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들 고교 졸업식. <이복남 기자>

26살에 부산 맹학교를 찾아가 보았으나 고등부가 없다며 거절이었다. 방안에서 죽치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하다가 천도교를 만났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공부를 했는데 이른 바 도(道) 공부였다.

몇년이 진 난 후에 그가 역리를 풀면 사람들이 용하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그런 거 안 해도 다 지 묵을 거는 타고난다.'며 한사코 못하게 하셨다. 거짓말을 안 하면 돈을 못 번다는 것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붓 장사를 하셨고 약간의 방세가 나왔다.

그 무렵 범4동 삼거리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땅주인이 나무를 베려고 하니 주민들이 당산나무라며 못 베게 했다. 옥신각신 실랑이가 일어났고 사람들은 아버지를 찾았다. '당산나무라니, 무신 소리고 내가 구장할 때 심은 긴데' 윤구장의 한마디에 동네사람들은 유구무언이었다.

나중에 땅 주인이 고맙다며 술을 사들고 아버지께 인사를 와서는 보답을 하고 싶어했다.

"우리집에 앞을 못 보는 아가 하나 있는데..." 그렇게 해서 정영자(58)씨와 결혼을 했는데 그의 나이 29살이었다. 그를 결혼 시켜 놓고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집도 이사를 가게 되어 그로부터 집 없는 설움을 오랫동안 겪어야 했다.

아내는 아들 둘을 낳고는 돈벌이에 나섰다. 그는 중풍에다 치매까지 있으신 어머니와 아들 둘을 키우면서 밥하고 빨래하고 살림을 했다. 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물을 찾았다. 어머니가 대소변을 못 가리시기에 되도록이면 물을 드리지 않았는데 어쩌다 그가 없는 사이에 "아부지! 와 할매한테 물을 안 주노?"하면서 물을 드리는 바람에 그런 날은 온 집안이 난장판이 되곤 했다.

낡고 허름한 판자집에 앞을 볼 수 없는 그가 살림을 하다보니 집안꼴은 말이 아니었고, 빈대가 득시글거렸다. 밤늦게 돌아온 아내는 말없이 집안을 쓸고 닦았다. 식구들 생계에다 시어머니 뒷바라지까지 아내의 고생은 말이 아니었지만 아내는 잘 참아 주었고 어머니는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78년에 눈을 감으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동네사람들의 추천으로 아내는 효부상을 받았다.

큰아들 대학 졸업식. <이복남 기자>

아내의 벌이는 시원찮았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동사무소를 찾아갔더니 그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직원이 아내는 빼고 영세민으로 만들어 주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했던가. 얼마 지나지 않아 영세민에서 탈락되고 말았다.

다시 동사무소를 찾아가 통사정을 했으나 주민 신고가 있었기에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 우리 식구는 다 굶어 죽으란 말이냐. 정 그렇다면 한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무슨 방법이냐 무엇이든지 하겠다. 그러나 동사무소 담당자가 내 놓은 방법이란 것을 듣고 나니 어이가 없었다.

"집사람을 가출 신고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리를 질렀지요."

'이놈들아 이기 우릴 도와주는 것이냐. 우리 마누라는 노망 들린 우리 어머니를 모셨고 그래서 너거들이 효부상까지 줘 놓고, 뭐 이제 와서 마누라를 가출 신고를 하라꼬? 나중에 우리 아아들한테는 뭐라고 말 할끼고. 돈 몇 푼 받자고 마누라를 가출신고를 해? 에라이 이 놈들아. 이거는 우리를 도와주는 기 아이라 망하게 하는 기다.'

"너무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동회를 나오면서 '여보 세상이 당신을 다 버려도 나는 당신을 안 버릴 것이요.' 마누라 허리를 끌어나고 울었습니다."

아내는 부전시장에서 감자 장사를 했는데 팔고 남은 감자들을 가져오면 연탄불에 삶으면서 간혹 감자를 태우기도 했다. '아부지 감자가 와 탔노? 하고 물으면 아버지께서는 탄 것도 묵어야 잘 큰다고 하신 것 같은데 초등학교에 들어 갈 때까지도 아버지가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란 사실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가슴을 치는 작은아들의 말이다.

아내가 새벽에 나가고 나면 밥해서 애들 먹이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그리고는 빨래를 했는데 구석구석 빨래거리를 찾다 보면 아내의 생리대가 나오기도 했다. 아내는 차마 그것까지는 남편한테 맡기기가 미안했든지 꼭꼭 숨겨 두었던 것이다. 생리대를 삶아 빨아서 늘어 놓으면 이웃 여자들이 보고 덜 빨렸다고 말해주면 다시 빨아 널곤 했다. 윤부현씨의 삶은 ③편에 계속.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로 현재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