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6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427편 접수됐다. 이중 최유리씨의 ‘우리 집에 DJ가 산다’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20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20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첫 번째는 복지부장관상 수상작인 최유리씨의 ‘우리 집엔 DJ가 산다’다.

우리 집엔 DJ가 산다

최유리

우리 집에는 라디오 DJ가 산다. 덕분에 집안에서는 온종일 음악이 끊이지 않는데, 선곡은 DJ 마음대로, 시간도 DJ 마음대로다. 애니메이션 오프닝부터 트로트까지 노래 장르는 아주 다양하다. 가끔은 초대 가수도 불러서,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초대가수는 부모님과 첫째 오빠, 그리고 나. DJ가 선창하면, 그 부분을 따라서 같이 불러야 한다. 방송이 아주 엄격해서, 가사를 한 글자라도 틀렸다간 다시 처음부터 노래 시작이다. 꼭 쟁반노래방처럼 틀린 부분을 또 부르고, 부르다 보면 나중에는 진짜 원조 가수처럼 잘 부를 수 있다.

질릴 때까지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DJ가 만족하면 그날 방송은 끝이다. 만일 기분이 아주 좋은 날이나, 새로운 노래가 듣고 싶은 날이면, 또다시 방송을 시작하기도 한다. 예고 없고, 계획 없는, 우리 집만의 마음대로 뒤죽박죽 음악 라디오. 방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는 대표 DJ는 바로 우리 둘째 오빠다.

발달장애가 있는 우리 오빠는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종일 노래를 듣는다. 듣는 노래들은 꼭 정해져 있다. 만화 <디지몬 어드벤처>의 OST, 박현빈의 샤방샤방, 신지의 해 뜰 날 등등,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여러 개의 노래를 번갈아 가면서 듣고 또 듣는다. 소중하게 목록에 넣은 노래마다, 꽂힌 가사도 꼭 하나씩 있다.

대표적으로 박현빈의 샤방샤방에서는 ‘아주 그냥, 죽여줘요’라는 가사를 제일 좋아한다. 한창 오빠가 이 노래에 꽂혔을 때는, 나도 매일 노래를 같이 부른 덕분에 박현빈 노래를 트로트 가수 뺨치게 잘 부르게 됐다. 다른 가족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우리 집 DJ가 같이 부르자고 하는 노래는 다 꿰고 있다. 노래 가사 한 소절을 부르면 다음은 말하지 않아도 척하면 척이다. 아마 우리 가족인 척하려면 그 많은 노래의 많은 가사들을 다 외워야 할 테다.

툭 치면 술술 나오는 노래 가사는 이제, 우리 가족만의 일종의 비밀 신호가 됐다. 이제는 노래가 너무 익숙해져서, DJ가 노래를 틀면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고 있다. 아주 익숙하고, 숨 쉬듯 자연스러운 노래들. 하지만 누구나 반복되는 것에는 질리고 또 지칠 때가 있기 마련이다.

“제발 그만 좀 하면 안 돼? 차라리 다른 노래를 부르던가!”

집안에서 온종일 큰 소리로 울리는 똑같은 음악에 한때는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내가 절규하면 DJ는 내 눈치를 보며 노랫소리를 줄이는가 싶더니 또 흥이 나면 원래대로 볼륨을 높이곤 했다. 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도 계속해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신물이 나 일찍 자는 척한 적도 있다.

특히 고등학교 때는 학업 스트레스로 더더욱 힘겨운 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거기다 라디오 초대가수까지 하면 스트레스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한국 고등학생과 라디오 초대가수, 투 잡은 절대 불가능했다. 아주 예민하고 날카로운 학생이었던 나는, 그때부터 오빠의 신청곡을 철저히 무시하기 시작했다. 오빠가 어김없이 익숙한 노래를 틀면 질린다는 듯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와 아무리 ‘샤방샤방’을 선창해도, ‘아주 그냥, 죽여줘요’를 따라 부르지 않았다.

“안 할 거야, 가!” “시끄러워!”

