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게 웃는 명근씨. 집에서 한 컷.

지난 7월 “발가락으로 문자 보내는 친구 이야기, 그리고 그 문자를 받고도 자주 무시를 했던 내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내용의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그 후 많은 사람들로부터 충고도 듣고 더불어 더욱 반성의 시간을 가졌던 나날들이었다.

몸은 누워 있지만 마음만은 자유인

매일 누워만 있는 정명근씨(35·남). 정씨는 선천성 뇌병변을 갖고 태어난 전신마비 장애인으로 생후 두 발로 서는 것은 고사하고 바르게 앉아 식사 한번 하지 못하는 생활을 하며 35년 동안 누워 생활을 하고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본인의 의지가 깊어 한글은 독학으로 습득을 했고 컴퓨터 사용 역시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고 책을 보며 인터넷의 한 장애인카페에서 지역게시판 운영자 활동까지 맡아하는 등 매사에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으로 나름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과 어울려 오프라인 모임도 정기적으로 가지며 생활을 하고 있다.

정씨는 비록 누워 생활을 하지만 결코 그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이거나 의지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산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그들에게 도움을 줄 궁리에 하루하루 생활하기 바쁘다.

2005.06.25 명근씨가 있는 복지시설.

그러던 그는 1년 전 아버님이 병환으로 돌아가시고 이런저런 이유로 정씨는 강원도 양양에 있는 한 복지시설에 입소해 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집안에 큰 일이 있을 땐 며칠씩 외박 나와 집에서 머물다 돌아가는 식으로 반복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번엔 지난 추석연휴 때 집으로 내려와 당분간 집에서 생활할 예정이라 한다.

정씨는 몸은 불편하지만 인터넷 카페활동 하는 것을 보면 진정한 자유인처럼 비친다. 게시판 글에서는 만나는 그는 장애인이라 느낄 수 없을 만큼 글 하나하나에서 자신감이 넘치고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고집도 센 편이다. 그런 자신감을 갖고 활동하는 그에겐 언제나 회원들은 뒤에서 멋진 배경 그림이 되어 준다.

2005.06.25 명근씨가 있는 복지시설에서 카페 회원들과.

틈만 나면 생일을 챙겨주는 친절한 명근씨

2005.06.25 명근씨가 있는 복지시설.

시설생활로 바쁠 수도 있고 타지에 나가 혼자 생활하면서 외로워할 시간이 많을 것도 같은데 친절한 명근씨의 일과는 늘 빠듯해 보인다. 그에 일환으로 명근씨는 틈만 나면 카페 회원들 생일을 챙겨주며 오프라인 자리를 만들고 있다. 당연히 본인이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으니 그에게 있어 입이 될 수 있는 컴퓨터로 좋은 (카페)친구들에게 함께 하자는 메시지를 남기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명근씨의 메시지가 전달되면 카페회원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나서서 케페 회원들이 모이고 쉴 수 있는 공간(민박)을 예약하고 계획적으로 프로그램을 짜서 보통 일박이일로 오프라인 모임을 치룬다. 지난 10월 14일에도 강원도 원주에서 일명 생일번개가 일박이일로 치러졌다.

여기서 명근씨는 우리 회원들에게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비록 말 한마디, 손끝하나 제대로 표현 못하는 처지에서 카페 지역게시판을 운영하고 그 회원들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같은 장애인으로서 많은 감동을 받게 된다. 비록 내 몸도 장애를 갖고 있지만 명근씨 보다는 낫다면 나은 조건인데도 매번 무엇이 두려워 자꾸만 피하려고만 하고 있으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정씨는 카페에서 ‘친절한 명근씨’로 불릴 만큼이나 정겨운 사람이다.

2005...강원도 정모 사진중 / ⓒ관련 카페.

그가 바라는 작은 바람

마음이 착해 늘 웃는 그에게도 작은 바람이 있다. 그 바람은 다름 아닌 집에서 어머니와 같이 지내는 것.

일흔이 다 되어 가시는 어머님이 자신의 수발을 드는 것에 한계를 느끼시고 장애인복지시설로 보내신 것은 명근씨도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어머님과 같이 지내고 싶은 것은 그에게 견디기 힘든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명근씨 어머님은 기자를 볼 때마다 아래와 같은 얘길 하시며 멋쩍은 웃음을 지으신다.

‘우리 명근이 이제 (시설로)보내면 오래오래 있다 오라고 해야겠어! 이 넘은 맨 날 나오니 나만 힘들잖아.’ 라고.

하지만 그 말을 하고 웃으시는 어머님 눈망울엔 촉촉이 눈물이 맺히고 누워서 그 말을 듣고 있는 명근씨도 따라 웃으며 눈물을 흘린다.

아무리 잘나지 못한 자식이라도 멀리 보내고픈 부모가 어디 있을 것이며, 진정 부모가 밉다고 부모를 멀리 하고픈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옆에서 보는 친구로서의 명근이

한없이 약해 보여도 강인한 사람이다. 친구들에게 역시 아쉬운 소리 할 줄 모르고 고집도 세서 얼핏 카리스마마저 느끼게 하는 성격 탓에 어느 자리에 데려다 놔도 살아갈 용기 있는 친구다.

하지만 이 강인함 앞에 어쩔 수 없이 갈라져야 하는 가족과의 생이별이 누구보다 당당하고 밝게 살아갈 수 있는 명근이에게 혹여 몸의 장애보다 몇 십 배 더 큰 장애로 부딪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따름이다.

힘든 현실 때문에 또 얼마 후면 복지시설로 입소하게 되겠지만 지금처럼 겉으로라도 아무 내색 없이 당당하게 생활해 주었으면 하는 친구로서의 바람을 가져 본다.

지금껏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함께 사는 법’을 앞으로도 계속 본인 자신에게 재 주입시키며 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주기를 또한 바라본다.

친절한 명근씨.

그가 오늘도 발가락으로 한자 한자 눌러 보낸 희망의 문자는 분명 받는 이에게 이 세상 그 어떤 행운보다 더 축복된 사랑의 메신저가 돼 도착될 것이다.

*박준규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로 현재 가평자치신문사에서 프리랜서 취재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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