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창간초기부터 ‘햇살담는 일상이야기’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최명숙(43·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씨. 뇌성마비 시인이기도 한 그녀는 일상 가운데 만나는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의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풀어내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에이블뉴스 창간 2주년을 맞아 지난달 24일 뇌성마비복지회 사무실에서 이러한 다양한 삶의 추억들을 ‘희망의 햇살’로 마음속에 담고 살길 바란다는 그녀를 만났다.

첫 번째 그녀, 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

# 칼럼의 제목이 ‘햇살담는 일상이야기’다. 편안한 제목만큼 글에서도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특별히 제목을 그렇게 지은 이유라도 있는지?

“일단 특별한 걸 싫어해요.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그런지 생활 속에서는 특별히 잘난 것도 싫고 그렇다고 뒤쳐져서 사는 것도 싫거든요. 가급적이면 일상생활 속에서 보이는 듯 안 보이는 듯 그렇게 평화롭게 살고 싶어서 그렇게 지었어요.”

# 칼럼이 주제가 따로 있지 않아 자유로운데 칼럼을 쓰면서 따로 염두해 두는 부분이 있다면?

“칼럼을 쓸 때 제가 했던 일 중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일을 쓰는 편이예요. 일상생활을 하다가 떠오르는 것, 그냥 그것을 자연스럽게 써요. 그런 편안함 때문인지 즐겁게 쓰는 편이예요.

나름의 철칙도 있고요. 칼럼 같은 경우 불규칙하게 쓰는 경우가 많은데 기간을 정해놓고 가급적이면 일주일에 한번씩 주기적으로 올리려고 합니다. 칼럼을 쓰는 건 독자와의 약속을 한 셈이니까요. 글이든, 말이든 남하고 한 약속은 꼭 지켜야 되지 않겠어요. 더군다나 글은 한두 번 쌓이게 되면 나한테도 도움이 돼요. 결국은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오거든요.”

# 에이블뉴스에 글을 실으면서 주변 분들의 반응은 어떤지?

“가까운 직장동료나 친구들은 장난으로 ‘신문사로 아주 가세요’하면서 놀리기도 해요.(웃음) 홍보담당 일을 하다보니 기자분들을 많이 알고 있는데 신문사 기자들이 에이블뉴스에 올린 제 칼럼을 많이 보시고는 본인들의 신문 기자 커뮤니티에 코너를 만들어 줄 테니 글을 쓰는 게 어떠냐는 분들도 계세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올렸을 경우엔 취재하겠다고 연락처를 물어오기도 하구요.”

# 칼럼을 쓴 지 벌써 2년이 되어 가는데 그동안 칼럼을 쓰면서 기억에 남는 일(혹은 사람)이 있다면?

“칼럼을 연재한 후에 알게 된 분들이 몇 분 계세요. 답글 남겨주시는 분 중에 뇌졸중으로 중도장애인이 되신 분이 계신데 제 글을 보시고는 지난번 뇌성마비복지회에서 주최한 시낭송 행사 때도 오시고, 가끔 전화도 주세요.

또 지난해 여름에 안동에 사시는 근이양증 장애인인 권오윤 선생 부부의 행복한 모습을 글로 쓴 적이 있는데 지난해 10월 사모님께서 돌아가셨어요. 지금은 권 선생님 혼자 살고 계신데 그분이 가장 안타깝고 기억에 남아요.”

두번째 그녀, 꽤 유명한 중견 시인

# 현재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지난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하기도 하셨다. 작품활동은 꾸준히 하고 있는지?

“책은 1988년에 첫 시집을 낸 후 개인시집 4권과 동인지 1권을 출간했어요. 솟대문학이 창간할 무렵부터 장애인문인협회 활동을 시작했지만 요즘에는 거의 활동은 못하고 있는 상태예요. 글을 계속 쓰고는 있는데 사정이 여의치가 않네요.

# 한국뇌성마비복지회 주최로 지난 2002년부터 시낭송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데.

“현재 노원구청 생활복지국장님이 10년 전쯤 서울시청에 계실 때 한 문예지에 그분이 글을 쓰셨는데 그 글을 보고 너무 마음에 와 닿아서 얼굴도 모르는 분한테 무작정 제 책을 한 권 보내드렸어요. 2000년도 그 분이 노원구청 생활복지국장으로 오신 후에 ‘옛날에 책을 한 권 받았는데 여기 직원이라고 했다’고 문의를 해오셨고, 그게 계기가 돼서 이런 행사를 하면 어떻겠느냐 제의를 해주셔서 기획하게 됐어요.

