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장향숙 중앙위원이 서울 여성플라자 귀빈식당에서 장애인 언론사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장애인 정치세력화에 대한 평소의 소신에 대해 열변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총선인터뷰/열린우리당 장향숙 중앙위원

“장애인대표라는 것에 대해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사회가 굉장히 대리인적인 시각에서 보는 것이 아니냐라는 것이다. 그 말은 장애인 대표성하면 그것은 당이 정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대표성은 장애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를 생각해야한다. 그랬을 때 진정으로 장애인대중들이 공감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다.”

"진정한 장애인정치세력화는 지금 필드에 나와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우두머리 장애인이나, 정책을 논하는 몇몇 엘리트 장애인들에 의해서 장애인정치세력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장향숙(46·지체장애1급)이 입을 열었다. 부산여성장애인연대 회장직을 접고, 열린우리당에 여성장애인 대표로 입당해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향숙씨. 의회 진출을 꿈꾸는 그녀가 장애인정치세력화에 대해 거침없는 의견을 쏟아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전형적인 장애인 대중의 삶을 산 사람이라고 자신한다. 그리고는 엘리트 장애인들의 정치 진출에 대해 다양한 지적을 쏟아냈다. 그녀가 말하는 장애인 대중의 정서는 무엇일까? 그녀가 말하는 진정한 장애인정치세력화는 무엇일까? 지난 2월 25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장향숙씨와 장애인 언론사 기자들이 가진 간담회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오랫동안 장애인계에서 활동가로 일하다 이제 정치인이 됐는데, 정치인이 되고나니까 어떤가? 무엇이 달라졌는가?

“정당에 들어와 보니까, 단체 활동과는 상당히 많이 다르다. 처음에는 사실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다. 단체에서는 모든 것을 내가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면 되는데, 정당에서는 내가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나는 잘 모르니까, 기다렸다. 그리고 중앙위원 선거를 거치면서 많이 느끼고 알게 됐다. 특히 열린우리당이 새로운 정당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정당과 다르구나하는 것을 느꼈다. 중앙위원 선거는 그 자체로 새로운 정당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중앙위원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건지 얼마큼 책임이 있는지 잘 몰랐는데, 대의원들이 중앙위원 한사람 한사람을 선택하는 과정을 보면서 그 분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기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 사실 우리당에 왜 들어가느냐는 말이 있었다. 나는 부산 사람인데, 부산은 모두 한나라당이다. 그곳에서 우리당에 들어간다고 하면 배신자내지는 역적 비슷하게 될 수도 있는 분위기다. 물론 나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에게 사전에 충분히 설명을 드리고, 의논을 했지만 그래도 농담처럼이라도 ‘왜 우리당에 가느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내가 진보여성단체에서 인권운동을 했으니까, 당을 선택해서 간다면 우리당을 선택해서 가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내 개인적으로도 이미 정형화되어있고, 다 만들어진 당에 들어가는 것은 나한테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당은 만들어져가는 당, 내가 들어가서 동참해서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당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틀이 안 잡혀있기 때문에 이 당에 들어왔다. 중앙위원 선출과정을 통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돼서 상당히 좋았다. 일단은 중앙위원 선거까지를 보면 만족스럽다고 얘기할 수 있다.”

장애여성으로서 정치권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감이 잡히나?

“일단 나는 장애여성의 일을 하려고 정치권에 들어왔다. 만약에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정당에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나는 비례대표를 신청할 것이다. 우리당에서 비례대표를 오늘(2월 25일)부터 신청 받는다. 의회 진출하는 것이 성공을 할런지는 당의 선택이 남아있으니까 지금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당에 들어와서 첫째 목표는 의회에 진출하는 것이다.

