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개발원은 장애인일자리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매년 ‘장애인일자리사업 우수참여자 체험수기’를 공모하고 있다.

2019년 공모에는 17개 시·도에서 75건의 수기가 접수됐고 심사결과 최우수상 4편, 우수상 9편 등 총 13편의 수상작이 선정됐다. 에이블뉴스는 수상작을 연재한다. 열두 번째는 복지일자리(참여형) 부문 우수상 수상작 윤어준 참여자의 ‘50에 빛나는 삶을 살다’ 이다.

50에 빛나는 삶을 살다

윤어준(서울시)

시각장애인안마사파견사업에 참여한 지난 6년을 돌아보니 내가 어르신들에게 해드린 것보다 더 많이 받고 살아온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도 하고 미래를 생각하게도 했던 인생 학교이자 서로 교제하며 외로움을 달래 왔던 놀이터와 같은 이곳에서의 삶을 적어보려 한다.

학교에서 안마를 배웠지만 다른 일을 하다가 실패하고 나이 50이 넘어 시각장애인안마사파견사업의 안마사로 일하게 되었다. 처음 경로당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큰 어려움이 닥쳤다.

당시에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영등포로 배정되었다. 나와 경로당에서 함께 일하게 된 동료들이 나보다 기량이 월등하게 뛰어나 어르신들은 두 사람에게만 받으려 하시고 나에게는 받지 않으려 해서 참 마음고생이 심했다. 지금도 그때 일이 기억난다.

‘안마 받으실 분 오세요!’ 여러번 외쳐도 서로 안 오시려고 해 동료들이 6~7명씩 할 때 나는 3∼4명을 하게 되어 안마사들에게도 미안하고 어르신들에게 낯을 들 수 없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마지막 일이라 생각하고 뛰어들었기에 매일 안마를 끝내고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열심히 실습을 했다. 노인질환에 어떻게 수기요법을 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여러 매체를 통해 관련학과 박사들의 강의도 찾아 듣고 메모해가며 공부했다. 영상은 비장애인에게 보면서 설명해 달라고 하여 나의 부족함을 채워갔다.

그 결과 나에게 안마 받은 분들이 불편했던 신체의 부위가 편해지고 2주에 한번 받는 안마만으로도 의료기관에서 받던 물리치료를 받지 않을 정도로 건강이 좋아졌다는 소문이 나, 수개월 만에 하루에 5∼7명씩 똑같이 일을 하게 됐다.

이어서 행복한 고민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고령자나 자녀가 성공하지 못해 기를 펴지 못하는 분들만 안마를 해 드렸기 때문에 알람을 맞춰놓고 시간을 동일하게 해도 괜찮았지만, 다른 분들이 나에게 받으러 오면서 시술시간을 본인만 더 길게 해달라는 요구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들어줄 수 없기에 일을 하면서 알아듣기 쉽게 말씀드리고 이야기도 들으면서 서로 이해하게 되어 가까워지게 되었고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자 상대를 배려하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 안마를 하러 가면 어르신들이 맨바닥에 물병을 베개 삼아 베고, 매트도 없이 안마를 받아 안마시술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안마사도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안마를 하기에 무릎이 아파 고생을 하기도 했다.

그 사실을 회장님께 말씀드렸더니 당장 넓고 푹신한 침구류를 구입하기도 했고, 형편이 어려운 경로당은 요가매트를 기증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 편하게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일하러 가면 어르신들 중에 씻지 않아 냄새가 너무 심한 경우가 있었다. 어르신이 기분상하지 않게 잘 말씀드려 다음부터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오시도록 했더니 수긍하시고 실천해 주셔서 해결됐다.

또 안마를 할 때 “전부 양말을 신고 오세요” 부탁드렸더니 깨끗한 양말을 준비해 오셔서 본인 차례가 되면 양말을 갈아 신고 받아주시는 분들이 있어 감동받기도 했다.

나도 일하러 갈 때마다 내 형편에서 최대한 깨끗하게 손질해서 입고 청결하게 하고 근무하는 것이 나의 소신이었으므로 그대로 실천했는데 나중에 전해 들으니 항상 깔끔하게 하고 오니 어르신들 스스로가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와 어르신들과의 관계 개선이 근무환경을 바꾸고, 그 분들로 하여금 시각장애인을 이해하려는 노력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를 특별하게 생각해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셨고 나의 작은 실천이 동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주 업무는 안마지만 대화상대가 되어 말씀을 들어드리는 것 또한 중요했다. 안마를 하면서 역사나 시사토론이 벌어지기도 하고, 모르는 용어, 건강문제, 가정문제까지도 이야기했다.

심지어 어떤 어르신은 점집에 갔더니 악살이 2개가 겹쳐서 올해에 큰 재난이 올 것이라며 크게 낙담하기도 하셨다. 그 어르신에게 “사람은 누구나 2∼3개의 살을 갖고 사는데 전혀 문제없이 살고 있으니 마음에서 털어버려요”라고 하니 밝고 생기 있는 표현으로 기뻐하셨다.

어르신들은 아들이나 손자가 대답해주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설명해주니 잘 알아듣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좋아하신다. 내가 가진 것으로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고 행복해진다는 것은 바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가는 것을 느끼는 삶이 되었다.

내가 경로당에 나오기 전에는 노인은 꽉 막힌 사람들,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들, 수준 낮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일을 하고 1년도 되기 전에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분들도 가슴 따듯한 분들이고, 서로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하는 분들이 모여서 교제하는 곳이 경로당이라는 것을…….

경로당 안마를 하고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인문학을 몸소 깨달았고 나에게 새 인생을 시작하게 해주신 분들이며 미래의 나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더욱 겸손을 소유하는 현장의 직업이 되었다.

내가 처음 안마업계에 나왔을 때는 나를 써주는 곳이 없어서 경로당 안마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60을 바라보는 현재는 일하러 오라고 부르는 곳도 많아졌고 바우처 일을 같이 하자는 분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분들의 제안을 받아드리겠다고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시각장애인안마사 파견사업이야말로 다양한 인생스토리를 듣고 책에서 배울 수 없는 인생사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일,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세상을 알 수 있는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경로당안마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하게 근무원칙을 지켜나갔기 때문이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회 본 사업 담당자님은 사고 나지 않게 어르신들의 건강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알맞은 안마시술을 하고, 안마로 병을 고치려 하지 말라고 하셨다. 또 시술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정해진 시간만큼 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말씀을 잊지 않고 실천한 것이 내 성공의 비결이다.

시각장애인안마사파견사업을 통해 깨달은 것은 어르신들을 행복하게 하는, 어르신들에게 만족을 주는 건강 증진 중심의 안마를 위해서는 어르신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소중한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의 화면해설 영화와 드라마를 듣고 여러 가지 정보를 습득하여 경로당 어르신들에게 안마를 해 주는 동안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며칠 전 사당동에 있는 경로당에 파견되었는데 전직 대학교수였던 어르신이 “윤 선생은 볼 때마다 얼굴이 환하고 행복해 보여”라고 하셔서 나는 늘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경로당에 나오면 일도 하고 어르신들과 세상살이도 이야기도 한다. 이 사업을 통해 버는 수입이 있지만, 부족한 생활비는 주변 지인들의 사업장에서 야간 및 주말 아르바이트를 한다. 나 스스로 건강을 지켜가며 주어진 일에 감사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해서인지 정말 만족한다.

나는 이 수기를 통해 시각장애인안마파견사업 관계자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제게 빛나는 인생을 되찾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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