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이 최근 보건복지부, 국민일보, 에이블뉴스, MBC나눔의 후원으로 ‘제4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393편 접수됐다. 이중 이영순씨의 ‘기적’이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8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5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두 번째는 국민일보 사장상 수상작인 박화진 씨의 ‘보호색’이다.

보호색

박화진

학교 체육대회가 있던 날, 나는 그 날도 어김없이 엄마에게 붕대를 들이밀었다.

엄마는 그런 내 얼굴을 쓱 한 번 보시고는 ‘네 장애를 감추기 위해 다친 척 연기하는 것은 그만 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리셨지만, 나는 기어코 다치지도 않은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로 학교를 갔다. 또 왜 다쳤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이제는 능숙하게 거짓말을 하는 내 자신이 어이없게 느껴져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사실 뇌병변 편마비 장애인인데, 경증이라 몸이 불편한 티가 잘 안 나. 그래서 너희한테 들킬까봐 무서워서 붕대를 감고 왔어.’ 라고 말할 용기는 조금도 없었으니까.

나는 장애인이면서 내 장애가 부끄러웠다. 또 어떤 수를 써서든 상처받고 싶지 않았고, 또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왜, 카멜레온 같은 동물은 적들에게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색 따위로 위장을 해 모습을 감추지 않는가. 나도 그거랑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체육대회에서 열외가 되어 벤치에 앉아 경기를 구경하는 신세가 되었다. 한 여름 땡볕에 붕대를 감고 있으니 땀이 차 죽겠다 싶을 정도로 더웠지만, ‘쟤는 멀쩡해 보이는데 왜 열외야?’ 라는 등의 수군거림을 듣기는 죽어도 싫었다. 그러다 자유롭게 뛰면서 체육대회를 즐기는 친구들의 모습이 부러워서 괜히 서글펐다.

나도 옛날의 몸이었다면 대학생활을 이런 저런 걱정 없이 신나게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청춘을 꽃피울 나이에 내가, 누구보다 활발했던 내가 지금 남 눈치나 보고 이게 말이 돼? 내가 어쩌다가, 왜 나야? 널린 게 사람인데 왜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 내가!

사람 인생 한 치 앞을 모른다더니. 사고는 정말 한순간이었고,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억울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질수록 비참해져 쓰라렸다. 병원에서는 내가 걸을 수 있는 것만 해도 운이 좋았다고 한다. 운이 좋았다고, 다행이라고? 나는 억울했다.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내가 하고 싶었고, 할 수 있었던 것들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고, 남을 부러워하고 있는 내 모습이 지금도 이렇게나 비참한데. 이렇게 억울해 해도 이미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옛 기억들이 아직까지도 내 발목을 잡아 현실을 외면하고 과거에 살도록 만들었다. 자기 종목을 마친 한 친구가 나에게 다가와서 하는 말이, 너는 계속 앉아서 쉬고 있으니까 좋겠단다. 그래, 라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은 타들어가다 못해 잿더미가 되는 기분이었다.

언제 한 번은 가끔 들리는 센터에서 나 정도면 장애인도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난 내 주변사람들과 같지 않은데요. 병원에서도 나를 장애인이라 하는데 내가 장애인이 아니라니, 그럼 나는 도대체 뭔가요?’ 묻고 싶었는데, 선생님의 입에서 ‘너보다 더 심한 장애를 가지신 분들도 많아. 닉 부이치치도 말이야, 자신의 장애를 이겨내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잖니. 너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라는 식의 말들이 이어졌다.

순간 속이 얹힌 것처럼 울렁거리고 뒤틀리는 듯했다. 결국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웃고만 있다가 도망치듯 센터를 나와 버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선생님의 말들이 머리에 자꾸 맴돌아서 ‘내가 불행한 이유는 다 내 잘못인걸까. 장애인으로 살아 온지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왜 난 아직까지도 내 장애를 받아들일 수 없을까. 나만 마음을 고쳐먹으면...’ 하고 고민하다 또 우울해져 몇날며칠을 거의 죽은 듯이 잠만 잤다.

대학교 새내기는 술자리에, 축제에 필수 참여인 행사가 참 많기도 많았다. 그 때마다 나는 수시로 불편한 쪽의 팔, 다리를 바꿔가며 보호대를 끼거나 붕대를 감았다. 정말 적들에게 들킬까봐 두려움에 떨며 숨죽이는 한 마리의 나약한 카멜레온이 된 것 같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답답한 보호대나 붕대 같은 건 진즉 풀어버리고 싶었지만, 나는 사람들이 자신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표정이나 시선, 태도가 어떻게 바뀌는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의 내가 얼마나 사람을 두려워하며 움츠러들고 몰래 숨죽여 울었는지, 집 옥상과 부엌을 오가며 얼마나 위험한 생각을 했었는지도 말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내 주변의 전부는 아니었다. 선의를 가지고 호의나 친절을 베푸는 이들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조차도 나에겐 독일뿐이었다. 동정을 받으면 받을수록, 누군가 나를 도와주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도움을 받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만 같아 짜증이 솟구쳤다. 너는 더 이상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얌전히 도움이나 받으라고, 이게 네 현실이라고, 그 착한 미소들이 비웃음으로만 느껴져 스스로를 못된 아이라고 자학했다.

결국 괴로움에 못 이겨 부모님에게 자퇴하고 싶다고, 그게 안 된다면 나를 특수반으로 옮겨달라고 울고 불며 애원했던 적이 있었다. 돌아온 대답은 또 학교 가기 싫다는 억지 부리기 시작이냐, 우리도 지쳤다, 네가 너무 예민한 것 같다는 말들뿐이었다. 이제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 혀를 차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똑똑하게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체념하기로 했다. 그 대신 마치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러 종류의 보호대와 붕대를 사 모으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술자리에서 혹시 술 게임이라도 하다가 내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 보일까, 징그러워 보일까 걱정 하는 내 심정을, 걸을 때 혹시 다리 저는 것이 보일까 무서워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항상 마지막에 나서는 내 불안한 심정을 보호대와 붕대가 감춰줄 거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나는 너무 괴로웠고, 외로웠으며 또 지쳐 있었다. 하지만 그 때의 나에겐 아무도 내가 이러는 건 당연한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나를 이해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럴수록 나는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감추고,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어느새 대학생 막바지인 지금, 나는 지금도 내 장애가 억울하고, 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는 못하고 있다. 나 자신을 오롯이 받아들이기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지금까지 자의로든 타의로든 받아온 나의 상처들은 곪은 채로 손쓰기 어려워진지 오래고, 나는 앞으로 사회에 나가 받을 상처들 또한 얼마나 아플지 두렵고 겁이 난다.

그렇지만 이제 보호대나 붕대로 스스로는 숨기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숨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지만, 보호색 사이사이 조금의 틈이라도 보일까봐 남 눈치나 보며 숨어 살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것을 사간이 지나면서 몸소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호색이 나를 완벽히 가려줄 수는 없다는 사실과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계속해서 부딪힐 수밖에 사실 또한.

지금까지 나의 보호색은, 카멜레온과 다르게 타인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닌, 나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나에게 지독하리만치 머물러 있도록.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렸다. 이제 그만 보호색을 벗고 스스로 용기를 내어 과거의 나에게서 벗어나 나아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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