2002년도부터 시작한 ‘시와 음악이 있는 가을오후의 만남’ 행사가 올해로 3회 째를 맞고 있는데 매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어요.”

# 장애인문인들이 활동하기에 아무래도 환경이 많이 열악할 텐데.

“일단 장애인문인들이 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특히 외부활동이 불편한 장애인 같은 경우 아무래도 보는 게 적으니까 상대적으로 작품의 폭이 넓지 않다는 한계도 있고요.

또 비장애인시인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게 힘들어요. 비장애인시인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으면 서로에 대한 이해나 작품에 대한 이해 폭이 넓어질텐데 아무래도 서로 어울릴 기회가 흔치 않다는 게 문제겠죠.”

특히, 장애인문인들이 쓴 작품 중에는 그게 좋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독자들은 대부분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나를 보고 작품을 보면 작품에 장애가 들어갔다는 걸 전제를 하고 작품을 풀이해 나가거든요. 이러한 인식이 고쳐지지 않으면 힘들어요. 장애를 가진 작가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닌 작품자체만 가지고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 뇌성마비 시인으로서 바람이 있다면?

“일단은 뇌성마비 시인들이 지도받을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대부분 장애인 문인들이 독학으로 글을 쓰고 있는데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자리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아요.

각 문학지마다 교육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활동이 자유로운 사람들은 이런 곳에 찾아가서 배울 수 있지만 활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그러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뇌성마비 장애인 뿐 아니라 전체 장애인을 위한 문예교육기관이 있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는 가능하다면 진짜로 글 쓰고 싶어서 하는 뇌성마비인들이 작품집을 내거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뇌성마비 작가들의 모임을 만들고 싶어요. 주위에 생각보다 글을 쓰고자 하는 뇌성마비 작가들이 많더라구요. 이 분들 대부분이 글 쓰는 공부로 이어지지 못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서 책 한 권 내는 걸로 끝내는 분들이 많아 아쉬워요.”

# 작가로서의 앞으로 활동계획은?

“일단 작품활동은 계속 꾸준히 할 예정입니다. 시집은 2년에 한번씩 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또 하나는 마산에 한 뇌성마비 시인이 계신데 기회가 된다면 그분과 같이 작품을 했으면 좋겠어요. 연세가 예순이 넘으셨는데 여러 문학상도 받으시고 오랫동안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오시는 분이거든요. 뇌성마비 시인의 표본이 될만한 분이죠.”

# 아직 미혼이신데, 혹시 결혼계획은?

“나이가 어느 정도 되면 결혼 안 하느냐는 말을 많이 하는데 아직은 계획이 없어요. 인연을 만나면 결혼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혼자 살수도 있고…. 그런데 가족들에게는 참 미안해요. 집에서 독립해 혼자 산지가 10년 정도 됐는데 혼자계신 아버지께 맏딸로서 죄짓는 느낌도 들고, 맏이가 결혼을 안 해서 동생들에게도 여러 가지로 미안할 때가 많고요. 5남매 중에 첫째인데 막내동생하고는 16살 차이가 나서 ‘엄마 같은 누나’라고도 하지만 바로 밑에 동생이 실질적으로 맏이 역할을 하는 것 같아 가장 미안해요.”

세 번째 그녀, 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

# 한국뇌성마비복지회에서 홍보담당 일을 하신지 벌써 10년이 넘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홍보담당자로서 활동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1991년 9월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벌써 13년이나 되네요. 현재 뇌성마비복지회와 복지관 홍보일을 모두 담당하고 있는데 홍보 담당 일을 하면서 만난 분 중에 가장 기억나는 분은 지금 KBS대구 총 국장으로 계신 분이에요. 그분이 96년도 사회부장으로 계실 때 오뚜기 축제를 취재 오셔서 처음 뵙게 됐는데 그 뒤로 인연이 닿아서 때 되면 카드도 보내주시고 계속 개인적으로 복지회 후원을 해주고 계세요.

