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자기 삶’을 살고, 이용 장애인 개개인의 삶이 묻어나는 사람살이를 나누고자 ‘2019년 장애인거주시설 삶이 있는 이야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이번 공모전은 장애인거주시설 이용 장애인 일상 속의 여가, 취미, 학교, 직장, 자립생활 등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시설 직원이 총 70편의 사연을 공모했으며, 그중 11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수상작을 연재한다. 세 번째는 우수상 “여자친구 부모님께 첫 인사 드리러 가던 날”이다.

옹달샘 직원 윤대성

여자친구 부모님께 첫 인사 드리러 가던 날

단정히 차려입은 검정색 정장,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짝이는 구두, 잘 정돈된 넥타이에 두 손 가득 황금색 보따리를 들고 있는 인원씨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는 이의 손에 땀이 날 정도이다. 반면에 뻣뻣하게 굳어있는 인원씨의 팔을 살며시 감싸 안으며 긴장을 풀어주는 현진씨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굳은 표정의 인원 씨와 싱글벙글 미소 짓는 현진 씨 두 사람의 상반된 모습을 바라보니 그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오늘은 현진씨 부모님께 두 사람이 교제 후 첫 인사를 드리러 가는 날이다. 목적지는 충북 영동으로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옹달샘에서 다소 먼 거리다.

“우리 어때요? 잘 어울려요?”

현진 씨의 기대감 가득한 목소리에 꽉 졸려있는 인원 씨의 와이셔츠 단추를 풀어주던 나는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며 “최고로 잘 어울려요”라고 답하자 마법의 주문이라도 외운 듯 굳어있던 인원씨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한쪽 입 꼬리가 올라가며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내 여자야.”

인원 씨는 자랑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트로트가수 앨범과 시계 등 본인의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는 것은 인원씨의 자신감의 근원이다. 그 중 으뜸은 여자친구 자랑이다. 그 시작을 정확히 알기는 힘들지만 두 사람의 연애는 꽤 오래되었고 사랑 가득한 연애가 진행중이다.

상남자의 컨디션 회복을 확인한 우리는 차에 오른다. 파이팅을 외치며 두 사람을 응원하는 옹달샘 식구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비로소 출발을 했다.

두 사람이 만난 계기는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면서부터였다. 푸드트럭 프로그램이었는데 함께 음식을 만들고 푸드트럭을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판매도 하고 있다. 3년간의 긴 시간동안을 함께해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은 프로그램이 끝나도 함께 있었고 그 시간과 만남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잦아졌다.

“우리 나중에 결혼하면 우리 형 사는 데 윗집에서 함께 살자.”

“우리 푸드트럭 장사해서 돈 많이 벌어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운전기사도 쓰자.”

인원 씨의 쌍둥이 형은 이미 시설에서 퇴소해 지역사회에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다. 종종 여자친구와 함께 형 집에 놀러 다녀올 때면 인원 씨의 바램은 구체적이고 많아진다. 이러한 시간이 벌써 3년 동안 이어져오고 있다. 3년이란 시간은 막연히 서로를 좋아하던 두 사람이 구체적으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에 충분하고 상대방을 연인이 아닌 배우자로서 충분히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윤씨는 애기 키우기 힘들지 않나? 돈 많이 드나? 애 셋이면 힘들지 않나?”

나와 동갑내기인 인원 씨는 종종 내게 이런 질문은 한다. 나의 현실은 조금 빠듯하지만 풋풋한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장단점과 조언을 곁들인다.

“난 결혼하면 애 다섯 낳아야지.”

자랑하듯 내게 말하는 인원 씨는 본래 성격이 지는 것을 싫어하고 다부지다. 현진 씨 또한 비슷한 성격으로 그 강렬함에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렸나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아 나는 휴게소로 차를 이끌었다. 이제 최종 리허설의 막이 오른다.

첫인사, 자기소개, 앞으로의 계획 등 그동안 수없이 연습했던 상황에 따른 말들을 되짚어본다. 상남자 인원 씨는 사실 옹달샘 안에서만 상남자다. 익숙한 환경과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신감있게 말과 행동을 하지만 낯선 공간과 사람에게는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하물며 연인의 부모님이라니 더욱 긴장되는 것은 당연하다.

고민하며 애써서 답하는 인원 씨를 보고 있으니 10여년 전 처갓집에 인사드리러 가던 내 모습이 떠올라 그만 웃음이 터졌다. 의아해하는 인원 씨의 표정을 보며 웃음기를 거두고 자리를 털며 일어난 우리는 다시 차에 오른다.

“자기야. 저기가 우리 집이야.”

1월의 마지막 날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현진씨네 집이 점점 커져가고 덩달아 인원 씨의 긴장감도 커져간다.

“똑똑”

낯선 노크소리에 놀란 듯 문이 열리고 현진 씨 어머님이 나오셔서 반갑게 맞아주신다.

“어서들 와요. 오래 걸렸죠? 추운데 얼른 들어와요.”

추운 날씨 탓에 서둘러 집안으로 이끄는 어머님의 행동에 인사할 타이밍을 놓친 인원 씨는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들어갔다.

