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서린 포장마차 안의 윤정화씨 세식구.

남의 집에 있다가 직접하게 되니 나다닐 일도 많아졌다. 다리가 성치 못하기에 차가 필요했다. 운전면허를 따기로 했다. 젊은 시절 어깨너머로 한글은 겨우 깨쳤지만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처지라 필기시험이 난감했다.

“할려고 들면 못할 게 뭐가 있겠어요.” 남부운전면허시험장에서 장애인운동능력측정을 받고 필기시험을 쳤다. 떨어졌다. 혼자 책과 씨름하며 다시 시험을 쳤다. 또 떨어졌다.

“필기시험은 여섯 번을 봤고 실기 시험은 한번 두 번... 네 번만에 합격이 되었습니다.”

면허를 따고 차를 살려고 알아보니 그의 장애가 지체4급이라 세금혜택이 없었다. 누비라를 샀다. 차도 샀고 직접 운전도 했고 공장은 그런 대로 돌아가고, 그의 인생에 있어서는 이 몇 년이 황금기였다. 늘그막에 딸도 하나 얻었다. 다리는 시도 때도 없이 아팠지만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행복은 그의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살만해지니까 점점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일도 하기 싫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방긋방긋 웃는 딸을 보면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약국에서 약을 사먹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며칠 일을 하고 나면 또 쉬어야 했다. 벌이가 신통찮으니 먹고살기도 힘들어졌다.

그 때 누군가가 조언하기를 등급을 새로 받아 LPG 차를 사면 연료비라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동사무소에 가서 시각장애 6급을 받아 중복합산을 하니 3급이 되었다. 7년을 탔던 누비라를 팔고 LPG가 장착된 카스타를 36개월 할부로 구입하였다.

몸은 점점 여위어 갔고 급기야는 피똥을 쌌다. 어릴 때부터 약골이었고 언제나 약을 달고 살았기에 아픈 것이 두렵지는 않았는데 피똥을 누자 덜컥 겁이 났다. 벼르고 별러서 백병원을 찾아 간 것이 2003년 5월이었다.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내린 결론은 직장암말기였다. 가망이 없다고 했다. 너무 심해서 수술도 할 수 없어 치료를 해야 하는데 입원실도 없었다. 일단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시작했는데 김해 강동동 집에서 개금동 백병원까지 출퇴근을 했다. 한달쯤 지나자 차를 타고 오가는 게 너무 힘들고 어지러워서 못 다니겠다고 하자 겨우 입원실을 마련해 주었다. 3개월 정도 되니 조금씩 차도가 있었고 의사는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을 해도 낫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거기다가 수술비는 또 어쩌고.

“수술 시간 3시간을 남겨 두고 수술을 미루자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퇴원을 했다. 소문에 들으니 스쿠알렌이 좋다고 해서 먹기 시작했으나 한달 들어가는 비용이 300만원이 넘어서 계속 먹을 수도 없었다. 암환자들만 모여 사는 곳도 몇 군데 가보았으나 돈이 있어야 했다. 일을 놓은 지가 오래라 수중에는 돈 한푼 없었다.

강서구 장애인협회 최종훈 회장의 도움으로 기초생활 수급자를 신청하였다. 수급자 생계보조비 60여 만원이 나왔다.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공장 집세만 주고 있을 수도 없었다. 9월에 공장을 내놓고 대저동으로 이사를 했다. 동사무소에서 전세자금을 융자받을 생각으로 최회장에게서 전세자금을 빌렸는데 차가 있다고 전세자금 융자도 안 된다고 했다. 차가 있다고 수급자 보조비도 30만원이나 깎였다. 전에는 60만원 받았다고 했더니 사회복지 담당자 하는 말이 ‘차를 팔고 병원에 들어 누워 있으면 보조비 다 준다’는 것이었다.

“담당자한테 다리가 불편해서 걸음을 못 걷는데 차를 팔면 어떻게 다니란 말인가 했더니 그러면 119를 불러 주겠답니다.” 그는 사회복지 담당자에게 치를 떨며 기 막혀 했다.

“복지를 하는 사람이면 없는 사람 사정을 알아주고 안아 줄 수 있어야지 이건 온갖 것을 들추어서 더 못 살게 구는 것이 무슨 복지입니까?“ 윤정화씨의 볼멘 하소연이다.

하다 못 해 약값이라도 벌어보려고 얼마 전부터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 옛날에 과자공장 다닌 경험이 있어 배우지도 않고 혼자 시작했단다. 김해 수로다리 위 포장마차에서 그는 붕어빵을 굽고 아내는 떡볶이를 만든다. 저녁이 되면 어린이집에서 돌아 온 딸이 영업이 끝날 때까지 포장마차에 함께 있는다. 그의 병이 빨리 나아서 하루빨리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기를 빈다. (끝)

* 이 기사는 부산일보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