언론에 홍보를 해드린 분 중에 뇌성마비 화가 김경아씨가 기억에 많이 남는데 그 분이 92년부턴가 복지관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어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장애인미술대전에 입상하기도 했고, 또 검정고시에 붙어서 올해 수능 봤어요. 경아씨 같은 경우에 일년에 한 두 번 씩 홍보해서 많이 알려지게 됐고, 올해 그 빛을 보게 된 것 같아 기뻐요.

특히 지난번 오뚜기축제 때 감사패를 받으신 도곡중학교 어느 선생님의 경우 복지회에서 7년 정도 자원봉사를 하신 분이세요. 이 분을 홍보해 신문에 나게 해드리면서 저도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고, 그분의 얘기를 통해 새로이 자원봉사를 하시겠단 분들도 많이 오세요. 그럴 때면 보람도 느끼고, 정말 뿌듯하죠.”

# 기자들을 상대로 홍보일을 하다보면 여러 에피소드도 있을텐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간혹 기자들이 슬픈 얘기나 아주 힘들게 살아가는 이야기만 찾는 경우가 흔했어요. 찾아보면 좋은 이야기도 참 많은데 못살아서 도와줘야 된다는 얘기만 찾아서 그런 전화가 오면 화내고 그냥 끊어버린 적도 많았어요. 또 어떤 방송작가에게는 거꾸로 뇌성마비가 뭔지 아느냐고 물어본 적도 있고, 주소를 알려달라고 해서 뇌성마비에 관한 책자를 보내기도 했어요.

홍보 일을 하다보면 재밌을 때도 참 많아요. 특히 기자들 담당은 ‘적과의 동침’을 해야하거든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아군으로 만들어야 되니까요.

#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철칙이 있다면?

일단 나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스트레스 받으면 훌훌 털어 버릴 줄도 알아야 되고요.

특히나 홍보담당은 재미있는 직업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자존심도 버릴 줄 알고, 말을 아껴야 되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업에 있어서 내가 그 사업을 잘 안다고 해도 반드시 그 담당한테 연결을 시켜줘서 직접 얘기를 듣도록 해야하거든요. 이처럼 홍보담당은 말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앞서 중간자적인 역할을 잘해야 될 것 같아요. 홍보담당이 그 기관의 대변인은 아니거든요. 앞으로 이 일은 정년 퇴직할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예요.

# 13년이나 홍보담당으로서 일을 해오고 계신데, 혹시 직급에 대한 불만은 없으신지?

우스갯소리로 ‘나는 영원한 말단입니다’라는 말을 해요. 현재 복지회 봉사부 직원인데 봉사부에 3명밖에 없어요. 과장, 체육담당주임, 그리고 나. 입사한 시기가 비슷하긴 하지만 제가 가장 늦게 들어간데다 직원들 대부분이 오랫동안 일해오신 분이라 올라갈 틈이 없기도 해요(웃음). 어떤 곳들은 근무년수가 늘어나면 진급을 시킨다고 하는데 그런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대외적인 활동을 할 때 직급이 약간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나 스스로가 일을 하면서 직급에 대해서는 별로 불편한 점은 없어요.

마지막으로, 에이블뉴스와 독자에게 한마디

# 에이블뉴스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에이블뉴스에는 아침, 저녁으로 매일 접속을 해요. 에이블뉴스를 통해 여러 정보들도 많이 얻을 수 있고, 일단 다른 곳보다 장애인계 소식들을 빨리 전해준다는 게 큰 장점인 것 같아요. 기자가 보충이 돼서 더 많은 기사들이 올라오면 더 좋을 것 같고, 또 단체나 기관소식을 전해줄 수 있는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으면 좋겠어요. 이와 더불어 일간지에 논설위원처럼 두 세분이 칼럼이나 정기적인 사설을 통해 한번은 치료, 한번은 직업재활, 혹은 사회복지정책 등에 대해 짚고 넘어가는 코너가 마련됐으면 합니다.

# 독자들에게 한마디.

“우선 제 칼럼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무엇보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가졌으면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상대방 입장에서도 한번 더 생각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이렇게 남을 탓하는 건 가장 나중으로 미뤘으면 해요. 또 안되면 무조건 먼저 안 된다고 얘기부터 하지 말고 일단 하는 데까지 노력해보고 그러고 나서 내가 못하는 것에 대해 도움을 요청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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