집안에는 한창 요리가 준비 중이다. 과일보따리를 들고 쭈뼛쭈뼛 서있는 인원 씨의 손을 이끌며 현진씨는 자기 방을 구경시켜준다. 신나는 마음에 방구경과 집 소개를 해주는 현진 씨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반면 인원 씨는 계속 불편한 기색에 나를 자꾸 바라본다. 우리가 함께 연습했던 상황이 아닌 것이다. 인사하기로 했던 순서도 다르고 예정에도 없던 여자친구의 방 구경이라니 당황할만 하다. ‘괜찮아 괜찮아’ 속으로 응원하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식사 준비가 다 되고 아버님이 안방에서 나오신다. 현진 씨 아버님은 몸이 불편하셔서 거동이 어렵기에 항상 어머님이 도와주신다. 평소 방 밖으로 잘 나오지 않으시지만 애지중지 키운 딸의 남자친구라니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신다. 저녁식사가 차려진 식탁에 모두가 모이자 인원 씨는 나를 바라보며 신호를 기다린다. 무르익은 분위기에 난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보낸다. 자 이제 실전상황이다.

“김인원이요 현진이랑 사귀고 있어요 결혼할 거예요.”

터질듯한 긴장감에 핵심내용만 이야기하는 인원 씨다. 그래도 잘 이야기 했고 잘 전달되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정체모를 긴장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긴장감의 정체를 찾던 나는 곧 이어 머릿속에 번개 치듯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을 발견했다.

인원 씨의 얼굴은 분명 현진 씨 부모님을 향해있는데 눈은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흡사 나에게 이야기 하듯 말하고 있는게 아닌가. 아뿔사! 사전연습을 할 때 내가 인원 씨의 부모님 역할을 했는데 그 때 연습한대로 충실히 하다 보니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상황을 깨달은 나는 인원 씨에게 현진 씨의 부모님을 바라보며 이야기 하도록 필사적으로 신호를 주었고, 신호를 받은 인원 씨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의자를 바로잡고 아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푸드트럭으로 돈 많이 벌어서 현진이랑 둘이서 살 거예요.”

“애도 많이 낳고 행복하게 살 거예요. 감사합니다.”

빠짐없이 준비해온 내용을 이야기한 인원씨는 날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고 자연스레 난 현진 씨 부모님을 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이러한 상황이 마냥 즐거우신 듯 어머님께서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시고 계신다.

“둘이서 잘 살 수 있습니까? 솔직히 걱정이 더 되네요.”

현진 씨 어머님께서는 당연하게도 부모의 입장에서 질문을 하셨다. 나는 그동안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시간들에 대한 부연설명과 앞으로 두 사람을 돕기 위해 어떠한 준비와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등을 설명드리며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 인원 씨를 응원하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해드렸다.

긴장감은 늦추지 않고 이러한 내 모습을 바라보던 인원 씨는 중간중간 본인의 의견을 피력한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던 모습이다. 인원 씨의 간절함과 확고한 의지가 용기로 나타나 멋지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현진 씨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현진 씨 아버님께는 인원 씨가 다시 한 번 설명해 드리고 정식으로 교제를 허락해 달라고 말씀을 드리자 현진 씨 아버님께서는 어머님을 바라보며 무슨 이야기인지 설명을 요구하셨다.

“괜찮냐고.”

10여 분의 설명을 단 한마디로 압축해 전달해주신 어머님을 바라보며 아버님께서 대답하신다.

“밥 식는다 밥 묵자.”

식어버린 국과 밥을 다시 내오시는 현진 씨 어머님 옆으로 현진 씨가 아버님께 인원 씨에 소개를 거듭하자 아버님께서는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으신다.

“현진이 아빠 그래도 기분은 좋은가봐.”

원래 감정표현에 인색하신 분이라는 어머님의 설명을 들으며 함께 식사를 한다. 인원 씨는 그새 긴장이 풀렸는지 식탁을 누비는 젓가락질에 거침이 없다. 현진 씨는 옆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을 설명해주고, 인원씨 밥에 반찬을 올려주며 식사를 한다. 두 사람의 식기가 식탁을 누비는 모습이 신혼부부의 경쾌한 춤사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참 따뜻한 느낌이 든다.

고봉밥 한 끼를 든든히 채우고 이어 후식으로 나온 과일도 양껏 먹은 뒤 자연스레 소소한 이야기가 오간다.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다. 설 연휴는 집에서 지내기로 한 현진 씨를 뒤로하고 인원씨와 나는 다시 차에 오른다.

“윤 씨야 나 잘했어? 나 잘했지? 추석에는 와서 하루 자고 갈까?”

흥이 난 인원 씨는 자랑과 질문이 섞인 말들을 이어간다. 그렇게 한참을 흥에 들떠 이야기하고 나니 이번에는 노래가 이어진다. 평소 갖고 다니던 MP3플레이어에서는 신나는 트로트가 퍼져 나온다.

12인승 승합차에 우리 두 명 타고 있는데 분위기는 만석이다. 이번 방문이 어렵고 긴장되며 그만큼 준비도 많이 했는데 본인 기준에서 합격점을 받았다고 한다. 기분은 이미 결혼을 앞둔 새신랑이다. 그렇게 노래를 듣던 인원 씨는 곧 이어 휴대전화를 꺼내든다. 통화음 너머 현진 씨의 밝은 목소리가 등장한다.

“자기야 오늘 잘했어. 보고 싶어도 기다려. 설 지나고 갈게.”

어스름 녘 그리움 가득한 두 사람의 통화는 사랑의 깊이만큼 무르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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