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자기 삶’을 살고, 이용 장애인 개개인의 삶이 묻어나는 사람살이를 나누고자 ‘2019년 장애인거주시설 삶이 있는 이야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이번 공모전은 장애인거주시설 이용 장애인 일상 속의 여가, 취미, 학교, 직장, 자립생활 등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시설 직원이 총 70편의 사연을 공모했으며, 그중 11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수상작을 연재한다. 여덟 번째는 특별상 “나는 나를 사랑한다”이다.

가온들찬빛 이용인 김성옥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체험홈 아파트에 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집에 여럿이서 사는 시설에서 살았다. 여럿이서 살다 보니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언니, 동생, 친구들 때문에 속상한 일이 많았다. 나는 궁금한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들여다보고 물어보고 쫓아다닌다.

나는 궁금한 것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답답하고 미칠 것만 같다. 그래서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고 언니, 동생, 친구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만지거나 들여다본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훔치려고 한 것은 아닌데, 나를 의심하는 것 때문에 기분이 나빠서 다투고 나는 울었다. 그리고 선생님도 다른 사람 물건을 허락 없이 만지거나 뒤지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는 했다. 난 단지 궁금한 것이 많을 뿐인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속상하다.

나는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것들이 궁금하다.

작년에 나는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네 사람이 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짝지 미향이, 제일로 똑똑한 미홍이 언니, 나이가 가장 많은 춘강고모랑 함께 산다. 우리는 가족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하다. 아프면 서로 챙겨주고 맛있는 것이 생기면 같이 나누어 먹기도 한다. 그렇다고 항상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별것 아닌 걸로 다툴 때도 많고, 토라져서 서로 말하지 않고 눈치 볼 때도 많다.

아파트에서 살면 시설에서 살 때 보다 엄청나게 내가 스스로 해야 할 것들이 많다. 선생님이 많이 도와주지만 아파트에서는 내가 주인공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궁금한 것이 많다. 아파트로 이사 오니 더욱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한 번 만난 사람 얼굴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 그래서 선생님이 나보고 머리가 비상하다고 한다. 아파트에서 살면서 한 번 마주친 사람은 잊지 않고 내가 먼저 인사한다. 처음에는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는데 내가 자꾸 인사하니 이제는 내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이 늘어났다.

아파트 주변에는 문방구, 책방, 화장품 가게, 붕어빵 가게, 미용실, 목욕탕 등등 정말 많은 가게들이 있고 나의 궁금증을 폭발하는 곳이라 나는 이곳을 좋아한다.

내가 자주 가는 문방구에는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물건이 많다. 곱슬곱슬하게 파마한 아주머니가 사장님인데, 이 물건 저 물건을 살펴보고 궁금하여 물어보면 아줌마는 싫어하지 않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밖에서 문방구 아주머니와 마주치면 내가 먼저 알아보고 달려가 인사한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아주머니가 먼저 알아보고 인사하여 준다.

길 건너 책방에도 나는 자주 가는데 그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퍼즐들이 많다. 작은 조각부터 큰 조각까지 여러 모양의 퍼즐이 많다. 책방도 아주머니가 사장님인데, 외출했다가 아주머니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나는 인사를 하고 아주머니가 손에 들고 있는 검은 봉지 속이 궁금해서 “이것 뭐예요?” 물었다. 아주머니는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그냥 지나쳤다.

그날 선생님과 나는 책방에 가게 되었는데, 그때야 아주머니가 나를 알아보며 “어머나, 미안해라, 조금 전에 나한테 인사했는데 몰라봤네요. 검은 봉지 안이 궁금했어요! 뻥튀기예요” 아주머니가 미안하다며 나랑 선생님에게 뻥튀기 나누어 주었다. 선생님이 내 기억력이 너무 좋아서 그 덕분에 고소한 뻥튀기를 먹었다며 좋아했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부터 책방아주머니를 나를 기억하고 길을 오가다 마주치면 서로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또 내가 가장 자주 가는 곳은 미용실이다. 그렇다고 자주 머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원장님과 친해서 머리를 할 때 말고도 자주 놀러 간다. 원장님은 내 머리를 예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서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맛있는 간식을 나누어 먹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심심할 때 들리는 곳이기도 하다. 수제비를 미용실 언니가 시켜서 같이 먹었다~ 다음에는 내가 붕어빵을 사줄 생각이다.

나는 시설에서 살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시설 장애인 중에 혼자서 교회를 갈 수 있는 사람은 버스를 타고 가든지 걸어서 자신이 다니고 싶은 교회를 간다. 그리고 선생님 없이 혼자서 가기가 힘든 사람은 차를 운행해주는 교회로 간다. 나도 차가 오는 교회를 다녔다. 차가 오는 교회는 시설 장애인들이 많이 다녔다.

아파트로 이사 와서도 나는 이 교회를 그대로 다녔다. 시설 장애인이 많이 이 교회를 다니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많이 쳐다본다. 왠지 불쌍하게 보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교회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선생님과 나누게 되었는데, 선생님이 미용실 원장님이 교회를 다니고 있다며 미용실 원장님이 다니시는 교회를 가는 것은 어떠냐고 했다.

