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자기 삶’을 살고, 이용 장애인 개개인의 삶이 묻어나는 사람살이를 나누고자 ‘2019년 장애인거주시설 삶이 있는 이야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이번 공모전은 장애인거주시설 이용 장애인 일상 속의 여가, 취미, 학교, 직장, 자립생활 등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시설 직원이 총 70편의 사연을 공모했으며, 그중 11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수상작을 연재한다. 일곱 번째는 특별상 “이야기 있는 밥상”이다.

편한세상 직원 백송이

이야기 있는 밥상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시설 영양사로 근무하면서 가장 어려운 건 이용인 모두가 만족하는 식단을 짜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이용자들 한 분 한 분 돌아가며 질문을 드립니다.

“덕중님! 이번 달에는 어떤 맛있는 걸 드시고 싶으세요?”

덕중님은 부끄럽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합니다.

“고기!! 고기!! 고기 먹고 싶다”라고 말하며 항상 고기반찬을 많이 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덕중님 고기반찬 말고 다른 먹고 싶은 건 없으세요?”라고 물음에 또다시 고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경옥님!! 경옥님은요?”라고 물었습니다.

때마침 휠체어를 끌고 방에서 나오시던 경옥님이 지나가시는 길이었습니다.

“에이 선생님도 참! 저는 다 좋아요. 그런데요 선생님 아직 쑥 안 올라왔죠?”

여쭤볼 때 마다 항상 다 좋다고만 말씀해 주시는 경옥님이 갑자기 쑥이 올라왔는지 물어보십니다.

“쑥이요? 이제 조금씩 올라오고 있던데요? 경옥님 쑥국 드시고 싶으시구나?”

“예전에 올케언니랑 쑥 캐다가 쑥국 끓여 먹던 게 생각이 나서요. 날이 따뜻해지는 봄이 되면 항상 그게 생각나요”

“알겠어요. 경옥님! 제가 메뉴에 꼭 쑥국 넣어 드릴게요!”

기호도 조사를 끝내고 식단표를 작성 하던 내내 경옥님의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항상 본인이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하기보다는 그저 괜찮다거나 지금도 만족한다며 본인의 의견을 한 번도 내비치지 않으시던 경옥님이 갑자기 쑥국이라니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추억을 회상하는 모습이 분명해 보이셨습니다.

경옥님! 저 집에 초대해주세요!

“경옥님! 우리 경옥님 집에 가서 쑥국이랑 맛있는 거 해먹고 놀다 올까요?”

“네 선생님? 선생님이 저희 집을요?”

화들짝 놀라시며 어리둥절 하는 경옥님 표정이 매우 호기심과 설레는 모습이 가득하였습니다.

“네 경옥님~! 경옥님 집에 가서 쑥국도 끓여먹고 맛있는 것도 해먹고 오면 어때요? 경옥님이 마을 구경도 시켜 주시구요.”

“정말요, 선생님이 같이 가주실 수 있어요?”

“그럼요”

노래 부르는 곳이라면 빠지지 않는 편한세상의 가수 김경옥님은 2011년 4월에 오빠 내외분과 손잡고 이곳으로 입소하셨습니다. 태어난 지 2살이 되던 해 고열로 인해 뇌수막염이 발병하여 뇌성마비의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양쪽 다리를 절게 되었고 하체 근력이 거의 없어 현재는 워커와 휠체어를 이용하며 생활하고 계십니다.

어릴 적 부모님께서는 바깥일로 인해 경옥님을 보살펴주는 시간이 부족하였습니다. 부모님을 대신해 큰 오빠의 부인인 올케언니가 경옥님에게는 엄마이자, 언니이자, 친구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경옥님이 올케언니와 봄이 되면 들녘으로 나가 꽃구경을 하고 쑥을 캐서 맛있는 음식을 해 먹었던 게 생각이 나셨나봅니다.

“좋아요 선생님! 저희 집에 놀러가요!”

경옥님은 집으로 가기로 한 뒤 매일 산책로를 거닐며 쑥이 얼마나 자랐는지 수시로 확인 하시고 손가락으로 매일 손꼽아 기다리셨습니다.

“경옥님! 이제 쑥이 제법 많이 올라왔는데요? 이제 쑥 캐서 쑥국을 맛있게 끓여 먹어도 될 것 같아요!”

“언니 쑥은 내가 캐줄게!”

경옥님과 같은 방을 생활하는 미자님이 쑥은 본인이 캐주겠다며 발 벗고 나서주셨습니다.

“나도! 나도!” 이번엔 옆방 인옥님이 본인도 쑥을 캐겠다며 앞장섰습니다.

미자님과 인옥님은 다리가 불편한 경옥님을 대신하여 옆에서 많이 도와주시는 두 분입니다.

