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석(앞쪽) 장춘광(뒷쪽) 이윤영(뒤 오른쪽) 세 사람은 전동휠체어 끌고 용감무쌍하게 일본여행을 다녀와 부안 지역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스타가 되었다. ⓒ부안복지관

시골 마을에 복지관이 하나 들어선다면 장애인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전라북도 부안군에 위치한 부안복지관. “부안복지관! 네가 있어 행복해”, 등을 두드려주는 이웃들과 어우렁더우렁 살아온 3년. 장애인복지관과 사회복지관을 통합해 운영하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노인과 어린이, 결혼 이주 여성과 장애인에 이르기까지 대가족 살림살이를 해온 복지관. 깊은 정 고운 정으로 시골 인심 사회복지를 펼쳐온 부안복지관 이야기를 김병희 사회복지사로부터 들어본다.

-부안복지관에 유명한 스타 의형제가 있다고 들었어요.

김남석씨와 장춘광씨 두 분이에요. 한 살 차이인 두 사람은 우리 복지관에서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으면서 알게 되었는데요. 만나자마자 서로 통하는 게 많아서 의형제를 맺었답니다. 남석씨와 춘광씨 모두 학창시절 사고로 장애를 입어 마음 속 상처가 컸는데요. 집에서만 외롭게 지내다가 활동보조서비스를 통해 바깥 세상과 소통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의기투합해서 일본여행까지 다녀왔답니다.

-갑자기 사고를 당한 건가요?

남석씨는 사고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레슬링 주니어 국가대표 선수였어요. 학교에서도 지역에서도 촉망 받는 기대주여서 주변사람들의 안타까움이 정말 컸다고 해요. 춘광씨도 꿈 많던 고등학교 2학년 때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여읜 지 얼마 안되어 일어난 사고여서 가족들의 슬픔이 더 컸다고 합니다. 지금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생각될 정도로 밝은데 본인들은 물론이고 가족들의 눈물겨운 재활의지와 사랑이 큰 힘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전신마비 장애인 남석(앞쪽)씨는 전동휠체어를 몰고 다니고 걸음이 느린 춘광씨는 지팡이 대신 그 뒤를 붙잡고 다닌다. 둘은 그러며 의형제를 맺었다. ⓒ부안복지관

-지역 신문과 방송에 출연하는 등 매스컴에서도 주목하게 됐다고요.

두 사람은 사연을 보내 <아름다운재단>과 <여행박사> 후원으로 생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는데요.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게 된 건 여행을 통해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에요. 장애가 심한 사람들이 겁내지 않고 해외여행에 도전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아니거든요.

두 사람과 활동보조인 이윤영 선생님, 이 세 사람이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으로 떠났는데요. 여행은 이 분들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해주었고 많은 변화를 가져왔어요. 남석씨와 춘광씨 모두 다치고 나서 해외여행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꿈꾸지 못했다고 해요.

춘광씨는 여행을 다녀온 후 너무나 행복해하면서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돕고 살아야겠다고 말했고요. 남석씨 같은 경우는 일본여행 다녀온 후 서울에서 뒷풀이 모임이 있었는데 혼자서 서울 나들이를 감행해 많은 사람을 놀래켰어요. 물론 장애가 심해서 기차를 타거나 장애인콜택시를 타는 그런 일에는 도움을 받아야 했죠. 어쨌든 그 모든 과정이 주도적으로 이뤄졌다는 게 굉장히 놀라웠어요.

또 하나! 최근에는 일본여행에 함께 갔던 동행인들을 부안으로 초청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장애인 분들이 남석씨의 초청을 받고 부안으로 찾아와 주신 것도 감격스러웠지만 그런 일을 계획하고 치뤄냈다는 게 대단하지 않아요?

미술 프로그램에 참여한 남석씨. 붓을 쥐지 못해 끈으로 묶어서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열성은 누구도 못 따라간다. ⓒ부안복지관

-남석씨와 춘광씨의 매력은 뭘까요?

부안사람들이 모두 그렇지만 꾸밈없는 순박함이 아닐까 싶어요. 남들 배려하는 마음도 깊은 데다 유머 감각도 뛰어나서 주변사람들을 항상 즐겁게 하는 매력이 있어요. 두 사람이 복지관에 오면 웃음꽃이 떠나질 않을 정도니까요. 성격 좋고, 유머 감각 있고… 여자 친구만 있으면 딱인데… 하하. 전국의 미혼여성들! 연락 많이 주세요!!

-부안복지관에 다니면서 두 사람의 생활이 많이 바뀌었다고요?

남석씨와 춘광씨를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나요. 두 사람은 복지관에 와서 사람들하고 말을 나눌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했어요. 장애를 갖게 된 후로 아무도 없는 집에서 할 일 없이 보내던 날이 많았던 거지요. 이들에게 가장 그리운 건 사람들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니 웃을 일도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복지관 오는 날만 기다려졌다고 해요. 젊은 친구들이라 우리 복지관 또래 사회복지사들과도 잘 지내고요. 더욱이 일본여행 다녀온 뒤로는 자신감이 충만해져서 세상에 두려운 게 없어진 듯해요. 뭐든 도전하려고 하고… 어떨 땐 제가 겁이 날 때가 있답니다. 하하. (계속)

*예다나 기자는 ‘장애 경력 19년’을 자랑하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입니다.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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