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손부 이희숙씨. <이복남 기자>

영우씨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했고 둘만의 신접살림을 차렸다. 희숙씨는 한번도 부엌일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음식은 아무 것도 할 줄을 몰랐다.

"신랑이 출근하고 나면 하루종일 요리책을 들여다보면서 오늘은 무엇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나름대로 연구해서 한가지씩 만들었는데 내가 보기에도 별로였지만 언제나 맛있게 먹어 주는 신랑이 너무 고마웠어요."

그녀가 만든 음식 중에서 오이선은 그래도 괜찮았는지 집에 손님이 오는 날이면 영우씨는 오이선을 하라고 했다. 오이를 절이고 쇠고기를 다지고 계란 지단을 붙이면서 그녀는 행복해 했다.

그리고는 영우씨가 대전에 있는 본사로 발령이 나서 대전에서 3년을 살다가 다시 부산으로 내려와서 독립을 하였다. '뉴월드시스템'이라는 컴퓨터 회사를 차렸던 것이다. 희숙씨는 아들 동욱(중3)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함께 출근하여 남편을 도왔고 딸 나영(초등 4)이가 태어났을 때는 몸조리도 제대로 못했다.

그 무렵 고향에 계시는 할머니가 돌아 가셨다. 그 동안 가끔 반찬이며 먹을 것을 사들고 뵈러 가기는 했으나 할머니가 돌아가시니 당장 할아버님의 조석이 문제였다.

영우씨 부부는 할아버지께 부산 와서 함께 살자고 하였으나

"아직 정정하니 내 걱정은 하지 마라"며 할아버지는 싫다 하셨다. 고향에는 친척들이 계시기는 했지만 그 분들은 자기네 집으로 와서 식사를 하시라 했으나 할아버지는 가지 않으셨다.

한 달에 두어 번씩 반찬을 해 가지고 내려가 보면 할아버지는 간장과 풋고추로 밥을 드시고 계셨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시어머니는 아들들을 다 결혼시키고 부산에서 따로 살고 계셨는데 더 이상 할아버지를 시골에 혼자 계시게 할 수가 없어 일단 시어머니 집으로 모셨다.

할아버지 식사 시중을 드는 이희숙씨. <이복남 기자>

그런데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함께 살아보지 않은 탓인지 사소한 문제들도 불화가 생겼고 그 때마다 어머니는 영우씨에게 하소연을 했다. 영우씨도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쪼들리는 형편에 생활비는 생활비대로 나가고 갈등은 증폭이 되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우리가 모시자' 부산 오신지 몇 달만에 그들의 단칸방으로 할아버님을 모셔왔다.

할아버님, 영우씨 부부, 그리고 두 아이, 다섯 식구가 단칸방에서 두어 달을 살다가 겨우 두칸자리 전세방을 얻어 이사를 했다. 그리고 몇 해 후 할아버지를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 무리를 해서 개금에 33평 아파트를 마련했다.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영우씨는 근처 노인정을 찾았다. 노인정 회장을 만나 인사를 드리고 80이 넘은 할아버지가 계신 데 노인정에서 모셔와도 되겠는 지를 여쭈었다.

노인정에서는 안 된다고 했다. 노인정에 나오시는 분들은 대개가 60~70대인데 80이 넘으신 분은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급격하게 눈이 나빠지고 있어 한번 수술을 하기는 했으나 이미 시신경이 다 죽었다고 했다.

근처 노인정에는 못 오게 했기에 혼자 더듬거리며 제법 멀리 있는 복지관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먹고 오시는 게 유일한 소일거리였는데 눈은 점점 더 나빠졌다.

그 무렵 불교교육대학에 수화교실이 열렸다. 수화교육을 수강한 사람들이 청각장애인 불자회 '심여회'를 만들었고 영우씨도 심여회 회원이 되었다. 심여회 회원이 되어 청각장애인을 비롯하여 다른 장애인들과 접할 기회가 생기면서 장애인관련 단체 등에 자원봉사를 하기 시작하였으니 홈페이지를 무료로 제작해 주고 컴퓨터를 무상 수리해 주었다.

당시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이 할아버지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고 장애인등록을 하라고 권했으나 연세가 높으신 데 혜택 몇 가지 받으려고 등록을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며 장애인등록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바깥출입조차 어렵게 되었고 영우씨는 IMF를 맞았다. 몇 군데서 부도를 맞아 회사도 위기였다. 하는 수없이 33평 아파트를 처분하고 25평 아파트로 옮겼다. 세명이던 직원도 한명으로 줄이고 회사 규모도 축소했다.

회사가 집 근처였기에 아침에 식구들이 아침을 먹고 아이들은 학교로 가고 영우씨도 출근하고 나면 희숙씨는 집안을 대충 치우고 10시쯤 출근하였다가 12시가 되면 다시 집으로 가서 할아버지 점심을 차려 드리고 밤 8시가 되어야 퇴근을 했다.

이희숙씨의 삶은 ③편에 계속.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로 현재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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