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이 최근 보건복지부, 국민일보, 에이블뉴스, MBC나눔의 후원으로 ‘제4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393편 접수됐다. 이중 이영순씨의 ‘기적’이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8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5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세 번째는 에이블뉴스 대표상 수상작인 윤종환 씨의 ‘엄마의 브로콜리’이다.

엄마의 브로콜리

윤종환

「귀가 들리지 않아도 나는 엄마입니다. 그런데, 다크서클에 좋은 음식이 무엇이 있나요?」

미영 씨가 나를 처음 만난 날 작은 종이에 써준 말이다. 엄마라는 단어,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는 말처럼 가슴을 무겁게 누르는 말은 없다. 분명, ‘엄마’라는 말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녹아있다. 귀가 잘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는 상관이 없다. 엄마라는 말은 그 자체로 포근하며, 그 자체로 먹먹하지만 가장 위대한 말이다.

미영 씨는 그런 ‘엄마’였다. 그녀의 첫 문장은 예기치 못하게 나를 작게 만들었다. 아이를 낳은 지 1년 6개월이 조금 넘은, ‘우리 아이 건강해요’라며 자랑하는 미영 씨는 첫 만남부터 위대하고 강한 엄마였다. 사랑에는 어떤 조건이나 배경도 상관없다는 걸 보여주는 엄마. 그러는 그녀가 왜 ‘다크서클에 좋은 음식’을 찾았을까.

그녀는 청력을 완전히 손실한 청각장애인으로, 흔히 일컫는 ‘농’이다. 보청기를 착용할지라도 그 어떤 신호조차 귀를 통해 뇌로 전달되지 않는 장애를 가졌다. 의사소통 수단으로 수어를 쓰기도 하고 상대방이 말을 할 때 움직이는 입술의 모양을 관찰하는 방법(독화)을 이용하기도 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친절하게 글씨를 적어서 준다.

귀가 안 들리는 것과는 별개로 말을 유창하게 하면 좋겠지만, 미영 씨는 비장애인들의 일상적인 언어를 많이 듣지 못해 언어발달이 꽤 늦어진 편이다. 그래서 유창하게 말을 하지 못한다. 입으로 소리를 내 표현을 하지만 어눌한 말을 하거나 가끔은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할 때도 많다. 그러나 그녀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글자가 아닌 그녀의 심정이 들린다.

나를 처음 만난 날 자신을 소개하는 순간부터 느껴졌다. 짧은 말 한마디에도 정성을 담아 말을 하는 모습. 그리고 어느 샌가 붉어진 미영 씨의 눈시울을 보면 알 수 있다. 슬픔이 밀려오는 그 얼굴을 오래 마주하자니 나도 곧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지만, 그녀는 나의 입 모양을 또렷하게 보아야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기에 온갖 울음과 미묘한 감정 모두 목 너머로 삼켜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그녀가 날 보고 좀 더 편하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표정 연기를 해야 했다. 내 감정을 속이기가 조금은 힘들었어도 미영 씨의 힘든 시간을 끄집어내 조금은 위로하고 싶었다.

「아이가 탄생하는 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어요.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그런데, 저는 지금 힘이 듭니다. 죄책감도 들어요.」 미영 씨가 하소연하듯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말을 하면서도 아기가 곤히 잠자고 있는 방을 자꾸 쳐다보는 그녀. 혹여 아이가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까 걱정이라도 되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을 건넸다.

「아니에요, 미영 씨.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기도 너무 예쁘고, 미영 씨도 너무 예쁘고 아름다우세요.」

조금은 위안이 되었길 바랐지만,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리고 붉어지는 그녀의 눈, 그 밑으로 조금은 짙고 어둡게 칠해진 다크서클이 보였다.

다크서클이 드리운 그녀의 음영은 위에서 비추는 조명 때문에 더 내려앉아 보였고, 그 깊이는 그녀가 말한 ‘죄책감’을 덜지 못해 얼마만큼 파여 있는 듯했다. 육아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더니, 엄마는 역시 힘든 존재라고 생각하며 또 한편으로는 ‘엄마’라는 존재 덕분에 나도 우리도 클 수 있다는 감사함이 떠올랐다.