의회에 진출을 하게 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참 많은 생각을 했다. 현재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서 전체 장애인계가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졸속으로 빨리 이뤄지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생각은 안한다. 시간을 좀 많이 가지더라도, 진짜 전체 장애인의 호흡을 담아낼 수 있는 법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법속에 여성장애인 문제, 빈곤장애인 문제, 교육, 이동권 등 모든 것을 담아내야한다.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 부분에 굉장히 노력을 할 것이다. 원래 장애인복지법도 있다. D 전 의원이 장애인복지법을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그 분이 하신 일들에 대해 상당히 높이 평가하지만, 장애인계의 정서, 장애대중의 정서를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 장애대중의 정서를 안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면, 실제 장애인의 80% 이상이 절대 빈곤상태에 있고, 제대로 된 직업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통계가 어떻게 나오든지 간에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회원을 가진 단체에서 장애인운동을 해본 사람은 피부로 느끼는 부분이다.

현장에서 회원을 직접 대상으로 하면서 그 회원들의 사연들이 뭔지 다 아는 활동을 해 본 사람은 얼마나 장애인들의 상황이 열악하고 빈곤한가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어떤 통계를 갖고도 속일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절대 다수의 장애인들이 그 법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이든 장애인을 위한 어떤 법이든, 그 법이 우리의 법이다고 느낄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 내야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몇몇 엘리트 장애인들이 만드는 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체 장애인 대중들에게 의견수렴을 하는 과정을 거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이 법에 무엇을 추가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한다. 이런 부분들은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 하나를 빨리 만들어내는 것보다 그러한 시간과 과정을 거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그 일을 꼭 하고 싶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재정도 생각해야하기 때문에, 돈과 우리와의 사이에서 어떤 것을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한지 서로 공감대를 얻으면서 법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싶다. 그 다음에는 장애인연금제 도입,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 지원 등이 꼭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사실 중증장애인이다.

내가 비례대표를 신청하는 서류를 준비하면서 재산을 신고하라고 돼 있었다. 재미있는 부분이 전과기록하고, 재산을 적으라고 한 부분이었다. 나는 전과가 없다. 그래도 내가 신원조회를 스스로 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재산을 증명하라는데, 내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까 생각하다가 내가 기초생활보장제 1종 대상자이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제 증명을 떼어서 재산증명 대신 그 서류에 첨부했다.

이 말을 왜 하느냐하면, 기초생활보장제에 의해서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절대 다수가 장애인들과 장애인 가족들이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최옥란 열사는 기초생활보장제의 폐해를 지적하고 돌아가셨다. 이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숨을 조이게 하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만, 얼마나 큰 절망을 주는가 하는 부분이 있다.

내가 만약에 의회에 진출한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 무엇을 보완해야하는지, 수급권자와 사회복지공무원들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하고, 풀어나가는 일을 하고 싶다.

그 다음에 사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여성의 빈곤문제는 굉장히 심각하다. 사실 여성의 빈곤문제 어떻게 접근해야하는지 잘 모르지만 만일 내가 의회에 진출하게 된다면 여성계의 큰 힘을 배경으로 진출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될 부분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여성의 절대 빈곤층에 대해서 결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여성계와 함께 필드에 있는 것처럼 일하고 싶다. 듣고, 같이 논의하고, 문제해결을 해나가고….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내가 의회에 진출을 하든 안하든 대한민국 국회가 이렇게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국회가 정말로 어디에서 돈을 절약하고, 어디에 써야하는지 고민하는 국회가 됐으면 한다. 그리고 내가 의회에 들어간다면 그 고민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돼야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그걸 다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지만, 4~5가지로 가장 큰 줄기를 잡아서 이야기했다.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사람이 돼야한다고 생각한다."

장향숙 중앙위원은 자신이 가장 전형적인 여성장애인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고 말하며, 장애인의 정서를 아는 사람이 국회에 진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에이블뉴스>

결혼은 하셨나?

"못했다. 안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

왜 못했나?

"그 이야기를 하면 길어지는데, 나는 공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다. 여러분들이 인터뷰를 한 사람 중에 가장 전형적으로 여성장애인의 길을 그대로 살아왔다고 본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58년생으로 만 46살인데, 나는 특별히 소외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나이 또래에서 시골에서 또는 도시에서 빈민층, 돈이 없는 사람, 보통의 가정에서 태어난 장애인이라면 공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시골에서 초등학교가 엄청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부모님이 농사짓는 분이셨는데 나를 업고 어떻게 학교 다닐 수 있었겠는가?”

