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의 행복이 전 지구인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여자가 있다. 본지에 ‘주절주절 생활에세이’를 연재하는 그녀는 일명 ‘주절주절 권법’을 통해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최근에는 에이블뉴스에 실은 칼럼들을 모아 ‘이 여자가 사는 세상’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글을 쓰는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서, 아이의 어머니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김미선씨는 어떻게 살았을까? 지난 14일 정립회관에 위치한 한국DPI 사무실에서 김미선씨를 만나 봤다.

'주절주절 생활이야기'를 연재하는 칼럼니스트 김미선씨. <에이블뉴스>

▲에이블뉴스에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에이블뉴스에 칼럼을 싣는 것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루어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장애의 이야기이지만 장애이전에 인간의 입김이 실려 있는 이야기들을 하려고 노력했다. 지금까지 에이블뉴스를 통해 내 속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한바탕 쏟아낸 것 같다. 이제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글들이 너무 솔직하다. 일상생활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글을 읽다보면 사회가 규정하는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원래 성격도 그런 점이 있겠지만, 일단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다보면 사회의 주류가 요구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 생각하게 된다. 그 부분이 인정되지 않으면 내 존재가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걸 많이 느끼게 된다.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전을 많이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구태여 감추고 그럴 필요가 없어진다. 삶 그 자체를 인정하게 된다. 사회에서 제시하는 한두 가지의 길만 인정하는 게 아니라, 내 삶이 사회에서 제시하는 길에서 벗어나 그 외의 여러가지 삶 속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삶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열려지게 되는 것 같다.”

[리플달기]장애인의 날,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사회 속에서 장애인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나? 본인은 어떠한 존재로 살고 있는가?

“장애인이 이 사회의 쿠션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불행의 정체도 모르면서 불행해지는 것에 대해 공포를 가지고 있다. 장애인이 되거나, 가난해 지거나, 누군가를 잃게 되는 것에 굉장한 공포를 갖고 있다. 알고 보면 이런 일을 겪었던 사람들도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삶이 장애인의 삶이다. 장애인들이 잘 살고 있으면 주위 사람들이 굉장히 힘을 얻는다. 친구들은 힘든 일이 있으면 꼭 나를 찾아온다. 장애인들이 존재 자체에 대한 위로, 근본적인 것에 대한 위로를 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 이야기들을 재밌게 읽었다. 남편도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장애를 가진 남성을 곁에서 봤을 때 ‘장애를 가진 여성의 삶’ 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여건과 경중에 따라서 힘들어지는 것은 똑같을 것이다. 그러나 장애남성이 직장을 가지고 일을 수행할 때면 그것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본인 역시 자기 역할에 대한 자긍심을 쉽게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장애여성의 경우에는 가사노동이나 출산 육아를 제대로 못해 낼 것이라는 사회적인 편견이 너무 심해서 주부나 엄마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지기가 어려운 상황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중증 장애인이라 할지라도 그 역할을 벗어날 수 없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언제나 무겁게 뒤따르는 실정이다.”

▲성 이야기에 대한 칼럼도 연재하셨는데 삶에 있어 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람은 언제나 또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기 체험을 확장해나가고 성장한다. 만남의 소통은 항상 언어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에는 말을 통한 언어, 곧 의식적인 언어와 신체를 통한 언어, 무의식의 언어가 있을 것이다. 이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용인되는 것은 말을 통한 소통이지만 실제적으로 더 본능적이고 직감적으로 전해지는 건 신체를 포함한 무의식의 언어이다.

이건 꼭 접촉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느낌(Feel)과 무의식까지 포함한 것으로 그 중에서 대표적이고 강렬한 것 중의 하나가 섹스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머리가 복잡해지면 섹스에 더 탐닉하려고 하는데, 이는 머리 굴리는 일에서 벗어나 총체성을 띈 자기 무의식에서 좀 편안하게 쉬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파트너와 함께 이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느냐 하면 그건 또 다른 문제이다. 말을 통한 교감을 잘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권위적이거나 자기 말만 되풀이 하는 사람도 있다. 신체적인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장애인의 성 향유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성에 대해서 접근할 수조차 없다는 것은 분명히 폭력적인 억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건 성에 대한 억압보다는 인간과 인간끼리의 관계맺음을 제대로 할 수 없도록 하는 사회의 편견이나 단일 구조상의 억압에 우리는 더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무조건, 아무나 하고라도 성을 풀어야 한다는 접근에는 나는 반대한다. 먼저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 하고 그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감이 일어나 춤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막연히 꿈꾸던 성에 대한 환상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루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관계성이 없는 섹스는 허망하기 짝이 없고 심지어는 자기 비하에 이르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본지 칼럼니스트 김미선씨.<에이블뉴스>

