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개발원은 매년 장애인 일자리 확대 및 장애인식개선을 위해 ‘장애인일자리사업 우수참여자 체험수기’를 공모하고 있다.

2018년 공모에는 17개 시·도에서 133건의 수기가 접수됐고 심사결과 최우수상 4편, 우수상 9편 등 13편이 선정됐다. 수상작을 연재한다. 첫 번째는 일반형일자리 부문 최우수상 수상작 박경한 참여자의 ‘잃어버린 나를 찾아 후반전을 살기 시작하다’이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 후반전을 살기 시작하다

박경한(서울특별시 광진구)

군대를 현역으로 병장 만기 전역할 정도로 신체 건강하고 밝았던 저는 심한 두통에 일주일 정도 시달리던 중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었고 ‘후천성 뇌혈관 기형’이라는 병명으로 기형혈관 제거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몇 개월의 병원 생활 후 돌아온 집은 너무나 평온했고 그 때 느낀 마음의 안식은 말로는 도저히 표현하기 힘이 드네요. 하지만 그 평온함은 순간이었고 전 서서히 어둠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제 팔다리가 틀림없음에도 제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음에 눈물이 끊이지 않으면서 ‘왜 하필 나에게…….’라는 생각에 짜증이 나기도 하고, 재활 치료를 위해 병원 가는 날 외에는 밖의 세상, 아니 방에서조차 나가기가 싫고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재활 치료를 받아보자’고 생각하며 지내다 보니 예전의 제 몸처럼 되기에는 어림없었지만 나름 좋아져 혼자 집 앞 정도는 다닐 수 있게 되면서 더 좋아질 거란 확신이 생기더군요.

그렇게 재활치료를 받던 와중에 장애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뇌병변 2급 판정을 받았고 예상은 하셨겠지만 하나뿐인 자식이 중증장애인이 된 현실에 어머니는 눈물을 참지 못하시더군요.

전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이 현실이 또다시 원망스러웠지만 되돌릴 수 없다는 것 또한 알았지요. 그렇게 절망과 원망 속에서 웃음을 잃어 가며 살아가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감기에 걸리셨는데 약국의 약으로 낫는 듯 보이시다가 오히려 기침이 많이 심해지셔서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시고 동네 내과를 가셨다가 그 아침 식사가 아버지 생전에 함께 한 마지막 식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일들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나 일어난다고 생각했었는데, 저희 가정에 2년도 되지 않은 시간 동안에 한꺼번에 닥친 불행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여서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중증장애인의 몸으로 혼자 남으신 어머니를 어떤 방식으로도 챙겨드릴 수 없다는 막막함 속에서 더 깊은 어둠속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재활 치료도 포기하고 아예 집 밖을 나가지 않게 되었으며, 극단적인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기 직전까지 가게 되면서 처음으로 아무 죄 없는 하늘까지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간을 보내다가 그래도 이왕 살아가야 된다는 생각과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에 일자리를 구해봤지만, 제 장애를 가지고는 공대 전공과 관련된 일은 아예 할 수가 없었고, 간혹 그럴듯한 일자리가 나와도 혼자 다니기에 거리상 제약이 따르거나 다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어머니께서 아르바이트 하시며 벌어 오시는 돈에 의지해 살아가는 제가 한심해지면서, ‘이 몸으로 뭘 하겠어?’라며 또 어리석게 포기하고 괴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즈음 보건복지부에서 미취업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확대시키고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공공형 일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2년여 만에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어머니께 도움을 드릴 수 있다는 들뜬 마음에 서둘러 신청을 하고 며칠 후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면접 보러 온 분들 중에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오신 1급 장애인분도 몇 분 계셨는데 그 분들의 밝은 모습을 뵈며 절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면접 후 합격되길 초조하게 기다리던 중 광진구청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화가 왔고 합격했으니 일단 구청으로 오라고 날짜와 시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순간 이 세상을 다 가진듯한 기쁨 에 실로 몇 년 만에 심하게 요동치는 제 심장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전 잃어가던 웃음을 조금이나마 찾으며 약속한 날과 시간에 구청으로 갔고 간단한 본인 확인과 설명 후 각 동에서 나오신 분들께 안내되었습니다.

절 데리러 오신 분은 아버지보다 약간 적은 연세쯤으로 보이는 시골 아저씨처럼 너무나 친근하고 인자한 첫 인상이셨습니다. 동사무소에 도착해 내릴 때는 친절하게도 제 손을 잡아 주셨는데 참으로 감사했고 그 손의 따스함이 마음까지 전해지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저절로 났습니다.

처음이라 당연히 어색했지만 장애인 복지를 담당하는 직원이 절 직원들께 일일이 소개해주셨고 동사무소의 모든 분들의 인상도 좋으시고 친절하신듯하여 한시름 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담당 직원이 제가 부를 직원들 호칭까지 설명해준 뒤 본인은 편하게 이름 부르고 본인은 절 형이라 부르겠다는 한마디에 제 마음의 부담은 사라지며 편안해졌답니다.