이 마음으로 다시 그녀를 다독이려고 했다. 그녀가 우울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 순간, 미영 씨는 물꼬 터뜨리듯 말을 했다. 「밤에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요. 밤에 아이가 울어요. 그런데 내가 잠을 자고 있으면 아이는 계속 울어요. 열이 나는지, 똥을 누었는지, 배가 고픈지, 캄캄해서 무서운지 나는 못 들어요. 그래서 나는 잠을 못 자요. 나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듣고 싶어요.」

이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비장애인으로 살아온 나로서, 비장애인 엄마를 둔 나로서는 이 말이 처음인 데다가 예상치도 못한 충격이었다. 보통 듣는 육아의 고통 중 하나는 ‘밤마다 우는 아이 때문에 잠을 설친다.’는 것이었는데, 미영 씨가 잠을 못 자는 이유는 조금 달랐다.

「어느 날 꿈을 꾸면 아이가 울고 있어요. 일어나서 아이한테 가면 아이는 자고 있어요. 그럼 난 다행이라고 느껴요. 돌아와서 누웠는데, 아이가 깨서 다시 우는 것 같다고 생각 들어요. 또 아이한테 가요. 그런데 내가 문지방에 걸려서 아이가 잠에서 깨서 울었어요. 너무 미안하고 정말 울고 싶었어요.」

미영 씨는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고 여겼다. 자신이 잠을 못 자는 건 문제가 아니었고, 아이가 울 때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과 자신의 과잉 때문에 아이가 오히려 깊게 잠을 못 자는 것이 너무 속상하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가 울자마자 달려가 다독여주지 못하는 엄마인 자신이 싫다고 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면 혹여 한숨 소리에 아이가 깰까 봐 한숨조차 쉬지 못하는 엄마였다. 무엇보다 ‘아이의 울음을 듣고 싶다’는 말이 가슴에 내려앉았다. 그녀가 어수선하게 한 말 중에서 ‘가장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말로 토로할 수도, 한숨을 쉬지도 못한 응어리가 그녀의 다크서클로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던 것이다. 눈물이 솟아올랐지만, 나는 펑펑 울 수 없었다.

「다크서클에는 브로콜리가 정말 좋대요.」

내가 그날 미영 씨의 가정방문을 마치고 떠날 때 쯤 쪽지에 답으로 적어준 말이다. 브로콜리가 다크서클에 좋다는 건 사실이든 거짓이든 유명한 식이요법 중 하나다. 가격부담도 덜하고, 먹기도 편한 브로콜리. 사실, 나는 그녀에게 진짜 필요한 보약은 브로콜리 같이 눈 맑아지는 채소가 아닌, 바로 ‘잠’이라는 걸 안다.

그녀의 죄책감을 덜 수 있는 것도, 아이의 잠이든 엄마의 잠이든 아무 꿈도 꾸지 않고 깊게 잠드는 몇 시간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동시에 아마 아이가 어느덧 클 때까지는 앞으로도 미영 씨가 잠을 잘 자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짐작이 돼 가슴이 먹먹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잠을 좀 주무세요.’라는 말이 그녀에겐 위로가 아닌 공포로 다가올 것으로 생각했고, ‘제가 밤에 아이를 봐 드릴까요?’라는 말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왜 그녀의 고통 앞에서, 미영 씨의 슬픔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까. 너무나 괴로웠다. 왜 미영 씨에게 ‘엄마’라는 단어를 이리도 아프게 만들었는지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스스로를 위해 ‘다크서클을 없애는 음식’을 찾는 질문을 했고, 이것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사실에 아주 조금은 숨이 트였다.

그것이 그나마 ‘못난 엄마’라는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작은 통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플라시보효과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마치 그렇게 되는 것 같은. 그래서 작지만 위대한 ‘브로콜리’를 써 드린 것이다.

미영 씨는 브로콜리를 먹으면서 조금은 심리적인 위안을 받을지도 모른다. 이 작은 사실만으로도 내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용기가 조금은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도 브로콜리의 힘으로나마 장애인 엄마로서의 삶을 후회하지 않기를 바랐다.

미영 씨의 국어 공부를 위해 가정 방문을 할 때마다, 미영 씨는 내게 브로콜리 주스 한 잔을 만들어준다. 발음이 완벽하지 않았던 그녀가 ‘브로콜리’만은 브, 로, 콜, 리라며 또박또박 말하는 걸 보면 얼마나 브로콜리를 반복해서 말하고, 얼마나 그것을 사러 다녔는지 조금은 예측할 수 있다.

그럴 때면 가르치는 뿌듯함도 느끼고 그녀가 저 작은 채소를 먹고 힘을 얻은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미영 씨는 아기 울음소리 때문에 잠도 설치고 힘들어한다. 하지만, 그녀에겐 하소연을 풀어 놓을 내가 있고 그녀의 다크서클을 없애 줄 브로콜리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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