▲아이 이야기를 해보자. 결혼하고 ‘아이를 낳자’고 결정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

“나는 남편과 아이를 낳자고 하기 전부터 아이가 낳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장애를 이유로 엄마로부터 제지를 당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가슴이 꽉꽉 막혔다. 애를 키우고 싶기도 했지만 자유로운 엄마가 되고 싶었다. 자유롭고 긍정적인, 진취적인 아이를 길러내고 싶었다.”

▲아이 키우는 일은 어떤가? 아이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아이를 할머니가 네 돌 지날 때까지 키워주셨다. 나는 주말에 가서 보고 그랬다. 내가 키우고 싶었지만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 굉장히 재미있었다. 어른들은 아이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이들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아이들이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 원래 알고 있던 것들을 잊어버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단편적인 것이 아닌 삶의 총체적인 부분들을 이야기한다. 굉장히 경이롭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다시 한번 태어나서 자라는 경험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장애가 생겨 방안에서 기어 다녔을 때,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가 자라서 효도를 하는게 기쁨이 아니라 애가 그냥 방 안에서 기어 다니며 예쁜 짓을 하는 것만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라고 느꼈다. 참고 억제하고 견뎌나가는 게 인생이 아니라 인생이 기쁨이고 즐거움이라는 것을 아이가 알게 해줬다.”

▲장애여성의 모성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전에 TV에서 청각장애인 부부가 아이를 기르는 모습이 나왔다. 주변사람들이 부모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아이를 빼앗아가는 걸 보고 안타까웠다. 청각장애아 부모가 아이를 키울 때 아이에게 언어를 가르칠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한 면을 가지고 전체로 확대시켜 보는 것이 문제다. 그들도 언어를 가르치는 부분만 옆에서 도와주면 충분히 아이를 키울 수 있다.

또 다른 다양한 인간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눈을 떠야 하는데, 이러한 경험들은 겪어 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나보다. 그래서 장애인의 삶을 드러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 같은 경우는 지체장애니까 비장애인들과 중증장애인 사이의 접점에서 소통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다. 앞으로 나보다 더 중증인 장애인이 나와 또 다른 소통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아이가 어떻게 자라길 바라나?

“어떻게 보면 우리가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다는 것은 세상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가 쉽게 할 수 있나? 하지만 여성들은 어머니 역할을 통해 할 수 있다고 본다. 엄마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는 쿠션이 있었으면 좋겠다. 여유가 있고 수용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여유가 있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살만한 세상이라고 세계를 긍정했으면 한다. 열려있어 소통하는 인간이 되었으면 한다. 자기만의 영역을 지키려고 하면 피곤해진다. 내 아이는 열려 있어서 너무 피곤하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DPI 여성위원회에서 활동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나?

“처음에 정립회관에서 근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인 면들이 너무 커서 장애문제를 개인적으로 풀어나가려고 했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에게 개인적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장애남성과 장애여성이 결혼을 해서 작은 개인으로서 사는 것은 참 힘들다.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들을 이겨나가는 힘이 스스로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점점 더 칩거하게 되고 더 매달리게 되고 그러다보면 삶이 소외된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 장애인들과의 전체적 삶 속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장판’(장애인계)으로 나오게 됐다. 사람들이 장애의 문제를 좀 더 공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여성위원회를 맡은 건 일이라 생각지 않고 살아가는 영역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활과 통하면서 서로 보완해 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훨씬 더 시각이 넓어지고 나와서 사람들을 만나면 글 쓰는데도 도움이 된다. 책상 앞에 앉아 관념적인 글을 쓰는 것보다는 생명이 실려 있는, 삶이 실려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끝으로 그녀는 “에이블뉴스를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해요”라며 감사의 인사를 한 뒤 솔직한 코멘트도 잊지 않았다. “책도 좀 사주셔서, 옆의 분들에게 선물을 하시지요. 부탁하는 이유가 있어요. 비장애인 친구들에게 장애인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교재이걸랑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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