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자기 삶’을 살고, 이용 장애인 개개인의 삶이 묻어나는 사람살이를 나누고자 ‘2019년 장애인거주시설 삶이 있는 이야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이번 공모전은 장애인거주시설 이용 장애인 일상 속의 여가, 취미, 학교, 직장, 자립생활 등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시설 직원이 총 70편의 사연을 공모했으며, 그중 11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수상작을 연재한다. 두 번째는 우수상 “하루하루가 새로운 그녀의 아파트생활”이다.

성촌의집 직원 김기철

마음의 변화

옥란님은 성촌의집에 1998년부터 지금까지 근 21년을 성촌의집에서 살고 있다. 옥란님은 청소나 세탁기 사용, 요리 같은 가사를 능숙하게 했다.

어느 날 옥란님과 성촌의집에서 함께 거주하며, 친하게 지내던 여자 이용자 1명이 독립(자립)을 하였다. 멋쟁이 남자친구를 만나 결혼해서 독립을 하였는데 옥란님이 그런 동생을 보며, 마음의 변화가 있었나보다. 문득 궁금한게 생겼는지 최○○ 사회복지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가서 살면 뭐가 좋아요?”

“옥란님은 독립하면 어떤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최○○ 사회복지사가 되려 옥란님에게 물어보니, 옥란님이 적잖게 당황스러워했다. 자신이 질문하면 직원들은 답을 주었는데 나가서 살면 어떤 것이 좋을지 역으로 질문하니 말이다.

“잘모르겠어요. 그런데 나가서 살아보고 싶어요. 궁금해요.”

최○○ 사회복지사는 그 말을 듣고 옥란님 못지않게 당황했다. 옥란님은 지금까지 성촌의집을 ‘우리집’이라고 말하며 독립이나 자립과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본인과는 상관없는 흥미 거리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혼자서 살기는 무서워요. 친한 사람들하고 같이 나가서 살면 안돼요?”

“그러면 단기체험홈에 나가서 살아보는 것은 어때요? 때마침 3월17일까지 신청자 모집중이에요.”

“나가서 살면 다시 집에 못 와요?”

“아니요. 6개월까지 단기체험홈에서 살 수 있고 잘 맞으면 연장계약하고 그게 아니라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실 수 있어요. 최대 3명까지 살 수 있으니 신청해보시고 다른 분들이 신청하는 것도 기다려보시는 것이 어때요?”

“네. 그럼 신청하고 기다려볼게요. 꼭 여기 같이 사는 동생들하고 같이 지냈으면 좋겠어요. 혼자서는 싫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 2019년 3월 21일은 옥란님의 바람대로 단기체험홈으로 이사를 했다. 옥란님은 전날 저녁부터 이사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일찍이 짐 정리에 나섰다. 수납박스 2개가 한가득 찼다.

“내일 가니까 일찍 잘게요.”

옥란님은 평소에는 밤 10시30분즈음 잤는데 1시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옥란님의 이사가 시작되었다. 동료 이용자들과 직원들의 응원을 받았다. 옥란님의 6개월 자립생활에 대한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이삿짐 이동은 김○○ 사회복지사가 도와주기로 했다.

단기체험홈은 성촌의집에서 자동차로 30분동안 이동해야 도착하는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옥란님은 단기체험홈에서의 자립생활을 돕게 될 최○○ 사회복지사와 함께 536번 마을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동암역 버스정류장에서 옥란님은 익숙하게 교통카드를 찍고 버스를 탔다. 버스가 길병원을 지났을 즈음 옥란님이 최○○ 사회복지사에게 물었다.

“언제 내려요? 어려워요.”

“이제 절반정도 왔어요. 옥란님 앞으로 15분 정도 더 가야해요.”

“네. 알겠어요.”

그렇게 15분을 더 가서 남동중학교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옥란님은 익숙하지 않은 버스노선이었는지 연신 남동중학교라는 이름을 입으로 되내였다. 담방마을아파트 안에 있는 단기체험홈에 도착하여 미리 도착한 이삿짐 정리를 시작했다.

“이건 내가 정리할게요.”

옥란님은 자신의 짐이 담긴 수납박스를 열고 하나씩 조심스럽게 비어있는 옷장에 채워 나갔다. 2시간에 걸친 단기체험홈 이용안내와 비상연락방법에 대한 안내가 끝나고 그렇게 옥란님의 자립생활이 시작되었다.