“미자야 인옥아. 우리 집 같이 놀러 갈래?”

“언니 우리도 가도돼? 나도 언니가 살던 집에 가보고 싶어!”라고 정담이 오가며 행복방 가득 이야기꽃을 피우셨습니다.

뚝딱뚝딱 내가 만든 냄비받침대

뚝딱뚝딱 뭔가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오늘은 우드공예수업이 있는 날인가봅니다. 강사님의 설명과 함께 미리 잘라온 나무를 서로 짝을 지어 못질도 해보고 매끄럽게 사포로 잘 다듬어 봅니다.

“경옥님 지금 뭐를 만들고 계세요?”

“선생님 이거 냄비받침대예요. 제가 만들었어요! 이번에 집에 갈 때 올케언니 선물로 줄려고요. 어때요 선생님? 올케언니가 좋아하겠죠?”

“좋은 생각이네요 경옥님! 올케언니가 엄청 좋아하시겠어요!”

“이렇게 제가 만든 냄비받침대를 밥 먹을 때마다 놓고 먹으면 언니랑 오빠가 제 생각을 자주 하겠죠?”

“그러네요. 경옥님~ 냄비받침대 쓸 때마다 우리 경옥님 생각 많이 날 거 같아요.”

한참을 본인이 만든 냄비받침대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미소 짓는 경옥님이 12살 소녀처럼 해맑게 웃고 있었습니다.

오빠가 요즘 몸이 많이 아프대요

“경옥님 오늘 식사를 왜 이렇게 잘 못 드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선생님 어제 오빠랑 통화했는데 요즘 온 몸이 안 아픈 곳이 없대요. 많이 아픈 건 아닌지 걱정되네요.”

“그래서 경옥님 표정이 안 좋았군요. 걱정 많으시겠어요.”

“선생님 이번에 집에 갈 때 홍삼세트 좀 사갈까요?”

“오빠에게 선물 드리고 싶으세요?”“네 저도 홍삼 먹고 있는데 홍삼 먹고 나서 몸이 훨씬 더 좋아진 거 같아요.그래서 오빠한테 홍삼 선물 주고 싶어요.”

“그래요 경옥님 식사 다 하시고 나가서 홍삼 같이 사와요. 오빠가 많이 좋아하시겠는데요?”

그렇게 경옥님과 담당선생님의 지원을 받아 오빠의 선물을 함께 사러 나갔습니다.본인이 드시는 홍삼세트와 똑같은 제품을 가리키시며 단숨에 포장해 달라는 경옥님. 하루 빨리 오빠에게로 가 홍삼을 전달해 주고 싶은 경옥님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올케언니 선물도 하나 사고 싶은데 뭐가 좋을 까요 선생님?”

“글쎄요. 올케언니가 평소에 뭘 좋아하셨어요?”

“올케언니는 과일을 참 좋아했어요. 어릴 적 과수원가서 사과도 따서 먹고 수박도 먹었었는데.”“그럼 함께 과일가게로 가 봐요.”

한라봉, 천혜향, 귤, 사과, 배가 진열되어있는 가판대를 보며 한참을 고민하시는 경옥님이 드디어 말을 건넸습니다.

“사장님 요즘은 어떤 과일이 가장 잘 나가요?”

“천혜향이 요즘 달고 맛있어요. 천혜향 추천할게요.”

사장님의 추천으로 천혜향 한 박스를 사고 저희는 다시 귀원하였습니다.

바람이 제법 불고 추운 3월 어느 날 경옥님과 약속한 날이 드디어 다가왔습니다. 설레이는 마음에 경옥님은 날씨는 큰 걱정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미자야 인옥아 옷 따뜻하게 입어 밖에 바람이 많이 분다.”오히려 미자님과 인옥님을 더 챙겨주시며 든든한 언니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자 이제 경옥님의 집으로 출발해 볼까요?”

고향의 봄

경옥님의 고향은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마을에 하나 있는 정미소가 경옥님의 고향집입니다. 한 시간을 달려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경옥님은 마치 가이드가 된 듯이 마을 곳곳을 다니며 미자님과 인옥님에게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초등학교 나와요. 제가 졸업한 초등학교예요.”

집에 도착하기 전 경옥님이 졸업하셨다는 초등학교에 내려 학교를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지금은 학교가 많이 바뀐 모습이었지만 운동장을 둘러보며 경옥님의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다리가 불편하여 운동장을 마음껏 뛰어 놀지 못하고 고무줄놀이 한 번 못하고 친구들이 놀던 것을 지켜보았다고 하였으며, 특히 그 중에 가장 슬펐던 것은 소풍을 한 번도 가지 못했다고 말씀하시며 눈시울 적셨습니다.

