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들어보고 작업하는 서창석씨.

대학 1학년 때 현역입영대상자로 판정 받았으나 연기 해둔 상태였는데 그동안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휴학도 자퇴도 하지 않은 채 잊어버렸으니 입영통지서가 나왔다. 병무청에 가서 눈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입영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으나 안된다고 했다. 일단 입영을 하고 입영부대에서 입영신체검사를 다시 받고 돌아오면 된다는 것이었다.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인데도 입영을 하라니 기가 막혔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기도에 들어갔다. 그의 요구는 많았다. 군대를 면제되게 해달라. 안보이는 것을 받아들이고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 음악을 하게 해 달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삶을 살게 해 달라.

누군가가 장애인등록을 하면 군대를 면제받을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이미 앞을 볼 수는 없지만 장애인등록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잠깐 고민을 했지만 군대를 면제받기 위해서는 장애인등록을 하기로 했다. 메리놀병원에서 장애진단을 받았다. 시각장애 1급. 입영날짜 일주일전에 장애인수첩을 첨부해서 병무청에 신고를 했고 그제서야 면제를 받았다.

장애인등록을 하고 나니까 구포에 있는 맹인복지관에서 연락이 왔다. 재활교육을 받아 보라는 것이었다. 97년 상반기 6개월 과정의 재활프로그램에 등록을 했다. 점자를 배우고 보행훈련을 했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컴퓨터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소리로 컴퓨터를 할 수 있다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컴퓨터를 새로 구입하고 가라사데(음성합성기)를 설치했다. 혼자 컴퓨터를 익혀 가면서 인터넷으로 화성악을 공부했다. 전자기타도 샀다. 작곡 습작도 하고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CCM(종교음악)에 심취하면서 가스펠을 불렀다. 기독학생청년회에서 그가 작곡을 한다는 것을 알고 그가 만든 곡을 불러 보라고 했다. 가스펠대회에 참가하여 그가 작곡한 노래을 불렀다.

98년 여름 마라나타찬양선교회에서 필리핀 선교가 있었는데 참가하고 싶었다. '앞이 안보이는데 외국 가서 뭐 하겠는가'하는 어느 목사님의 충고는 현실적이고 당연한 것이었지만 돌아서 나오는 기분은 엉망이었다. 기도편지를 써서 여비를 마련하고 필리핀으로 갔다. 3주 동안 필리핀에서 노래도 부르고 노방전도도 하면서 시각장애인으로서 간증도 하였다.

IVF(한국기독학생회)에서는 매년 여름 수련회를 개최하는데 99년 수련회를 하단에 있는 호산나교회(전 새중앙교회)에서 개최하였다. 그곳에서 운명(?)의 정연길씨를 만났다. 정연길씨로부터 시각장애인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알게 되었고 시각장애인교회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초량에 있는 사랑찬교회(시각장애인교회)에서 찬양모임을 꾸려 기타도 치고 노래도 했다.

그리고 2000년 호산나교회에서 복지법인을 설립했고 그는 정연길씨와 함께 법인사무를 맡게 되었다. 호산나재단에는 3명의 직원이 있다. 사무장 정연길(37)씨와 그는 시각장애인이다. 앞을 볼 수 없는 그들을 도와주면서 총무를 맡고 있는 류수정(32)씨가 있다.

출근하면 사무실 청소를 하고 컴퓨터를 켠다. 홈(http://hsnwel.or.kr)을 열고 간밤에 들어 온 쓰레기를 치우고 메일을 확인한다. 그가 맡고 있는 일은 홈페이지 관리와 전자도서관이다. 전자도서관에는 성경과 찬송 사회복지와 일반교양도서들 외에 영화관도 있다. 모니터 화면은 스크린리더가 전부 소리로 읽어 주기 때문에 그가 일하는데 불편함은 없다. 다만 그래픽이나 동영상은 읽지 못하기 때문에 이미지 자리에 ALT텍스트로 화면 설명을 넣어 주어야 한다는데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그런 배려를 해주는 홈페이지는 별로 없다. 그래픽 유저나 인터페이스(GUI)는 시각장애인에게는 쥐약이란다. 필자의 홈에도 그래픽이 하나 있는데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부끄러워서 당장 수정하였다.

그는 아침이면 대청동 집을 나와서 중앙동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하단역에서 내려 직장인 호산나교회로 간다. 사물의 윤곽은 희미하게나마 감지할 수 있기에 아직 흰지팡이는 사용하지 않는다. 비오는 날이면 곳곳에 패어진 물웅덩이에도 빠지고 공사장 모래더미도 구분이 안되므로 자주 빠진다. 그리고 길가에 나와 있는 잡다한 물건들도 장애물이다.

'가로수가 인도 한가운데도 있습니까?' 그래서 가로수에도 자주 부딪친단다. 제일 열받는 것은 주차금지를 위해 곳곳에 세워진 대리석 기둥에 정강이 촛대 뼈가 부딪칠 때란다. 처음 그런 돌기둥들이 인도에 세워지기 시작했을 때 필자가 여러 사례를 들어 설치하지 말 것을 관계기관에 건의했건만 어느 사이엔가 인도의 돌기둥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인생에서 방향이 조금 달라졌을 뿐 그는 여전히 꿈을 만들어가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컴퓨터로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재활공학 쪽으로 공부를 하고 싶다는데 장애인을 위해 어떤 것을 만들어 낼지 기대해 볼일이다. 서창석씨의 삶 끝.

*이 기사는 부산일보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로 현재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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