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달 스무날에 가서 신방을 차리고 영감하고 사흘밤을 잤다. 영감은 아들을 소원했고 비록 눈은 감았으나 젊고 예쁜 이할머니를 무척 귀여워했다. 마누라도 아들 욕심에 승인은 한 모양인데 씨앗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고 했던가.

"큰 어마이가 하도 찌자(강짜)를 부리사서…."

영감하고는 그 사흘 밤이 전부였단다. 그래도 삼신 할머니가 돌보았는지 바로 애가 들어섰다. 날이 가고 달이 가서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아들은 큰 엄마 몫이었다.

이할머니가 아들을 위해 하는 일은 젖먹이는 일 밖에 없었다. 큰 엄마는 아들하고 정이 들까봐 그랬는지 애를 돌보는 일은 맡기지 않았던 것이다. 이할머니는 그 집의 하녀였다. 부엌일하고 길쌈도 하고 허드렛일은 도맡아 했다.

큰 엄마가 아들을 업고 디딜방아 줄을 잡고 떡을 찧으면 이할머니가 옆에서 떡을 뒤집어 주고 있는데 누가 보니까 등에 업힌 아들이 방아가 올라가면 큰 엄마를 한번 쳐다보고 방아가 내려가면 이 할머니 한번 쳐다보더라는 이야기를 해 주더란다.

날마다 끼고 살고 싶은 아들인데도 다정하게 한번 안아 보지도 못하고 어느 듯 아들이 5살이 되었다. 아들이 5살 되던 그해 구월에 가을걷이를 위해서 주인어른과 마름인 영감이 같이 나락의 작황을 둘러보러 나갔다.

주인의 논이 엄청 많았는데 하루종일 논을 둘러보고 저녁 무렵 주인 어른과 술을 마시고 돌아 왔다. 그날 먹은 술과 안주가 잘못되었는지 토사곽란을 만나서 그 길로 영감은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영감이 죽고 나자 살고 있던 집을 비워야 했다. 그 집은 논 주인의 소작인의 집이었던 것이다. 큰 엄마는 아들을 데리고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버리고 이 할머니는 오갈 데가 없었다.

이 때부터 이 할머니의 길고도 험난한 유랑의 길이 시작된 것이다. 이집 저집 다니면서 일을 해주기 시작했다. 남의 아이도 봐 주고 빨래도 해주고 밭일도 해 주었다.

"남의 집에 아아도 봐 주고, 디딜방아도 찧아 주고, 디딜방아는 하루에 보오살(보리쌀) 두가마는 찧었다." 고추도 따고 콩도 털고 보리쌀 삶아 밥도 하고 감자 삶아 새참 주고 잠시도 쉴틈이 없었다.

잠도 일하는 집에서 자다보니 오늘은 이집에서 내일은 저집으로 떠돌아 다니면서 아무데서나 잤다. 동네사람들은 이할머니를 할머니 고향동네 머구재댁이라는 택호(宅號)로 불렀는데 날마다 사람들은 머구재댁이를 찾았다. 주로 아이들 돌보는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아아들은 춥게 키워야 한다. 뜨시게 키우면 냉중에 찬거를 몬 묵고 찬거를 묵으마 댄번에 배탈이 난다." 그 와중에서도 아이들을 차게 키울 것을 당부를 한다.

닥치는대로 일을 하다보니 언젠가는 묵만드는 집에서 일을 했는데 잔치집에 묵을 가져다주어야 되는데 갈 사람이 없었다. "묵 판티이 지가 갔다 주끼예." 묵집 주인은 고맙기는 하지만 눈감은 사람에게 묵판을 맡기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묵판을 이고 온 머구재댁이를 보고 색시집에서 까무라질 판이었다. 묵판을 이고 오다가 넘어졌다하면 그날 잔치는 망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집 저집 일을 하다보니 어느 집에서 옥양목 적삼하나를 선물했다. 빨래함지를 이고 동네 우물가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빨래를 했다. "앞을 몬 보이 빨래를 잘하는지 몬하는지는 잘 모리겠고 기양 비누칠해서 칙칙 치대서 방매이로 뚜르리고 칼커케(깨끗하게) 행가서 한줄씩 널어 줬다."

그렇게 빨래를 하면서 어쩌다가 자기 옷도 같이 빨아 너는 날도 있었다. "사람들이 내 적삼이 뽀아얗게 곱다고 거석 한께 누가 적삼을 바까 주더라." 얼마나 이 할머니의 적삼이 탐이 났으면 눈감은 사람의 옷을 바꿔치기를 하다니.

"아무리 눈을 감았다 캐도 니것 내것은 다 가릴 줄 아는데…." 적삼 깃이랑 소매 도련을 만져 보니 자기 것이 아니라서 알았단다.

제사집에서 일을 할 때면 밤 자시에 제사를 마치고 제사 음식을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는데 10여집을 밤에 다 돌렸다. 눈감은 사람에게 밤이면 어떻고 낮이면 어떻겠냐마는 그래도 사람들은 눈감은 사람이 쏟으면 어쩌려고 밤에 다니느냐고 기암을 하더란다.

그렇게 바쁘게 일을 하면서도 가슴속에는 늘 아들 생각 뿐이었다. 소문에 듣기로는 초등학교 무렵 큰 엄마가 죽어 학교도 그만두고 친척집에서 공장에 다닌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믿으면 아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해서 남묘호렌게쿄를 믿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고 매일매일 애타게 기다려도 아들은 소식조차 없었다. 아들이 보고 싶어 애를 태우니 못다 못한 어떤 사람이 용하다는 점쟁이에게 데려다 주었다. 아들이 서른 여섯살이 되면 아들하나 딸 하나 손주 앞세우고 올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내 인생은 씨받이"

시각장애 이예뿐 할머니의 삶은 (3)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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