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본격적으로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설립해서 자립생활을 위해서 활동보조사업을 시작할 차례인데 문제는 자금이었다. 그동안 자립생활 문제로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B 교수가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신청을 해 보라고 했다.

발로 컴퓨터를 쳐서 사업계획서를 만들었다. 처음 해 보는 일이라 고치고 또 고치고 B 교수가 사업계획서를 수정 보안해 주었다. 2004년도 사업에 선정되어 1천5백만 원을 지원받았다.

화명동에 20평 사무실을 구해서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 사무실은 동생이 구해 주었다. 이름을 부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로 변경했다.

양산 수변공원 국화축제에서 가족과 함께. ⓒ이복남

그리고 2005년 보건복지부 사업으로 채택되어 1억5천만 원을 지원받았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등 정부지원금은 연말에 땡처리를 해야 하는데 보건복지부에서 지원받은 사업은 후반기라 1억5천만 원을 다 쓰기도 어려웠다.

받은 돈을 다 못 쓰고 다시 돌려준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고심하다가 시작한 사업이 자립생활을 위한 체험홈이었다. 자립생활을 위해서는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이 자립생활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집을 하나 구해서 활동보조와 함께 여성장애인 세 명을 입소시켜서 생활하게 했다. 그것이 체험홈의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부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처음 사무실은 사무실을 동생이 구해줬다면서 동생 근황은 어떠한지.

“동생은 저하고 7살 차이가 납니다. 현재는 **회사에 부장으로 근무하는데 아직 미혼입니다.”

어머니는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 ‘너는 커서 형님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주지시켰기에 동생에게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된 것 같았다.

“너는 엄마 아버지와의 약속을 안 지켜도 된다. 내가 자립생활센터 소장이다. 네가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지 결혼해라.”

그는 동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립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동생을 만날 때마다 그를 책임지지 않아도 괜찮으니 결혼하라고 했지만, 동생은 결혼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먼저 결혼을 한다면 동생의 트라우마가 좀 없어지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KNN 황범 앵커와 함께. ⓒ이복남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가 결혼할 수 있을 만한 여자를 찾기 힘들었다. 그러자 한 지인이 필리핀 아가씨를 소개했다. 선을 보고 아가씨도 좋다고 해서 필리핀 아가씨 멜린다(1985년생)와 결혼했다.

“처음에는 제가 필리핀으로 가서 결혼식을 하고 신부를 데려왔습니다.”

현재 애가 둘인데 큰애는 11살이고 작은애가 7살이다. 아내가 약간은 내성적이고 한국말도 서툴러서 가끔 필리핀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는 것 같았다. 아내는 필리핀에서 전문학교를 나왔기에 현재는 노인복지관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단다.

“장애인하고 이민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국에 오는 이민자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무시하고 차별당하는 것 같다.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이민자들도 엄연한 인격체인데 차별한다는 것이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인 것 같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장애인이나 이민자나 비슷한 처지라고 자주 얘기한단다.

애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대할까.

“아내는 물론이고 애들도 아직은 내가 장애인이라고 해서 다르게 대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는 결혼을 해서 애가 둘이지만 동생은 아직 미혼이라서 걱정이란다.

“동생 일을 제가 걱정한다고 되겠습니까? 동생이 알아서 하겠지요.”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다. 학교라는 제도건 교육을 받아 보지 못했기에 학우도 없고 사회생활도 없었다. 장애로 인해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학교에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한이 되었다.

“작년에 검정고시를 연달아 두 번을 치고 올해 영남외국어대학 사회복지과 주말 반에 입학했습니다.”

학교를 한 번도 안가 봤다면, 검정고시는 세 번일 텐데…….

“중검은 옛날에 쳐 두었었고, 작년 봄에 고검을 보고, 가을에 대검을 봤습니다.”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검정고시는 전 과목을 보는 시험이라 독학은 어렵지 않았을까.

“**검정고시 전문 사이트에서 인터넷 강의를 수강했습니다. 시간이 규칙적이지 안아도 되므로 저로선 틈틈이 편한 시간에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도권 교육을 받아 보지 못한 한을 나이 오십이 다 되어서 풀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더구나 학우들도 생기고.”

시청앞에서 자립생활 쟁취 궐기대회 발언. ⓒ이복남

그는 부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운영하면서 장애인이동권연대 활동으로 시청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도 했었다. 그래서 얻어낸 것이 저상버스이고 두리발(부산장애인콜택시)이고 지하철 엘리베이터이다.

그러나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중증장애인의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활동보조서비스는 중증장애인들이 맨몸으로 한강대교를 기어가면서 만든 제도인데, 이젠 이용자의 권리보다는 근로자의 권리가 우선시 되고 만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중증장애인의 권리가 활동보조인의 권리로 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에서 야간이나 휴일 수당 등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활동보조 시간을 줄이거나 자립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해야 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국가가 무한지원을 할 상황이 아니므로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에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수급자가 되면 밥은 먹고 살 수 있겠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므로 원초적으로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다. 수급자가 되더라도 일을 하고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수급자 기준에 탄력성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설에서는 우리나라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아마존 복지’라고 한다. 아마존 정글에서처럼 생존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수급자에서 탈락 될까봐 아무 일도 안 하려고 하니 오히려 자립생활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독일 퀼른 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MOU체결. ⓒ이복남

수급자도 국가에서 받는 수급비에다 자신이 일하고 받는 임금을 보탤 수 있도록, 몇 년의 기간을 두고 점차적으로 탈락시키는 방법 등 제도를 보완해야 할 것 같다.

“장애인고용 문제도 심각한 것 같습니다.”

기업에서는 장애인을 3% 고용하라고 하는데 3%를 못 채우니까 부담금을 내고 있는데 장애인고용공단에서는 그 부담금으로 살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 같다고 했다.

“그럴 바에 기업에서 장애인을 3% 고용해서 우리 같은 자립생활센터나 시민단체에 파견을 해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가 운영하는 부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는 장애인이용자가 230명 정도이고 활동지원사가 260명 정도이다. 그리고 사무실에는 그를 포함한 17명 중에서 장애인이 7명인데 아무도 고용장려금을 못 받고 있다.

“대기업에서 장애인을 고용해서 우리 사무실에 파견해 준다면 인건비라도 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사회연대 고용제’라고 하는데 반드시 도입됐으면 합니다.”

그리고 현재 활동지원제도의 본인부담금 부과방식은 부양의무가 있는 가족이나 가족 구성원들의 소득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본인부담금 책정기준은 서비스 이용자 본인의 개인 소득과 재산으로 국한시켜야 한다고 했다. 현재는 개인의 부담금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발로 하는 컴퓨터. ⓒ이복남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요양과 복지가 아닌 성인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위한 것입니다. 활동보조제도도 당사자의 보편적인 사회생활을 키워나갈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필자가 송성민 씨를 만났을 때 그는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걸을 일이 없겠지만 발의 보호를 위해서도 반드시 신발을 신으라고 하는데, 신발을 안 신는 것일까.

“아닙니다. 신발은 신는데 사무실에서는 컴퓨터를 하느라고 구두를 벗었습니다.”

컴퓨터 하는 모습을 좀 볼 수 있을까.

“예전에는 컴퓨터 자판을 하나하나 발로 쳤는데, 요즘은 화상키보드가 있어서 마우스만 움직이면 됩니다.”

그는 필자에게 발가락으로 화상키보드로 마우스를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동안 얼마나 인고의 세월의 견뎌왔겠는가.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한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자녀와 아내 등 그의 가정이 화목하기를 빈다.<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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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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