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추영무 회장의 빈소.

지난 2월 18일에는 특수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청각장애인학교인 부산배화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던 총동문회 추영무 회장은 졸업식을 마치고 몇몇 동문들과 자갈치 어느 꼼장어집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술자리 도중 한 친구와 술집에서 7~8미터 떨어진 바닷가에 섰는데 아마도 소변을 보려고 나갔던 모양이다. 함께 나왔던 친구가 바다를 향해 오줌을 누고 돌아보니 같이 나왔던 추영무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깜깜한 밤이었고 청각장애인이기에 그가 빠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리라. 친구는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다시 술집으로 들어가 추영무 회장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고 술집 주인과 함께 모두가 나와서 찾아보니 추영무 회장은 등을 보인 채 바다에 떠 있었다고 한다. 119가 왔으나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고 추영무 회장의 빈소를 찾은 배화학교 동문 및 조문객.

그 날밤 그는 술을 마시지도 않았다고 한다. 여러 가지 추측들이 분분하지만 경찰에서는 실족사로 처리를 했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빈소를 찾은 많은 배화학교 동문들이 그의 죽음을 애통해 했다.

추영무(41) 회장은 배화학교를 졸업하고 수화통역을 하는 조정호(55) 원장과 인연이 되어 20년 가까이 함께 생활 해 왔다. 조원장은 청각장애인의 자녀 및 청각장애아 등 10여명과 늘사랑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는 맡형으로서 조원장을 도와 왔었다.

추영무 회장이 조원장과 만난 후 청각장애인들의 정보 문화를 보급시키기 위해 조원장은 염색을 하고 추영무는 베를 짜서 리어카에 싣고 다니며 팔기도 하면서 그들을 필요로 하는 청각장애인들을 뒷바라지하였다. 그러면서 남포동 등의 식당주인들과 친분을 갖게 되어 고추 등 양념류 팔아서 늘사랑가족 공동체를 운영하였다.

삐삐가 나올 무렵 그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삐삐 문자를 개발하여 보급시켰다.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삐삐 문자로 정보를 주고받았는데 그가 개발한 삐삐 문자는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하여 한 통신회사와 특약을 맺기로 할 즈음 휴대폰의 등장으로 삐삐 문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삐삐 문자 덕분으로 청각장애인들이 간단한 문장은 제대로 쓸 수 있게 되었음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다.

청각장애인들의 정보 문화를 위해 고심하다가 수화 연극 공연을 개최하는 등 '어떻게 하면 청각장애인들에게 일반적인 사회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 그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래서 5년전에 설립한 것이 늘사랑문화센터였다.

문화센터에서는 마임반 사진반 등 취미반을 운영하면서 청각장애인들에게 취업상담을 비롯하여 정보 문화의 전달 및 보급에 노력하였다. 그 자신도 사진반 마임반에는 직접 참여하여 합동 사진전도 참가하고 사회단체 등에서 개최하는 행사에서는 마임 공연을 하기도 했다.

추영무의 마임공연/소리빛깔 창간호 표지.

늘사랑문화센터는 지난해 한국농인예술문화센터로 이름을 바꾸면서 시각디자인반 컴퓨터반 농인문장반 어린이독서반 등산반 연극&마임반 축구반 볼링반 바다낚시반 사진반 역사탐방반 째즈댄스반 풍물놀이반 디지털영상반 스킨스쿠버반 등 다양한 취미반을 구성하였고 홈페이지도 열었다. 한국농인예술문화센터 www.kdac.or.kr.

각각의 취미반에서는 주 1회 정도 모임을 갖고 전문강사를 모셔 강의도 하고 등산반 축구반 낚시반 스킨스쿠버반 등은 실제 모임을 갖기도 하고 역사탐방반은 사적지를 직접 탐방하기도 했다. 어린이독서반은 청각장애인 자녀들에게 독서를 지도하여 청각장애인부모들로 부터 많은 호응를 받고 있었다.

지난해 초부터 컴퓨터를 모르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소리빛깔'이라는 종이 회보도 발행하고 지난해 가을부터는 청각장애인보호작업장도 개설하여 청각장애인들의 경제자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렇게 문화센터가 자리를 잡아가자 올해 모 대학의 사회복지과에 등록까지 하였는데 입학식도 하기 전에 그는 갔다.

한국농인예술센터 역사탐방반/한국농인예술문화센터 홈에서.

이제 그가 가고 없는 한국농인예술문화센터와 청각장애인보호작업장은 어떻게 될 것인지 남은 자들이 뜻을 모아 그의 유지를 받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여년을 오로지 청각장애인들의 정보 문화 보급을 위해 노심초사하느라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2년전부터는 배화학교 총동문회장을 맡아 그의 어깨는 더욱 무거웠는데 이제 그 무거운 짐을 벗어놓고 편히 잠들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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