로운 친구들과 아직 친하지 않은 단계이다 보니 첫 수업시간에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자기소개 내용은 본인의 이름과 앞으로의 꿈, 목표를 말하는 것이었다. 순서가 돌고 돌아 나 다음에 J의 순서가 되었다. 거동이 불편하여 일어서지 못하는 그는 앉아 있는 상태에서 진행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큰 소리로 본인의 이름을 소개하고 본인의 꿈을 말하였다.

“제 꿈은 3년 뒤 의대에 진학하여 제가 앓고 있는 병이 무엇인지 밝히고 저와 같은 증상을 가진 분들을 치료해 주는 것입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윽고 큰 박수가 흘렀다. 다른 친구들의 자기소개 후 박수보다 확실히 박수소리가 크고 오래 울렸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J의 말이 자기소개 끝난 후에도 머릿속에 맴돌았다. 대단하고 멋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17살 학생이 자신의 꿈을 남들 앞에 그렇게 당당하게 밝힐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J의 목표는 그 당시 나에게도 자극이 되었다. 옆의 친구가 벌써부터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노력하는 모습에 J를 본보기로 삼게 되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내 뒤에 앉은 친구들과도 친해졌고, 반 아이들과도 자연스레 말을 틀 수 있었다.

그렇게 J와 많이 친해진 후 그와 장애인들의 인권과 인식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안타깝고 불쌍해. 그들은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들이야.’ 이렇듯 우리는 은연중에 장애를 가진 모든 존재는 불쌍하고 보호해야 하는 그런 존재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우리들의 생각을 아는 듯이 J는 이렇게 말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불쌍한 사람이 아니야. 과도한 배려, 존중이 아닌 그냥 일반 사람처럼 대해주기를 바랄 뿐이야.”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생각해왔던 장애인분들에 대한 나의 시선, 생각, 행동들을 돌이켜 보았다. 그들에 대해 과도하게 안쓰럽게 생각해왔던 것은 아닌지, 불쌍하다고 여겼던 것은 아닌지 등등. 그런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마주하게 되니 J를 보기에 정말 부끄러웠다. 앞에서는 늘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동안 J가 얼마나 많은 편견과 부정적인 시선을 느꼈을지 생각하면 마음 한 편이 미어졌다.

J는 장애인들을 배려하지 않은 몇몇 시설물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보통의 건물들은 입구에 들어가기 위해 2, 3칸의 계단을 먼저 오르고 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구조이다. 그리고 몇몇 건물들이 휠체어를 이용하는 분들을 위해 가장자리에 계단이 아닌 낮은 경사로를 만들어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눈 그때만 해도 J는 그런 편의시설이 거의 없다고 하면서 안타까워했다. 생각해보니 우리 동네에도 공공시설만 그렇게 되어있었지 음식점, 카페 등등은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있다고 해도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을 뿐이었다.

J와 이야기를 하면서 그동안 J가 얼마나 불편하게 지내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현실이 안타깝고 매정하게만 느껴졌다. 당시 17살의 나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갖고 있는 인식부터 고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오랫동안 건들지 않은 인식을 바꾸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J와 함께 학교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점차 바뀌었다. 매일 보고, 대화하고, 놀고, ‘대학’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했다. J가 가진 장애는 내가 J를 대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힘든 것이 있으면 서로 위로하고 도와주고 기쁜 일이 있으면 공유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J는 결국 의대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실은 인터넷 기사에도 실리게 되었다. 중증장애 학생의 입학 전례가 없는 의대의 교수님들이 만장일치로 J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노력해보자는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나는 그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으며 J의 기사에 직접 선플도 달아주었다. 졸업하고 4년이 지난 지금도 J와 꾸준히 연락을 하고 있다. 얘기를 들어보면 고등학생 때처럼 원만하게 잘 지내고 있으며, 소수자 인권에 대한 교내 동아리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끝으로 J 덕분에 내가 가진 장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화할 수 있었다. 새로운 생각과 마음으로 장애인을 똑같은 존재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J의 꿈을 향한 노력을 보면서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여 현재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느끼게 해준 내 친구 J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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