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이 최근 보건복지부, 국민일보, 에이블뉴스, MBC나눔의 후원으로 ‘제 4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393편 접수됐다. 이중 이영순씨의 ‘기적’이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8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5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여덟 번째는 가작 수상작인 권오용씨의 ‘무제’이다.

무제

권오용

꾸물거리던 버들잎이 뒤늦게 우수수 떨어졌다. 잎은 나풀거리며 머리에 가슴에 떨어지고 눈물 속에 달라붙었다. 중학교 입학시험 합격자 발표장, 필기고사를 잘 봤다고 생각했지만 그 다음날 친 체력장은 영점을 받았기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달리기, 던지기, 멀리뛰기, 턱걸이 한 종목 오점씩 해서 만점이 이십 점이었다. 뼈에 사무칠 그 놈의 체력장, 눈을 닦고 몇 번씩 확인했지만 후보자 세 명 안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바람이 찼지만 추위를 느낄 새도 없이 집까지 어떻게 온 지도 몰랐다. 조용히 방에 문을 걸고 들어와 대성통곡을 했다. 그러나 내가 왼쪽 다리와 오른쪽 팔이 가늘고 약한 소아마비 장애인이라는 점은 울어도 달라질 것이 없었다. 옷을 벗고 거울에 온 몸을 비추어 보았다. 이런 몸으로 체력장 점수는 애시당초 무리였을까? 도저히 인정할 수 없어 벽에 머리도 박아보고, 입고 있던 내의를 다 찢었다. 문 밖에서 불안스레 서성이던 어머니가 죽을 들고 들어오셔서 떠먹여 주었지만 넘어가질 않았다. 어머니는 나보다 더 많이 우셨다. 당신이 무어 그리 큰 죄를 지셨다고 “에미가....... 에미가” 하며 말끝을 흐리셨다. 늦게 오신 아버지도 안타까워하며 하늘이 무너질 만큼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하겠나? 후기 중학교에라도 가야지.” 하시고는 자고 나면 좀 달라질 거라는 얘기만 남기고 나갔다.

점수 미달인 후기 중학교에 가느니 공장이라도 갈까. 온갖 생각이 눈물 속에서 뒤죽박죽이었다. 친구들은 다들 흰 테두리가 번쩍이는 모자와 멋진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겠지만, 후기 중학교가 따라지 학교인 것은 누구나 아는 일. 공부를 못해서 떨어졌으면 재수라도 할 텐데, 체력장 점수가 엉망이니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을 가든지, 후기 중학교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체육이 없는 학교는 없는가?’ ‘체력장을 안 보는 중학교는 없을까?’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묻지 못하던 말들이 입가를 맴돌았다. 그때까지의 꿈은 의사가 되어 나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었는데 그 꿈이 산산이 부서졌다고 생각했다.

점심도, 저녁도 굶고 울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온통 흰 눈으로 덮인 나라에 내가 있었다. 사방이 전부 눈밭인데 유독 내가 선 곳에 얼음이 금이 가더니 한순간 폭삭 내려앉았다. 얼음 웅덩이가 점점 더 넓어져 갔다. 허우적거리다가 한 다리로 간신히 올라오면 다른 한쪽이 빠졌다. 왼쪽 다리는 얼어서 감각이 이미 없고 오른쪽 다리로 버티어도 미끄러져서 못 올라오고 있었다. ‘이젠 죽었구나.’ 생각하는데 찬 얼음물이 숨통을 점점 조여 왔다. 의식이 희미하던 그때 누군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사람은 나를 보더니 입고 있던 옷을 던져 주었다. 잠깐 만지는 결에도 옷은 잠자리 날개처럼 얇고 부드러웠다. 그 날개옷을 의지해서 간신히 올라오니 나도 모르게 눈물 콧물이 얼굴에 뒤범벅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이상한 꿈이었다. 마당에 나오니 강아지가 뛰어나와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었다. 전 같으면 안아주었을 테지만 마음이 허한 탓에 그날은 강아지도 귀엽지가 않았다. 초겨울 찬바람만 집안을 맴돌고, 나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어머니 방에 엷은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음날 억지로 학교에 갔다. 교실에는 합격한 아이들끼리 나누는 교복에 관한 이야기, 영어 학원을 다니자는 등의 설렘이 묻어나는 이야기로 소란스러웠다.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그때 누군가 담임이 나를 찾는다고 전해주었다. 교무실로 가면서도 나만이 가진 억울함과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교무실에 가니 선생님은 긴장해 언 내 손을 꼭 쥐어 주셨다. “용아, 너는 공부를 못해서 떨어진 것이 아니니 안타깝구나. 후기 중학교에 가서도 공부 열심히 하면 길은 있어.” 그녀는 점심시간에 조용히 교문 밖으로 나오라고 하셨다. 그날 생애 처음 짜장면을 먹었다. 무엇에도 견주지 못 할 정도로 맛있었다. 그러나 위로와 격려의 마음이 느껴져서 좀 부끄럽기도 하고 죄송스런 점심이었다. 지금도 짜장면을 보면 그 때가 생각나서 콧날이 아려온다.

선생님의 격려로 후기 중학교를 갔다. 새 교복과 교모를 썼지만 설렘은 없었다. 놀고 싶은 유혹은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공부 밖에 없겠다, 후에 나도 이 경자 선생님처럼 마음이 따뜻한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후에 장애를 딛고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을 때 이런 내 모습을 선생님께 보여 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찾을 수 없던 중에 경상북도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옛 스승 찾기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대구에서 좀 떨어진 경산에서 소일하고 계셨다. 처음에는 못 알아 보셨지만 중학교에 낙방한 날 짜장면 사주셨던 얘기를 하니 “그래, 알겠구나” 하시면서 웃으며 반겨 주셨다. 위아래를 쭉 훑어보시는 것이 아마 지금의 내 장애의 정도를 가늠하시는 것 같았다. 그 뒤에 몇 차례 전화도 드리고, 교사가 되어 첫 월급을 탄 날에는 내의를 사서 인사도 갔다. 그녀는 가장 값진 선물이라고 기뻐하셨다.

나는 학교에 근무하며 여러 아이들을 보게 되었다. 성적이 뛰어난 아이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아이가 있고 교우 관계가 원만한 아이가 있다면 그렇지 못한 아이가 있었다. 가정이 화목한 아이가 있다면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란 소년 가장 또한 있었다. 가끔 생각한다. 모든 일에 양면이 있음은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가령 내 몸이 불편하지 않았다면 나 또한 살아가며 인생의 한 면만을 고집스레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불편한 일이 분명히 많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이러한 소소한 깨달음을 얻으면서 나는 가장 먼저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면서 성적이 떨어져서 고민하는 아이, 교우관계가 원만치 못한 아이, 부모 갈등과 이혼으로 좌절하는 아이들에게 손과 발이 되어 주려고 노력했다. 스승의 날에는 많은 꽃다발과 각지에서 오는 편지와 전화가 있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때 이 경자 선생님만큼은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 마디 말이 한 사람의 일생을 바꾸어 줄 평생의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선생님은 아셨던 것이다.

선생님은 삼년 전 뇌경색으로 한 달 간 병원 신세를 지다가 하늘나라에 가셨다. 뵙던 날, 병실 밖에는 흰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몸이 장애가 되어도 마음조차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용기를 잃지 마라. 너를 시련으로 몰아넣는 신(神)도 있지만, 구원해 주는 신은 더 많단다.” 그 말씀이 내 마음에도 눈발이 되어 포근히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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