“언니 내가 있잖아. 인옥이랑 내가 언니 도와주면 돼”

같은 방 미자님이 경옥님의 발이 되어 주겠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경옥님 그때는 소풍을 못 갔지만 이제는 저희가 경옥님의 발이 되어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가면 되요!”

“이제는 어디든 함께하면 어디든 못가겠어요.”라고 말하며 초등학교를 뒤로 한 채 다시 집으로 출발한 우리는 마중 나와 계시던 오빠와 올케언니와 드디어 만나게 되었습니다.

출발할 때부터 손에서 꼭 쥐고 있던 냄비 받침대를 올케언니에게 건네며 “내가 직접 언니주려고 만들었어요. 언니 냄비받침대 쓸 때마다 내 생각 해줘야해”

“정말 스스로 만들었단 말이야! 그래 경옥아~ 밥 먹을 때마다 이거 보면서 우리 경옥이 생각해야겠네.”

선물로 사온 홍삼세트를 보며 오빠는 이런 걸 다 사왔다며 아프단 걸 괜히 말했다며 동생에 대한 애정을 미안함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오빠 홍삼 꼭 챙겨 먹어. 홍삼 먹으면 하나도 안 아플 거야.”

“그래 경옥아 이거 먹고 건강해 질께 걱정하지 마.”

추억이 있는 밥상

준비해간 재료로 우리는 쑥국과 쑥 부침개를 해먹기로 하였습니다. 요리솜씨가 좋은 올케언니의 진두지휘 아래 쑥을 다듬는 일은 경옥님이. 쑥국은 저와 인옥님이. 쑥 부침개 반죽은 미자님이 맡아서 하기로 하였습니다.

함께 준비하여 먹는 쑥국과 쑥 부침개는 정말 꿀맛이 따로 없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도란도란 앉아 우리는 경옥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함께 듣게 되었습니다.

“제가 시집 왔을 때 우리 경옥이가 8살이었어요. 처음 본 순간부터 경옥이는 저를 언니라고 잘 따랐어요. “언니 언니” 하며 저를 따르는 경옥이가 어찌나 예쁘던지. 경옥이는 저의 막내 동생이나 다름없어요.“

“그랬군요. 경옥님 학창시절에는 어떠셨어요?”

“그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파요. 친구들 뛰어 노는 거 경옥이는 구경만 하니깐 그거 보는 내가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 몰라요. 소풍을 한 번도 못 갔어요. 경옥이를 좋은데 많이 데리고 다녔어야했는데 사는 게 바빠 경옥이랑 어딜 가본 적이 없네요. 미안하다 경옥아”

“에이 언니는 뭐가 미안하다고 그래, 난 괜찮아. 언니가 내 옆에 항상 있어줬잖아요!”

또 다른 추억을 기대하며

한참을 추억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제는 다시 편한세상으로 돌아올 시간이 되었습니다.

“경옥아 당분간 정미소가 바빠서 못 갈 수도 있어. 일 한가해지면 경옥이 보러 편한세상에 꼭 갈게, 잘 지내고 있어 알겠지?”“응 언니 걱정 마, 나 잘 지내고 있을게 언니도 아프지 말고”

“선생님 감사해요. 경옥이가 이렇게 오랜만에 집에 와서 밥을 먹는다는 게 쉽지 않았는데 선생님 덕분에 함께 맛있게 밥도 먹고 옛날이야기도 하고 너무 즐거웠네요.”

“저희가 덕분에 맛있는 밥 먹고 가는걸요.”

“편한세상은 경옥이의 두 번째 고향이나 다름없어요. 선생님들이 저희 경옥이 잘 돌봐주셔서 항상 안심도 되고요. 늘 감사합니다.”

차에 올라탄 경옥님의 손을 놓기 싫어하는 언니의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이었습니다.

“언니 나 또 올게 다음에도 맛있는 거해서 같이 먹자 알겠지?”

씩씩하게 언니를 달래주며 돌아오는 차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다음을 기약합니다. 그리고 경옥님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차안을 가득 울립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 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제 해마다 봄이 돌아오고 쑥이 올라오면 경옥님의 집에 다녀온 오늘이 저의 마음속에 한동안 오래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경옥님과 쑥을 캐러 밭에도 나가보고, 집에 놀러가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던 사진을 함께 보며 편한세상 행복방에 아름다운 이야기꽃이 넘쳐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는 가장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일들이 누구에게는 쉽게 접하기 어렵고 그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한 소박한 꿈들을 접할 기회가 없던 사람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다음에는 미자님과 인옥님에게도 아름다운 한편의 ‘이야기 있는 밥상’을 상상해 봅니다.

“선생님 다음에는 저희 집에 놀러오세요~”

“그래요 인옥님! 다음에는 인옥님이 집에 초대해주세요.”

라고 말할 날을 기대하며 벌써부터 마음은 인옥님 집에 달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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