초등학교도 안 나온 것인가?

"그렇다. 내가 학교라는 데를 처음 가본 곳은 부산대다. 부산여성장애인연대 최경숙 회장이 부산대를 다닐 때 부산대 캠퍼스를 가본 것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전부다 나는 사람들이 대학원을 나온 줄 안다. 그만큼 나는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다.(웃음)”

책 같은 것으로 독학을 한 건가?

“내가 살아오면서 읽은 책이 1만권 가량은 될 것이다. 공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집안이 5대째 기독교 집안이다. 자칫하면 나도 문맹이 될 수 있었는데, 내가 문맹을 피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다.

부모님이 개신교 신자이다 보니까, 나에게 다른 희망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셨는데 경상도 말로 ‘야가 하나님의 말씀은 알아야 천당을 갈 것이 아니가’라고 생각을 하신 것이다. 그래서 내가 5살 때부터 겨울이면 저녁에 호롱불 밑에서 국한문 성경 놓고, 손가락으로 집어가면서 부모님에게 글을 배웠다.

내가 18~19살 때, 이미 국한문으로 성경을 35번 이상 읽었다. 그러니까 역사나 문화나 시와 모든 것을 성경을 기본으로 배웠다. 책 읽는 데에 있어서는 두꺼운 책에 대한 도전심이 많다. 그런데 요즘에는 안 그렇다.(웃음)

다른 애들은 학교 가는데, 전혀 못 갔으니까 뭔가 끝없이 욕구하는 것이 내 속에 있었다. 교과서든 뭐든 가져오면 몽땅 제일 먼저 읽은 것이 나였다. 시골에 책이 흔하지 않았지만, 잡식성으로 안 읽은 책이 없다. 도시에 나오면서, 부모님 사업이 번창해서 책을 마음껏 사볼 수 있는 기간이 10년 정도 있었다.

결혼이야기 나오다 흘러나왔는데, 학교에 다니고, 남녀를 같이 보고, 만나고, 알고, 대학을 가고, 직장에 가고 그래야 연애도 결혼도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보통사람들의 삶의 주기와 다르게 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와 같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가 무슨 기회가 있었겠는가? 내가 집밖으로 나온 것이 22살 때였다. 그런데 이게 여러분들이 들으면 신기한지 몰라도 장애인들의 이야기에서는 A씨나 B씨처럼 서울대 나오고, 법대 나온 사람이 신기한 것이다. 그 관점을 알아야한다.

그 사람이 장애인인지 아닌지를 알아야한다. 내가 누구 개인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계에서 엘리트 장애인이라고 하는 것은 남이다. 이건 장향숙이 하는 말이 아니고, 장향숙 같은 장애인 대중이 봤을 때, 하는 이야기다.

D 전 의원이 E 씨의 추천으로 국회에 들어갔다. 그때 장애인들의 반응이 어땠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나 말하자면 엘리트 장애인들 쪽에서는 대단한 일이었겠지만, 장애인 대중들은 ‘그 사람 누구야? 우리하고 무슨 상관있어?’라는 반응이었다.

높은 사람이다. 장애인들이 봤을 때 그런 사람은 높은 사람이다. 장향숙은 높은 사람이 아니다. 지금 나는 내가 공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운동을 하면서, 1년에 수십 회씩 작게 크게 다하면 100회 가까이 강연을 다녔다. 그 대상은 대중 장애인들이었다. 못 배우고, 직장 없고, 괄시받고, 소외받고는 풀뿌리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열변을 토하고, 여성장애인들이 어때야한다고 이야기하면, ‘회장님 말씀 다 맞는데, 당신은 대학교 나왔으니까 그런 똑똑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이 온다.

‘나도 여러분들하고 똑같이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했을 때, 그 사람들이 내 말을 공감하는 공감대가 달라진다. 진심으로 내 말을 받아들인다. 난 여성장애인들이 변하는 모습을 봤다. 내가 서울대나오고, 변호사고, 판사를 했으면 ‘당신은 그렇게 살았으니까’라고 하면 나는 아무 말도 못한다.

