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술술 넘어간다고 술이라 했다던가. 술을 잘도 넘어갔다. 술이 들어갈수록 기분은 더욱 엉망이 되어 갔다. 카운터 앞이었는데 의자는 너무 높고 발판도 없고 옆에 필요한 휴지통도 없고….

웨이터를 불러서 이것저것 잔소리를 했다. 어쩌면 상사에게 당한 분풀이를 웨이터에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초저녁부터 맥주를 얼마나 마셨는지 소변이 마려웠다. 웨이터에게 화장실을 찾으니 문밖에 있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실내에도 화장실이 있었는데 술 취한 사람에게 웨이터는 왜 바깥 화장실을 가르쳐 주었을까.

그 호프집은 지하였는데 계단을 올라가니 출입구 왼쪽에 50센티쯤 되는 단위에 조그만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여닫이문을 열고 올라가서 오줌을 누고 돌아와서는 다시 또 맥주를 마셨다. 화장실을 서너 번쯤 들락거렸던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화장실에 가서 문을 열고 올라가서 문을 닫고 오줌을 누고 있는데 누군가가 문을 열고는 목덜미 옷깃을 잡아 당겼다.

그 화장실은 50센티미터 정도의 높이에 있었는데 그대로 뒤로 나둥그러졌다. 나둥그러지면서 어디에 어디를 부딪혔는지 그대로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너무 추워서 온 몸이 덜덜 떨렸다. 어렴풋이 함께 술을 마시던 동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 친구의 등에 업혀 근처에 있는 외과병원으로 갔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병원도 문을 닫은 시간이었는데 비상벨을 눌러서 사람을 찾으니 당직하는 학생이 나와 문을 열어 주었다.

학생이 원장을 불러 왔다. 원장이 나와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입 속에 피가 고여 있는 것을 보고는 이가 깨진 모양이라며 입 속의 피만 닦아주었다. 그동안 집사람이 달려왔고 1시간쯤 지나자 정신이 든 것을 보고 의사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날 밤 큰 병원으로 가서 바로 뇌수술을 받았더라면 오늘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의사가 괜찮다고 돌아가라고 하니 친구들은 택시를 타고 황씨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집에 돌아오자 황씨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에 남편은 잠이 깨어 물을 찾았다. 부인이 물을 가져왔으나 방금 물을 찾았음에도 물을 마시지 못했다. 입이 굳었고 혀가 말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놀란 아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웃집 아저씨를 깨웠다. 정월 초하룻날 아침인데 염치고 뭐고 없었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해운대구 반송 3동에 살고 있었는데 동래에 있는 대동병원 응급실로 갔다. 황씨의 상태를 살펴 본 의사는 이미 눈이 풀렸다며 가망이 없다고 진단했다.

사랑하는 남편이 이렇게 가다니. 아내 김씨는 의사에게 매달렸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수술을 해 달라고 울면서 애원했다. 하는 수 없이 의사는 몇 가지 검사를 했으나 이미 뇌가 다 죽었다며 왜 이제사 왔느냐고 오히려 김씨를 나무랐다. 누가 이럴 줄을 알았겠는가. 아내는 애원하고 또 애원했다. 의사는 가망이 없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한 후에 수술에 들어갔다.

오랜 시간에 걸쳐 뇌수술을 했는데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일주일이 가고 열흘이 가도 그는 깨어 날 줄 몰랐다. 어머니와 아내는 번갈아 가며 간호하랴 병원비 마련하랴 초죽음이 되어 갔다.

그가 눈을 뜬것은 수술한지 한달 하고도 보름이 지난 후였다. 눈을 떠보니 병원 침대였고 목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구멍에 호스를 넣고 미음으로 영양을 보충하고 있었던 것이다. 깨어났으나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정신이 들고 처음 찾아 온 친구를 보니 너무나 반가웠다. 그 친구에게 한 첫마디가 '담배 하나 주소'였단다.

(3)편에 게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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