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때문에 씨받이 인생을 살아야했던 시각장애 1급 이예뿐 할머니.

"우리 아들은 괜찮습니다. 집안도 먹고 살만해서 밥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리만 좀 절뚝절뚝 하는 아가씨면 됩니다."

많은 장애인 아니 엄격히 말하면 장애 아들의 부모? 부모도 아니고 어머니들이 필자에게 하는 말이다.

"어머니 그건 옛날 이야기 입니다. 요즘 세상에 밥 못 먹고 살아서 시집가는 아가씨는 없습니다. 어머니의 기대치를 낮추셔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사실이겠지만 우리사회에도 밥을 못 먹어서 입덜러 시집가던 시절이 있었다.

이예뿐(81세, 한자 이름은 다름) 할머니는 입을 덜러 시집을 갔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경남 합천군 머구재라는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첩첩산중이라 대낮에도 곧잘 늑대가 마을로 내려온다고 했다. 산골에서 텃밭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 부모님 밑에서 6남매 중 4째딸로 태어났다.

처음 태어나서 호롱불 아래 비치는 눈이 얼마나 초롱초롱하고 예쁘던지 부모님은 딸의 이름을 예뿐이라고 지었다.

태어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밤 예뿐이가 자꾸 울어서 부모님이 들여다보니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그토록 예쁘고 초롱초롱하던 눈에 핏발이라니. 부모님은 놀라서 어쩔 줄 몰라했고 밤새도록 보채는 아이를 안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날이 밝자 아이를 안고 아랫마을로 내려가 약방을 찾았다. 약을 쓰고 침도 놓고 굿도 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모두가 허사였다. 결국은 눈을 뜨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부모님은 행여나 하는 희망으로 용하다는 의원이나 점쟁이를 찾아 다녔다. 어느 약방의 할아버지가 "진작에 나를 찾아 왔으면 눈 하나는 띠게 했을 낀데…" 안타까워 하시면서 집 뒤안을 살펴보라 하셨다.

집에 돌아 온 아버지가 집 뒤안을 살펴보니 누가 그랬는지 족제비를 잡아서 털은 벗겨가고 맨몸뚱이만 썩어가고 있었다. 당시 족제비를 털은 값이 나갔던 것이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썩은 족제비를 치우고 한상 차려서 손을 비비 주었다면 한눈이라도 떨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때가 늦었던 것이다.

이할머니는 별탈 없이 잘 자랐다. 나이가 들면서 물을 긷고 밥도 하고 빨래도 하면서 집안을 도맡아 했다. 그러나 첩첩산골의 살림살이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궁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할머니에게도 꽃다운 시절이 있었다. 눈은 비록 감았으나 고운 자태의 아름다운 처녀였던 것이다. 누군가가 와서 아랫마을에 괜찮은 영감이 씨받이를 구한다며 부모님을 졸랐다.

부모님이 그 사람들한테 무엇을 받았는지는 잘 모른다. 이할머니가 기억하는 것은 여덟 식구가 삼시 세때 때 이우기도 벅찬 형편이라 입을 덜러 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꽃다운 18살 처녀의 몸으로 아랫마을의 아니 오십 줄에 든 중 늙은이 송영감에게 씨받이로 들어갔다. 송영감에게는 딸만 넷이 있었는데 이할머니가 들어 갈 무렵에는 딸 들은 이미 다 출가를 했고 영감 내외만 살고 있었다.

영감은 동네 부잣집의 마름이었고 마누라는 음식과 술을 파는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이예뿐 할머니의 삶은 (2)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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