절대 다수의 장애인들이 나처럼 살아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C씨가 새천년민주당에서 비례대표를 받기 위해서 전국의 장애인 조직들하고, 접촉하려고 하다가 나에게도 연락이 왔다. 내가 그때 부산장애인청년회 부회장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청년들을 모아서 같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서로 공감을 전혀 못한다.

그런데 C씨가 얼마나 유명하나? 하버드의 문을 고치게 한 사람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장애인들에게 오면 하버드 문이 아니라 어떤 것을 고쳤더라고 하더라도, ‘당신하고 나하고 상관없다’라는 반응이다. 장애인들은 C씨는 부잣집 아들로 스키 타다가 넘어져서 몸은 장애인이지만, ‘정말 장애인으로 살아 봤느냐’하는 정서가 아주 강하게 있다. 그런 사람을 정당이 대표로 뽑고, ‘장애인들의 표가 올 것이다. 장애인들이 공감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입장을 다르게 보는 것이다. 내가 가장 적합하다 이런 뜻이 아니고,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엘리트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 그런 분들은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인가? 명확히 설명을 해 달라.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대중적인 정서에서 이야기 한다면, 그 이야기는 장애인대표라는 것에 대해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사회가 굉장히 대리인적인 시각에서 보는 것이 아니냐라는 것이다. 그 말은 장애인 대표성하면 그것은 당이 정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대표성은 장애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를 생각해야한다.

그랬을 때 진정으로 장애인대중들이 공감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자꾸 하는 이유는 신문에서 봤는데, 우리나라 17대 국회의원의 확정된 공천자 비율 중 60%가 정치인이나 변호사다. 그런데 국회라는 것이 다양한 국민들의 처지를 반영하는 곳이 돼야하는데, 지금 너무 편중돼 있다고 생각을 안 하는가?

정치인들의 절대 다수가 판사나 변호사들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다양한 목소리를 내려면, 다양한 분야에서 들어가야 한다.

A씨나 B씨, 같은 분들은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분들이 그렇게 산 것은 부잣집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장애인들은 다 그렇지 않다. 그 분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사회에서 A씨와 B씨 같은 분들을 정당에서 장애인 대표로 만들려고 하는 것인가? 그 분들은 그 조건 자체만으로도 비례대표가 아니라 지역구 출마를 할 수 있는 분들이다. 그래서 정당들이 정직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정동영 의장이 늘 하는 말이 ‘민생정치 쇼가 아니다, 두고 보라, 쇼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드리겠다’고 우리에게도 늘 이렇게 얘기한다.

민생정치 쇼가 아니라면 정말로 끝까지 민생이 뭘 필요로 하는지 알아야 된다. ‘닭다리 뜯자’라는 운동으로 지금 닭이 많이 팔리는 것으로 회복됐다고, 그 자체로 민생정치를 다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 잘 안다.

왜 한국의 장애인들이 엘리트장애인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는가? 절대 다수의 엘리트 장애인들이 장애인계로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사회에서 장애인들과 자기가 동일시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우리 장애인계는 너무나 피부로 잘 아는 얘기다.

프랑스 철학자 부르디외는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고 얘기했다. 장애인 인권운동이 다른 것이 아니다. 내 문제를, 장애인의 문제를, 부모들이 계속 이야기한다. ‘내 팔자가 더러워서 너 같은 자식이 태어났어, 네 팔자가 더러워서 그래’. 말 안 해도 이게 우리들에게 박혀진 이미지다. 사회가 우리에게 준 이미지도 그것이다.

‘너는 쓸모없는 사람이야, 너에게 투자할 수 없어’. 이것이 많은 여성장애인들이 울부짖고 하는 얘기고, 많은 장애인들이 하는 얘기다. 그런데 엘리트 장애인들이 장애인들과 자기를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무슨 말이냐 하면, 결국은 엘리트 장애인들은 내 존재의 자리를 털고 일어날 의식조차 가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좀 어려운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남이 되는 것이다."

장향숙 중앙위원이 중앙위원 임기를 시작한 첫날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동료 중앙위원들의 도움을 받아, 묘소에 오르고 있다. <에이블뉴스>

장애인 정치세력화가 장애인계에서 이슈다. 진정한 정치세력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아직 정리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지금 말씀하신 것들이 그런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진정한 장애인 정치세력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를 내려달라.