버스정류장

단기체험홈에서 나흘을 보낸 옥란님은 닷새째 아침에 직장으로 출근하기 위해 성촌의집에 왔다. 직장이 성촌의집 뒤편에 있는 굿프랜드라는 직업재활시설이기 때문이었다.

“나 혼자서 버스타고 왔어요. 잘했죠?”

“네. 익숙하지 않으셨을텐데 한번에 찾아오셨네요. 대단하세요.”

“네. 그럼 일하러 갈게요.”

옥란님은 직원의 도움 없이 자신이 혼자서 536번 마을버스를 타고 담방마을아파트에서 성촌의집까지 온 것에 대해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뻐했다. 옥란님은 마을버스를 타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오후 5시 즈음 옥란님은 일을 마치고 단기체험홈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며, 최○○ 사회복지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제까지는 단기체험홈에 함께 살고 있는 동료 이용자들과 같이 버스를 타고 돌아갔는데 오늘은 혼자서 가보겠다고 했다.

“네. 버스정류장 이름 기억나시죠?”

“네. 알아요. 남동중학교.”

“네. 맞아요. 도착하시면 저에게 전화주세요.”

“알겠어요. 갈게요.”

짧게 인사를 마친 옥란님은 성촌의집을 나서서 마을버스를 타기위해 동암역 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출발한지 1시간이 넘어갈 때 즈음 옥란님에게 연락이 왔다.

“옥란님 잘 도착하셨어요?”

“여보세요? 혹시 이분하고 아시는 분이세요?”

옥란님의 목소리가 아닌 낯선 중년의 여성 목소리였다.

“네. 누구신가요?”

“아, 네. 저 여기 동네주민인데요. 이분이 길을 헤매시는 것 같아서요.”

“죄송한데 거기 위치가 어디인가요?”

“여기요? 한국아파트 앞 버스정류장이에요. 저하고 아까 버스 같이 내렸었는데 제가 일보고 나서 왔는데 여기에 계속 앉아 계셔서요.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까 잘못 내리셨대요.”

“혹시 그 근처에 담방마을아파트가 있나요?”

“네 한블럭 건너서 옆 단지가 담방마을아파트에요.”

“아, 그러면 담방마을아파트까지 길을 안내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그렇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최○○ 사회복지사도 옥란님이 걱정이 되어서 차를 타고 서둘러 단기체험홈쪽으로 이동했다. 담방마을아파트에 도착할 무렵 옥란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복지사님. 나 도착했어요.”

최○○ 사회복지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단기체험홈에 도착하여 옥란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동암역에서 536번 마을버스를 잘 탔는데 내릴 때 버스정류장 안내방송이 나왔다고 했다.‘이번 정류장은 한국아파트 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남동중학교 입니다.’라고 안내방송이 나왔는데 남동중학교라는 이름을 듣고 뒷문이 열려서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내리고 보니 앞에 횡단보도도 안보이고 평소랑 다른 풍경이 낯설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하고 있었는데 동네 아주머니가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 후로 옥란님은 남동중학교 풍경이 담긴 작은 종이를 지갑에 넣고 다녔다. 마을버스 안내방송에 남동중학교가 들리면 똑같은 풍경이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버스를 탈 때 버스기사님에게‘남동중학교 정류장에 도착하면 저에게 알려주세요.’라고 쪽지를 보여준다. 옥란님은 이제 536번 마을버스의 남동중학교 버스정류장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엘리베이터

옥란님은 성촌의집에 살 때에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는다. 숫자를 읽는 것이 어려웠고 성촌의집은 3층 이내의 저층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항상 계단을 이용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기체험홈은 담방마을아파트 102동 7층에 위치해있어서 옥란님에게는 항상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은 생소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 때 같은 동에 사는 이웃이 도움을 주었다.

“몇층 가세요?”

1층에서 엘리베이터에 같이 탔는데 옥란님이 몇층으로 갈지 버튼을 누르지 않자 물어본 것이다.

“7층이요.”

옥란님은 숫자 형태를 보고 읽는 것은 어렵지만 말로 ‘7층’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이웃주민은 별거 아닌 작은 도움이었겠지만 옥란님에게는 매우 큰 도움이었다.

이틀 뒤에 옥란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엘리베이터 안에 혼자 있는데 7층을 못가겠다는 것이다. 오늘은 같이 타는 사람들도 없다고 했다. 옥란님은 7층에서 1층으로 내려올 때에는 제일 밑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1층에서 7층으로 올라갈 때에는 7층버튼이 다른 수많은 버튼들 사이에 있어서 너무 어려웠다. 최○○ 사회복지사는 통화중에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라 님에게 얘기했다.