오빠가 몇 번이나 선창해도 나는 절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가끔은 나도 흥이 나서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가 있었지만, 절대 응하지 않겠다는 괜한 오기로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와 실패 끝에 결국 오빠가 다른 가족에게로 발길을 돌리면, 그때가 되어서야 나는 생각했다. ‘이것 봐, 내가 아니어도 불러 주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니야?’ 어차피 노래를 불러줄 가족은 많으니까, 굳이 내가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저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 부르는 이 요상스런 관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도 같다.

노래를 부르는 게 꼭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 그리고 그저 내게 노래만 해 달라고 하는 오빠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오빠가 엄마의 휴대폰을 빌려 보낸 한 개의 메시지였다.

‘보고싶어요같이노래해요’

띄어쓰기 없이 보낸 열 글자에 오빠가 하고 싶었을 모든 말이 들어가 있었다. 항상 노래만 부르고, 똑같은 말만 하고, 도저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오빠가 처음으로 내게 보낸 ‘보고 싶다’는 솔직한 말은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초대가수들한텐 관심도 없는 제멋대로 DJ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에게 음악이란 하나의 언어였다는 사실을.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같이 노래를 부르고, 즐거워하면서 둘째 오빠는 그 나름대로 나와 소통을 하고 있었다. 결국, 그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오빠를 비뚤게만 바라봤던 것은 나였다. 내가 오빠와의 순간을 즐기지 못했던 것은 오빠가 매번 같은 노래만 해서도 아니고, 큰 소리로 노래를 들어서도 아니라, 결국 소통할 마음이 없었던 나 때문이었다.

깨닫고 보니 노래를 부르자고 내게 오는 오빠는 언제나 신나 있었다. 내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유심히 보다가 박수를 치기도 하고, 다른 노래를 불러 달라고 하기도 했다. 오빠는 그저 노래를 불러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와 함께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것이 하나의 소통이자, 즐거움이었던 셈이다.

“샤방샤방~ 샤방샤방~” “아주 그냥, 죽여줘요~”

문자 메시지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 오랜만에 초대가수가 된 날. 나를 보고 밝아진 오빠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기다렸다는 듯이 노래를 트는 것이 웃기고 조금은 괘씸했지만, 전처럼 질리거나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흥나고 신나는 시간이었다. 늘 하던 대로 익숙한 노래를 듣고, 또 따라 부르는 것뿐인데 전과는 다른 뭔가가 있었다.

나는 어쩌면 그것이 새로운 소통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의 가족이자, 친구이자, DJ와 초대가수로서 존재하고 또 교류한다. 이 관계에 굳이 특별한 교류나 넓은 마음, 태평양 같은 배려심, 한 쪽의 희생 따위는 없다. 그저 음악 하나, 그리고 여러 사람이면 충분하다. 그걸로 됐다!

우리 집에서는 음악이 교류의 시작이 되었지만, 어떤 경우에는 미술이나, 요리나, 악기 연주나, 그 밖에 아주 다양한 일들이 교류의 시작일 수도 있다. 굳이 거창하지 않아도 새로 만난 사람과 공통되는 관심사나 주제를 찾으면 친해지기가 쉽듯이, 발달장애인과도 충분히 관심사를 통해 친해지고, 또 교감할 수가 있다.

가끔 우리는 발달장애인을 너무나도 특별한 존재로 취급하고 자신과는 맞지 않는, 소통 불가한 존재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오빠를 본다면, 그리고 함께 노래를 불러 본다면 생각은 금세 달라질 것이다. 오빠의 흥과 노래는 최고니까! 궁금하시다면, 우리 집 뒤죽박죽 라디오를 선곡을 한 번 들어보시라.

우리 집에는 여전히 라디오 DJ가 산다. 선곡 리스트는 언제나 같고, 방송 시간은 아주 마음대로인 제멋대로 뒤죽박죽 라디오. 가끔은 질리기도 하고 짜증도 나지만, 듣다 보면 중독되는 사랑의 라디오. 우리 집에 가게 되면 초대가수로 특별출연 좀 해 줘야겠다. 힘 팍팍 넣어서! 이상, 뒤죽박죽 라디오의 제멋대로 초대가수 막냇동생이었습니다. 다음 곡은 제멋대로 라디오 방송국 ‘우리 집’에서 보내드립니다. 우리 집 DJ의 신청곡, 박현빈의 샤방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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