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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를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

청각장애인 정은주 씨의 삶 - ②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7-26 15:04:10
그는 태어나서 한 번도 배가 고파보거나 경제적으로 쪼들려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건 무슨 청청하늘에 날벼락인가.

“돈이 없다는 게 그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모든 게 너무나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다. 그는 혼자 울면서 가슴을 쳤다. 그때 그의 눈에 비쳐진 사람들이 있었다.

정은주씨.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정은주씨. ⓒ이복남
“외할머니 집 근처에 농아교회가 있어서 농아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지만 그전에는 그게 잘 안 보였습니다.”

그가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되자 ‘저 사람들은 저기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싶어서 하루는 농아교회를 찾아 갔다.

“어느 일요일 농아교회를 찾아 갔는데,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힘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고 생각하니 일요일이 기다려졌습니다.”

농아교회에 가보니 농아들은 전부 수어를 하고 있었다. 그만 수어를 몰라서 다른 농아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뻘쭘하게 바라봐야만 했다.

“저는 원래 손재주가 별로 없는데 그런데도 수어는 빨리 배웠습니다.”

고3이 되자 그는 대부분의 수어를 다 배워서 농아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가 있었다.

“저는 대구대학교 가정복지학과에 갈려고 마음먹었는데 아버지 사업이 망했던 것입니다.”

돈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 비참하고 서러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많이 울었는데 너무 힘드니까 눈물도 안 나왔다.

“고2때까지만 해도 남부러울 것 없이 부족함 없이 살았는데, 이렇게 비참해지다니 정말 견디기 어려웠는데 농아교회에 나가면서 조금씩 안정이 되었습니다.”

대학 졸업식에서 부모님과.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대학 졸업식에서 부모님과. ⓒ이복남
외삼촌이 대구미래대학이라도 가라고 했다. 그는 외삼촌의 돈으로 대구미래대학 재할공학과에 입학했다.

대구미래대학은 학교법인 애광학원이 1980년 12월 경상북도 경산시에 설립한 전문대학이다.
애광학원은 대구대학교 등을 운영하는 창파 이태영 박사에 의해 만들어졌다. 우수한 교수진과 최첨단 실습기자재를 완비, 산학협동체제를 구축하여 100% 취업률을 목표로 하였으나, 2018년 2월 28일부로 경영난 등으로 인하여 폐교하였다.

대학에 가보니 농인들이 많았다. 학교에서는 장애에 대한 이해와 재활을 비롯해서 해부생리학 보조공학 생체공학 등을 배웠다.

졸업하면 진로는 어떻게 될까

“대부분이 보조기기 쪽으로 나갔는데, 김선규 교수님이 저를 예뻐하셔서 오디나보청기 회사에 취직을 시켜 주셨습니다.”

당시 대구미래대학 김선규 교수는 그 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을 거쳐 현재는 나사렛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오디나보청기 회사는 보청기를 만드는 회사였다. 보청기는 청력 검사상 난청으로 진단된 환자의 귀에 장착, 소리를 증폭하여 손실된 청력을 보조하는 기구로 소리를 받는 마이크로폰과 소리를 증폭시키는 증폭기, 증폭된 소리를 내보내는 스피커로 구성되어 있으며, 난청인 각각의 주파수별 청력에 맞추어 동작된다.

“월급도 많고 근무조건도 좋았으나, 몇 달 후부터 사직서를 가방에 넣고 다녔습니다.”

월급도 많고 조건도 좋았는데 왜 그만두려고 했을까?

“영어가 많고, 엄청 까다로워서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안 되고,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가족나들이.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가족나들이. ⓒ이복남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부터 회사를 그만 두려고 사직서를 들고 다녔으나, 그래도 3년이나 다녔다.

“3년쯤 다니니까 조금씩 적응이 되어서 그런대로 괜찮아졌습니다.”

그럴 즈음 대구농아인협회에서 찾아와서 회원가입을 하라고 했다.

“나 살기도 바쁜데 무슨 회원 가입이냐며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대구농아인협회에서는 몇 번이나 회사로 찾아 와서 회원가입을 권유했다.

“곧 회장 선거가 있는데 회원가입을 해야 투표권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도 졸라대는 바람에 퇴근 후에 한 번 가 보았다.

“좋았습니다.”

사실 청각장애인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청각장애인은 부사나 형용사가 거의 없고, 대부분이 명사와 명사의 연결이다. 그래서 여기서도 무엇이 어떻게 좋았는가가 아니라 그냥 좋다고 했다. 그것은 어느 정도 마음에 들었다는 얘기다.

“회원가입을 하고, 수어교실에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회사를 마치고 저녁에 수어교실에서 수어를 배웠는데 얼마 안 가서 수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4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대구농아인협회에서 수어를 가르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교회에서 가족들과.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교회에서 가족들과. ⓒ이복남
농아인협회에서 농인들에게 수어를 가르치다보니 공부를 더 해야 될 것 같았다. 대구미래대학은 전문대학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교육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기독교 교육학과는 성경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어 신학과 교육학을 함께 배우는데 졸업하면 중등교사 자격증과 보육교사 자격증 그리고 청소년 상담사 등을 갖게 된다.

“수어를 가르치는 게 재미도 있고 행복했습니다.”

경찰서 금호방송 등 여러 곳에서 수어통역을 했다. 부산 고신대학교에서도 수어 통역을 했다.
부산과 대구를 오가면서 통역을 했는데, 대구 농아인 모임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지금 저의 남편인 황윤섭 집사님인데, 그때는 부산직업전문학교에서 제과제빵을 배운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농인모임에서 아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그는 대전 농아교회에 전도사로 갔다. 대전에서 사역을 하면서 대구 모임에 가면 황 집사가 있었다.

“그러면서 황 집사와 친해져서 모임 후에는 따로 만나기도 하면서 그가 살아 온 지난 이야기를 했는데 너무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났습니다.”

황 집사는 7남매의 다섯째인데 어렸을 때 집이 너무 가난해서 먹을 게 없었다고 했다.

“남편의 청각장애는 어릴 때 너무 못 먹어서 영양실조로 그렇게 되었답니다.”

영양실조로 청력에 이상이 생겼지만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어머니는 입이라도 들려고 황 집사가 7살 때 절에 맡겼다고 한다.

절에 있었다면 영양실조는 아닐 텐데.

“7살 때 절에 갔는데 이미 그전에 농아가 되었답니다.”

절에서 일하고 밥은 얻어먹었으나 공부를 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남편은 아주 똑똑하고 머리가 좋았으나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해 대입검정고시로 대학에 합격했으나 돈이 없어서 대학을 못 갔다고 했다. <3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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