"맞다. 내가 지금까지 한 얘기가 그 얘기다. 진정한 장애인정치세력화는 지금 필드에 나와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우두머리 장애인이나, 정책을 논하는 몇몇 엘리트 장애인들에 의해서 장애인정치세력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장애인정치세력화는 내가 지금 말한 80% 이상의 절대 빈곤층에 있는 장애인들이 정말 공감하면서 어떤 정당을 선택하는 것, 이 정당은 장애인들에게 있어서 우리들과 관계있는 정당이라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서 정당 참여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그것이 진정한 장애인정치세력화라고 생각한다.

부산은 시장도, 국회의원도,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등 대부분이 한나라당 사람이다. 장애인단체도 모두가 한나라당이다.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어서, 장애인정책이 특별나서 한나라당이 아니다. 장애인단체들은 밀접하게 당하고도 연관돼서 도움을 받아야 되는 것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 때문에 당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한나라당 사람들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만이 단체를 움직일 수 있고,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이다.

그런데 내가 우리당에 들어갔다. 내가 부산에서는 지도급이다. 그만큼 부산에서는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우리당에 들어갔을 때는 굉장히 충격이 온 것이다. 비로소 정당을 선택해야하는 때가 온 것이다.

‘우리당이 더 좋으냐, 한나라당을 계속 지지한다면 무엇 때문에 지지해야하는가’라는 토론이 생긴 것이다. 내가 비례대표가 되든 안 되든, 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내가 우리당에 들어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장애인 대중 속에 정치세력화라는 것에 대해서 씨앗을 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제 모두 한나라당이 아닌 것이다. 이제 선택을 해야 되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이 정치세력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장애인 대중과 같이 호흡하고, 숨을 쉬고, 움직이는, 할 수 있으면 장애인 운동도 마찬가지고, 장애인정치세력화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장애인 정치세력화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정당이 민감하게 반응해야 된다고 본다.”

뻔한 대답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민주당, 우리당, 한나라당 등 기존 정당에 장애인들이 들어가는 것들이 정치세력화냐라는 지적이 있다. 지금 말씀하시는 것들을 보면 민노당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민노당을 지지하는 장애인들은 기존 정당을 중심으로 장애인 후보들이 몰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그렇게 만은 생각이 안 든다. 지난 대선 때 민노당 분들을 만나서 얘기를 했고, 당시 노무현 후보쪽 사람들도 만났다. 얘기를 해 봤을 때, 민노당이라고 해서 장애인문제에 더 민감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당이 장애인문제에 있어서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사고는 진보적인 색채가 강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독서를 한 것이라든지, 이 사회를 보는 시각이 가장 소외계층 속에 내 정체성이 있지 않느냐? 그래서 그런 진보적인 색채가 아주 강하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맞다.

민노당은 노동자를 대변하고, 노동자가 가장 큰 기둥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당이 정치개혁이나, 사회개혁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우리당이 여성문제나 장애인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한다. 민노당은 노동자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가진 당이 됐다. 수구보수 세력인 한나라당에 뭘 기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당은 만들어져가는 당이기 때문에, 우리당 속에서 여성문제와 장애인문제, 빈곤계층의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부분에서 민감하게 신경을 써야한다고 본다."

장애인 정치세력화를 얘기하면서, 비례대표 10% 얘기도 나오고, 정당별 몇 석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번에 우리당에서 중앙위원이 제도적으로 보장이 됐다. 당별로 장애인 비례대표를 제도화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번에 비례대표 신청을 받는데, 청년에 대해서는 20대로 못 박아서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은 의회에 진출하는 번호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당에서 얘기했다. 장애인 부문에 대해서는 자연계, 이공계 전문가 그룹하고, 장애인과 소외계층에 대한 부분을 배려한다고 돼 있다. 몇 %를 배려한다는 얘기는 없다."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당연히 그래야한다. 많이 하면 좋다. 그러나 마지못해서 1명주는 것이 아니라, 2명 정도는 배려하면 안 좋겠나 바라고 있다. 중앙위원도 2명을 배정했듯이, 소외계층을 위해서도 비례대표를 늘려야한다. 어떤 사람이 의원수를 늘리면 월급은 나눠 가지라고 말했다. 얼마나 국회의원들이 밥값을 못한다고 생각했으면 그랬는지 이해를 한다. 그러나 외국의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가 인구비례에 비해서 많은 게 절대 아니다. 비례대표를 많이 늘려야한다. 이것은 나하고 상관없이라도 늘려야한다.