먼저 선생님이 미용실 원장님을 만나서 원장님이 다니는 교회를 나도 함께 가는 것은 어떤지 물었다. 그런데 원장님이 3개월 전부터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원장님 남편 집안에 무속인이 계시는데 원장님이 교회를 다니니 남편이 사업이 잘되지 않는다며 남편분의 간곡한 부탁으로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실망하니 원장님이 하느님을 믿도록 도와준 교회할머니를 소개하여 주겠다고 했다. 나는 원장님 덕분에 교회할머니를 알게 되었고 교회할머니와 새로운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교회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도 나는 궁금한 것이 많아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그러다 보니 교회사람들과 금방 친하게 되었다. 교회사람들은 나를 불쌍히 보지도 않고 오롯이 나 자체로만 알아봐 준다. 귀여워해주지 않아서 좋다. 나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나는 주말이 기다려진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정문과 후문에 경비 아저씨가 근무를 하는데 나는 우리 동과 가까운 후문 경비 아저씨와 친하다. 경비 아저씨와 마주치면 나는 “차렷 경례”하며 인사한다. 경비 아저씨와 나만의 인사방법이다. 경비아저씨 옷은 꼭 경찰아저씨 옷과 같아 보여서 경비 아저씨도 경찰 아저씨 같이 생각되기 때문이다. 경비 아저씨도 경례를 하며 내 인사를 받아준다.

내가 외출했다 돌아올 때면 아저씨가 어디 다녀오냐며 묻는다. 나는 이렇게 묻는 아저씨가 좋다. 그래서 나도 아저씨가 보이지 않은 다음 날 꼭 아저씨에게 물어본다. “어디 갔었는데요?” 아저씨가 쉬는 날이였다고 대답해주신다.

나는 경비 아저씨 덕분에 택배도 잘 찾게 되었다. 어느 날 아파트 전화(인터폰)로 전화가 와서 내가 받았는데 아저씨가 택배가 왔다며 찾으러 오라고 했다. 그때 선생님이 없어서 내가 혼자 택배를 찾으러 갔다. 아저씨가 택배를 찾아갈 때는 공책에 찾는 사람 이름을 적고 찾아가야 한다고 했다. 아저씨가 가르쳐준 대로 이름을 적고 택배를 찾아왔다.

그날 나 혼자서 택배를 찾아와서 선생님이 엄청나게 고마워했다.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 더 생긴 것이다. 경비 아저씨 덕분에 내가 자랑스러워졌다.

오늘도 경비 아저씨는 손에 종이를 들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붙이고 있다. 또 궁금해져서 아저씨에게 달려가 물었다. “이거 뭐예요?” 나는 아저씨가 설명하는 말은 잘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아저씨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좋다.

나는 주말마다 동네 목욕탕에 가는데, 아파트로 이사 오고 아파트 가까운 목욕탕에 가게 되었다. 여기 목욕탕은 내가 전에 다니던 목욕탕과 옷장 열쇠가 달랐다. 전에 다니던 목욕탕 옷장은 열쇠가 꽂혀 있어서 옷을 그곳에 보관하고 열쇠로 잠그면 되었는데 여기 목욕탕 옷장은 열쇠를 받아가서 열쇠에 적힌 번호를 찾아야 했다. 나는 글자도 조금 알고 숫자도 조금 알기는 한데 여기 목욕탕 옷장은 열쇠에 적인 번호와 같은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목욕탕 갈 때마다 선생님이랑 같이 가서 선생님이 옷장을 찾아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욕탕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선생님은 오지 않아도 된다고 내가 목욕탕 갈 때마다 아주머니가 옷장 찾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 이후로 나는 혼자서 목욕탕에 간다. 목욕탕에 가면 아주머니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가끔 얼음 넣은 커피도 만들어준다. 처음 혼자서 목욕탕 가는 것이 걱정이 되었지만 이제는 아주머니 소식이 궁금해서 목욕탕 가는 것이 즐겁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만 받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쉬고 노는 경로당이 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아파트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 경로당 청소를 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청소 봉사를 하는데 할머니들이 우리가 청소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면 덕분에 경로당이 깨끗하다며 고맙다고 한다. 도움을 늘 받는 것이 우리는 익숙하다.

경로당 청소 봉사를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아주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장애인은 더욱 그렇단다. 나는 도움 받는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설이 아닌 아파트에서 살아가려면 더욱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파트 경로당 할머니가 그랬다. “우리같은 할매들도 느그처럼 젊은 사람들한테 도움 받는다 아니가. 느그도 당당하이 살아라이~”

우리를 이상하게 불쌍하게 바라보는 사람도 많다. 아이처럼 좋아해주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나는 어른이다. 그래서 어른처럼 살거다~

나는 내가 기억력이 좋은 사람인지 몰랐다.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진화샘이 말해줘서 알았다. 사람을 많이 아니까 좋은게 많다. 수제비도 먹고, 경례 인사도 하고, 목욕탕에서 장롱도 찾아주고, 교회도 같이다니고, 경로당 할머니들도 너무 좋다!

나는 많이 도움을 받지만 도와주는 것도 생겼다! 그래서 선생님이(사회복지사)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도움받으면 감사하면 되고 나도 뭘 해주면 되는거라고 했다. 그래서 서로 즐겁게 인사할 수 있는 사이가 되면 되는거라고~! 멋진 말인거 같다. 나도 저렇게 멋진 말을 해서 미용실 언니랑 얘기 나누고 싶다.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알아봐 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나는 새롭게 나 자신을 알게 되었고, 나를 사랑하게 되었고, 내 삶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김성옥이니까 나는 성옥이를 많이 많이 사랑해줄거다! 그리고 멋지게 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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