또한 며칠 후부터 제가 할 일들을 수첩에 적어가며 가르쳐 주셨는데 세 번째 직장인 이 곳에서 그 전 직장에서는 뵌 적 없는 이렇게 자상하고 친절하게 업무를 가르쳐주시는 분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절 데리러 오셨던 분은 사회복지과 팀장님이셨고 그 후로 얼마간 함께 사회복지과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제게 항상 따뜻하게 대해 주셨고 바쁜 와중에도 진심이 저절로 느껴질 정도의 앞으로의 제 진로에 대한 말씀들을 해 주셨는데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동사무소의 일이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저와 비슷한 처지의 분들도 많이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 노력은 하지 않으시고 무조건 본인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길 바라며 소리 지르시는 분들이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르신들께서 방문하셔서 기초연금을 신청하셨지만 소득초과로 선정되지 못하시면 간혹 ‘대통령이 준다는데 왜 너희가 주지 않느냐?’며 떼쓰시는 분들을 보면 헛웃음이 나왔고 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국민연금은 내가 벌어 낸 돈 받는 건데 왜 소득으로 잡아서 기초연금을 줄이거나 탈락시키느냐?’는 분들로 곤욕을 치르는 담당자도 보았습니다.

또한 술 드시고 오셔서 본인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니 나가셨다가 술을 더 드시고 오셔서는 ‘동사무소에 불 지르겠다.’고 협박하시던 분, 여직원에게 ‘아가씨 돈 달라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던 분, ‘당신 월급 내가 낸 세금이야.’라며 일을 못하게 방해하며 어깃장을 놓는 분 등으로 저를 포함한 여러 직원들을 힘들게도 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밸런타인데이라며 초콜릿 한 개를 건네주시는 휠체어 타고 오신 장애인분, 고맙다며 사탕 몇 개를 주머니에서 꺼내주신 할머니, 당연히 할 일을 했는데도 민망할 정도로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말씀해주시는 분, 일주일에 한번 복지관에서 방과 후 문제집 푸는 아이들을 두 시간 정도 도와주는 자원봉사를 하며 만났던 초등학생이 주민센터에 들렀다가 저를 먼저 알아보고 웃으며 아는 척하더니, 감면자용 서류 봉투를 받아가면서 쑥스러운 듯 감사하다며 말꼬리를 흐렸던 모습 등을 보며 느꼈습니다.

또한 저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기초생활 수급자분들과 저보다 육체적으로 불편한 중증 장애인분들이 많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그럼에도 밝게 본인들 상황에서 열심히 살아가시는 분들도 뵈면서, 장애인이 된 후 매번 피해자인 것처럼 살아온 절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었고, 미약하나마 그 분들을 위한 일을 할 수 있음에 보람도 느끼고 어머니께 경제적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음에 웃음을 거의 다 찾았습니다.

무엇보다 장애인 일자리지원 사업을 통해 얻은 이 일자리가 너무나 소중하기에 매 순간마다 혹여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민원인을 대할 때는 절 낮추기 위해 “우물물에 침 뱉고 간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그 물을 다시 마신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상대방을 함부로 대했던 사람이 훗날 바로 그 상대방 앞에서 똑같은 모욕을 겪게 된다고 믿으면서 동시에 인간관계에서 영원한 갑과 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누군가를 아래로 내려다 본적은 없었는지 성찰해보며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을 다짐하곤 합니다.

올해 다시 일할 마음을 먹게 큰 응원으로 용기를 주신 분, 제 능력이면 될 수 있다며 공무원 시험에 도전해보라고 진심을 담아 말씀해주셨던 분, 한 팀임을 강조하며 소외되지 않게 소속감을 심어주셨던 분, 제 웃음소리가 기분을 좋게 만든다고 하셔서 한 번 더 절 웃게 만들어주셨던 분, 언제나 재치 있는 입담으로 큰 웃음을 주셨던 분, 친형처럼 친근하게 챙겨주셨던 분, 제 편의를 봐주셨던 장애인 담당 직원 분, 가장 사소한 일을 하는 제게도 이렇게 하면 민원인들에게 도움이 되고 민원 발생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진심어린 조언을 해 주셨던 중곡1동 동장님과 출퇴근 때마다 반갑게 인사 해주시는 중곡1동 모든 직원들께서 잃었던 저 자신을 찾는데 또 다른 큰 힘을 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의 격려와 진심 덕분에 예전에 버금갈 정도로 밝아진 저를 보시며 어머니의 웃음도 차츰 늘어갔습니다. 여전히 신체적으로는 장애가 남아 있기에 불편하고 가끔씩 사소한 부상에도 시달리지만, 마음만은 장애인이 되기 전의 저를 거의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비장애인으로 산 30여년의 인생 전반전은 골을 넣었든 넣지 못했든 지나갔으니 미련 없이 잊고, 제 주위의 많은 분들께서 장애인으로도 차별 없고 열심히만 살면 충분히 비장애인분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후반전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주셨기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좌절과 더 이상 사회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온 좌절과 포기로 스스로 저를 괴롭히며 심적, 경제적으로 어머니를 힘드시게 만들었던 어둠 속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신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일자리 정책에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여건이 되어 중소기업도 참여하면 좋겠지만 특히 대기업에서 ‘장애인 채용하고 보조금 받기보다 비장애인 채용하고 보조금 포기하는 것이 이득이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장애인이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편견보다는 장애인이라 더 잘 할 수도 있다는 기대와 혹여 기대에 미치지 못해 이윤이 조금 덜하더라도 장애인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자리를 확대해주셔서 비장애인과 장애인, 갑과 을 모두가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관심 가져주시길 감히 바라봅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모든 직장 생활에 저마다의 애로 사항이 있겠지만, 공무원분들의 고충도 많은 분들이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밖에서는 몰랐었는데, 제가 사회복지과 업무를 도우며 함께 생활해보니, 정신과 의사가 아님에도 민원인들의 이런저런 고충을 들어주며 해결해주려 애쓰고, 때로 여러 이유로 도움 드릴 수 없게 되면 심한 욕설까지 감수할 수밖에 없는 복지 공무원들의 노고를 많은 분들께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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