“옥란님 눈사람(8) 그림 있어요?”

“네. 있어요.”

5초도 채 안되어 옥란님은 전화상에서 들리는 눈사람이라는 단어를 듣고 8층 버튼을 찾았다.

“네. 옥란님 그 눈사람 버튼 바로 밑에 있는 버튼을 누르시면 돼요.”

“이거요?”

바로 앞에서 수화기 너머 대화하듯이 물어보는 옥란님의 질문에 최○○ 사회복지사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아니요. 옥란님. 우리 전화하는 중이어서 그렇게 말하셔도 제가 몰라요.”

“네. 그런데 눈사람 그림 있어요. 그 밑에꺼 누르면 돼요?”

“네. 알았어요. 끊을게요.”

3분여 정도가 지나고 다시 전화가 왔다.

“복지사님. 저 들어왔어요.”

“네. 옥란님 이제 혼자서 엘리베이터 타고 7층 갈 때에는 눈사람(8) 밑에 버튼 누르면 돼요.”

“네. 그렇게 하니까 쉬워요.”

그렇게 옥란님은 7층까지 올라가는 방법을 이해하였고, 이제는‘7’이라는 형태가 익숙해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자연스럽게 단기체험홈이 있는 7층 버튼을 누른다.

매점이웃

옥란님은 1주일 중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시간에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담방마을아파트 정문쪽에 있는 버스정류장을 이용한다. 버스정류장 옆에는 작은 매점이 있는데 옥란님이 매점을 운영하는 중년의 여자 사장님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옥란씨 출근해? 잘 갔다와요.”

옥란님의 “안녕하세요.”의 힘은 굉장했다. 매점 사장님과 친해지는 것은 2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매점 사장님이 최○○ 사회복지사에게 옥란님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옥란님은 출근하는 아침이 되면 항상 버스를 타기 전에 매점 사장님에게 인사를 했다고 한다. 매점 사장님도 처음에는 어색하게 인사를 받아주었지만 이제는 옥란님의 이름도 알고 있고 반갑게 인사를 받아준다. 그 이웃관계는 옥란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사회복지사님. 옥란씨 어제 여기 공원 앞에서 길 잃었던거 알아?”

“네? 그런 일이 있었어요?”

최○○ 사회복지사는 몰랐던 얘기를 매점 사장님이 해주었다.

어제 저녁 7시 20분 즈음에 담방마을아파트 옆에는 골마루 근린공원이라는 큰 공원이 있는데 옥란님이 화장실이 급하여 담방마을아파트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공원 화장실을 찾아서 이용했는데 이후에 너무 어두워져서 공원에서 길을 못 찾았다는 것이었다.

“옥란씨 거기서 뭐해요?”

그때 공원에서 헤메는 옥란님을 매점 사장님이 재활용 분리수거를 하려고 공원에 갔다가 만났다고 한다. 옥란님은 매점 사장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공원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어두워서 집 못찾겠어요.”

“집? 담방마을아파트?”

“네. 집 앞에 가고 싶어요. 담방마을아파트 정문이요.”

“알겠어요. 나하고 같이 가요.”

매점 사장님은 흔쾌히 부탁을 받고 옥란님을 담방마을아파트 정문까지 동행해서 길을 안내해주었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최○○ 사회복지사가 고개를 숙여 감사를 드리자 매점 사장님이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이웃끼리 서로 돕고 사는 거죠. 나도 옥란씨 아침인사 받으면 반가워서 기분이 좋아요. 어두울 때 옥란씨가 잘 안보이는지 길을 못찾더라고. 옥란씨도 그럴 땐 나한테 도와달라고 해요. 내가 도와줄게.”

“네. 알았어요.”

옥란님도 웃으면서 매점 사장님에게 인사를 했다. 옥란님에게 가깝고 친한 첫 이웃이 생겼다.

옥란님이 단기체험홈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한지 어느덧 30일이 넘었다. 옥란님이 근 21년간 지냈던 성촌의집이 아닌 담방마을아파트라는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기까지 옥란님 스스로 변화를 원하는 용기있는 마음이 있었고, 이를 응원하는 동료 이용자들과 직원들, 그리고 담방마을아파트와 그 주변에 함께 살고 있는 이웃주민들이 있었다.

옥란님으로부터 들리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생생한 삶의 이야기들은 필자로 하여금 행복한 기분이 들게 했다. 앞으로 계속 이어지게 될 옥란님의 자립생활을 응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