정치인과 변호사가 많이 국회에 들어가서는 전체 다수의 의견을, 다양한 욕구를 표출해낼 수 있는 것이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 염려한다. 그러니까 비례대표를 많이 늘려서 다양하게 노동자, 소외계층, 전문가그룹, 예술문학 분야 등 다양하게 들어가서 국회가 다양하고 풍성한 인적자원으로 구성된다면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올 것이다. 국회의원 월급은 많이 준다고 한다. 실제로 도둑질 해 먹은 돈이 아니면 뭐가 문제가 있겠느냐?”

박은수 중앙위원도 비례대표 신청을 얘기하셨고, 장향숙씨도 비례대표 신청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잘하면 두 분 다 의회로 가시게 됐다. 아까 말씀하신 데로 한 분은 엘리트 대표가 될 것 같고, 한분은 대중장애인의 대표가 될 것 같다. 각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보는가?

“박은수 변호사와 둘이 같이 의회에 진출하면 모두 정말 일을 잘할 것이라 확신한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의 경우, 우리 이예자 대표는 엘리트 장애인이다. 대중 속에 있으셨던 분도 아니고, 한국장애인 상황을 전혀 모르는 분이었다.

그분은 스위스에서 들어오자마자 저하고 같이 한국여성장애연합 공동준비위원장을 맡아 같이 활동을 했다. 그 분이 갖고 있는 바깥 세계에 대한 이미지나 내가 대중 속 장애인 소외계층을 직접 피부로 대하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충분히 같이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을 6년 동안 다른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이끌어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내가 장애인 대중과 호흡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한 사람인 반면, 박은수 변호사는 법조인으로 공부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분이고, 그런 부분에서 공부를 하신 분이기 때문에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이나 장애인연금제 도입에 있어서 서로가 보완적으로 작용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가장 소외계층의 대표로는 박은수 변호사보다는 내가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건 장향숙이 아닌 사람이 이 자리에 있다고 해도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 이 사회에서 주어진 조건에 따라서 굉장히 열심히 살아온 그 분의 삶과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평가를 하고, 그분에게 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부분들을 당에서나 우리사회에서 충분히 배려를 한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같이 일한다면 굉장히 좋겠다. 그러나 당에서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다.”

비례대표가 안 되어도, 앞으로 계속 정치를 할 것인가?

"비례대표가 안 되어도 중앙위원의 의무는 특별한 사항이 없는 한 임기는 2년이다. 중앙위원의 책임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 나는 단체장으로서의 내 삶을 피터지게 살았다. 마찬가지로 정당인이 되었으면 정당인답게 성실하게 해야 된다고 본다."

그 이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평생을 책을 읽은 사람이고, 평생을 여성장애인 운동을 해온 사람이다. 언제나 어느 때나 나 혼자의 자리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 소싯적에 즐겨 읽은 책이 헤르만 헤세의 '고독을 타고난 운명처럼'이라는 단편집이다. 까마귀가 주인공이다. 그 까마귀처럼 살 자신이 있다.

나는 평생 돈을 벌어보지 못한 사람이다. 누가 모이를 던져주면 그 모이를 받아먹고 사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살았다.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책이 있는 자리로 돌아가서 책을 보면서 내 인생에 대해 글로 써보고 싶다.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나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고 싶다.

나는 내 인생에 대해 유감없이 살아왔다. 그것은 공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내 사회적 환경, 직업을 가질 수 없는 내 사회적 환경 등에 대해 불만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사회 환경이라는 것은 계속 변화돼야하고 달라져야한다. 장애인의 사회 문제를 ‘네가 노력을 안 해서 그렇게 사는 거야’라고 보는 것이 아니고,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의 삶의 조건에 대해서 끝없이 반성해야 된다고 보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이것은 운명이야, 내 팔자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내 문제가 내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는 사회문제이기도 해’라고 자기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장애인 의식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끝없이 여성장애인들에게 얘기해왔다. 이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 얘기를 할 것이다.”

엘리트 장애인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셨다. 그 분들이 들으면 섭섭하다는 얘기도 나올 것 같고, 공교육 못 받은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아니냐는 얘기도 나올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는 단점이나 보완해야 될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콤플렉스가 있는지도 모르죠!(웃음) 콤플렉스가 있다 해도 그게 문제가 될 정도로 있는 나이는 아니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공교육을 받지 못한데 대한 콤플렉스 자체가 없다. 나도 이 문제에 대해 끝없이 생각을 해봤는데, 왜 콤플렉스를 느껴야하는지에 대해 잘 모른다.

내가 만약에 사회에 나가서 내가 차별받을 기회조차도 없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예를 들면 부산여성장애인연대 최경숙 회장의 경우, 대학을 나왔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네가 무슨 장애인이냐’고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는 장애라는 것은 화장실 가고 싶을 때 오줌을 참아야하는 것, 계단에 올라가고 싶은데 내가 절대 못 올라가서 밑에 서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 회장에게 내가 그것은 ‘미적 장애’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미적 장애’ 때문에 사회적 차별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대학을 나왔지만 직장에 갈 수가 없었다. 최 회장은 ‘정말 자기도 장애인인줄 몰랐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사회가 자기를 어떻게 보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내가 학력 콤플렉스 같은 것을 느끼려면 학력 콤플렉스를 느낄 수 있는 사회 속에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럴 기회조차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지적으로 부족한 사람은 아니다. 굉장히 지적 욕구가 강했고, 끊임없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한 욕구를 느낀 것이 없다.

내가 엘리트 장애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공부를 많이 한 장애인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다. 장애대중과 엘리트 장애인들 사이의 거리감, 괴리감, 시각차를 말하려다 보니까, 그것을 대중장애인의 입장에서 말하려다 보니까 말을 할 때 인상을 강하게 준 것 같다.

내 단점이라고 하면, 이런 지적을 많이 받았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에서 나를 대표로 내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나를 개척자로 내세운 것이다. 내가 한국여성장애인운동을 하면서도 교회로 말하면 개척 교회하는 목사처럼 개척자의 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 여성장애인정치세력화, 장애인정치세력화를 말하며 한국여성장애인연합에서 나를 대표주자로 내세웠다. 나 혼자 정치하려고 나온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를 개척자로 내세운 것이다.

그런 기질이 있는데, 내가 너무 강하게 나가다 보니까 약간 좀 천천히 오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해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상근자들이 내 밑에서 힘들어했다. 내 보완역할을 해준 사람이 부산여성장애인연대 최경숙 회장이었다. 최 회장이 사무국장으로서 그런 역할을 해줬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성격 급하고, 일 많이 벌리기 때문에, 뒤에서 차근차근 정리하고, 실무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사람이 없었으면 오지랖이 넓은 사람 밖에 안 됐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 부분들에 대한 역할을 맡아줘서 고마웠다. 그 이외에는 내 단점을 모르겠다.(웃음)

그런데 내 단점을 지적하면 바로 고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가 부산 사람이라, 말이 좀 거칠다, 욕도 잘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말 잘못했다고 야단맞는 것 보면 이해가 간다. 노 대통령이 쓰는 말이 서민적인 언어다. 보통 친구사이에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대통령의 말이다 보니 엄청난 화근이 되거나 커진다. 내가 너무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얘기하다보니까,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게 한 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친화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 쪽에서 일한지 20년이 넘었지만, 공식적으로 단체에서 일을 한 것은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을 만든 6년 전부터다.

여성장애인 운동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교육을 받았든 못 받았든 모든 여성장애인들과 함께 같이 이야기하고, 술 마시고 할 때였다. 앞으로 한 사람의 평 회원으로 돌아가서 그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늘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그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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